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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뼈

비교를 당해도 좋은 날개뼈

by 푸시퀸 이지

등줄기 타고 내려오는 땀방울, 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등줄기 타고 뒷목과 팔, 머리, 눈까지 아팠다. 이번에도 근력 운동으로 급한 불은 껐다. 뒤태에 나이테 버금가는 근육도 생겼다. 어깨도 버젓이 드러내놓게 되었다. 몸에 완벽한 대칭은 있을 수 없다지만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가 있었으니. 나이도 조만간 오십이라 '설마 오십견'을 늘 염두했다. 하루 절반은 컴퓨터 앞에 있고 속도전에 피 튀기는 마우스질을 해대니까. 오른 어깨는 사흘이 멀다 하고 말썽이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비교 당하는 걸 즐기게 되었다. 내 몸을 쌍쌍바로 만든 과 부모에게 감사하다. 몸은 선의의 경쟁 체제다. 스캔 떠 본다. 고개는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옆구리는 왼쪽으로 치우쳤다. 골반은 왼쪽으로 기울었다. 엉덩이는 왼쪽이 더 약하고 무릎, 발목은 오른쪽이 더 약하다. 내가 밝히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 했을 것이다. 양쪽 비교에 재미 본 건 어깨뼈(견갑골)다. 장님이 아닌 이상 누가 봐도 오른쪽이 삐딱선을 탔다. 오른 어깨뼈가 더 튀어 나왔고 더 위로 솟았다. 마우스 클릭을 어깨뼈로 했나보다.


마흔 넘어 온 몸이 아파 운동을 시작한 주제에 큼지막한 근육에만 눈이 멀었다. 한 자리 차지한 넓은등근(광배근)과 어깨라인 잡는 어깨세모근(삼각근)에만 급급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옛 것이 그립다더니 뼛속까지 느낄 줄은 몰랐다. 겉에 드러난 살덩이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뼈에 매료된다. 나이 들수록 변화무쌍한 근육결 보다 우직하게 자리 지키는 어깨뼈에 감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심장이나 어깨뼈나 마찬가지다. 심장이 생명과 직결되듯이 어깨뼈는 삶의 질을 좌우한다. 심장은 알아서 스스로 뛰지만 주의깊게 살피면 박동을 알아차릴 수 있다. 어깨뼈도 마찬가지다. 드러누우면 바닥과 만나는 어깨뼈를 느낄 수 있다. 손바닥 만한 역삼각형이 양쪽 나란히 닿는지에 따라 어깨 상태도 가늠 된다. 뇌에 새겨진 어깨뼈 감각은 팔을 으쓱하든 앞으로 나란히 하든 위로 들어올리든 고스란히 그 감각이 전달된다. 팔만 왔다갔다 하는 게 단순해 보이지만 어깨뼈를 안정화 시키면서 관절을 움직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어깨로서는 크나큰 소득이다.


어깨뼈가 제자리를 지켜내는 걸 '안정화'라 한다. 움직임이 있든 없든 어깨뼈가 쏠리거나 들뜨거나 꺼지는 것 없이 근육 사이에 잘 붙어 있는 것이다. 어깨뼈가 안정화 되어야 아픈 데 없이 일상생활도 안정적이다. 어깨뼈는 주변 뼈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관계된 근육도 많다. 오죽하면 어깨 관절을 '숄더 콤플렉스(shoulder complex)'라 부르겠는가. 내 어깨의 복잡다단 했던 통증도 잡히고 구운 오징어 같던 어깨도 열렸다. 열리다 못해 이젠 기도를 거꾸로 한다. 꿈에 그리던 뒤 합장을 하다니, 이제 어깨 펴고 산다.



남의 등도 치고 산다. 가족이나 직원을 어깨 너머로 보고 한쪽이 들려 있으면 도자기 빚듯이 맞춰준다. 한쪽 어깨가 심하게 말린 직원의 어깨뼈 주변을 풀어준 적이 있다. "팀장님, 눈이 다 맑아지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공부, 스마트폰, 드럼, 그림으로 한쪽 어깨가 들린 아이들도 풀어 준다. "엄마, 아팠던 어깨가 싹 풀리니 반대쪽 어깨에 추를 매것만 같아"라고 했다. 내 몸의 세포를 깨우는 소리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많이 오래도록 듣고 싶은 말이다.


어깨가 열리는 만큼 세상 보는 시선도 열린다. 시선이란 시각 만으로 보는 게 아니다. 어깨가 향하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 신은 우리에게 360도 회전하는 어깨관절을 부여했다. 팔을 자유로이 놀리는 사람을 어깨너머로 구경만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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