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토르가에서 라바날 델 까미노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듯, 순례길 역시 왔던 길을 다시 밟지 않는 것이 철칙인 모양이다. 알베르게를 오르던 급경사 방향이 아닌 어제 저녁 학생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광장을 가로질러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곳엔 사자가 독수리를 짓밟는, 거대한 흰색 동상이 서 있었다. 200여 년 전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아스토르가 시민들의 기개를 담은 이 조각은, 세월의 때 하나 타지 않은 채 승리의 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평소 미래상을 사진으로 붙여두는 '꿈의 지도'를 만들곤 했는데, 3차원 조각으로 구현된 결연한 의지를 보니 시각화의 힘이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매일 새 옷으로 갈아입는 일출을 등지고 걷다 보니 작은 성당 ‘에르미타 델 에체 호모'에 닿았다. 입구 벽에 새겨진 '신앙은 건강의 샘'이라는 한국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 태양이 나를 은밀하게 안아줄 때, 나는 화광동진(和光同塵) 말이 떠올랐다. 지혜의 빛을 낮추어 세상의 먼지와 함께한다는 그 말처럼, 햇살은 부드럽게 내려와 속세의 먼지인 나를 품어주고 있었다. 1유로를 기부하고 초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이터가 켜지지 않아 당황하던 내게 70대 오스피탈레로는 직접 라이터를 들고 뛰어왔고, 심지에 불이 붙지 않자 새 초를 가져와 다시 불을 밝혀주었다. 그녀의 진심에 사명을 다해 일한다는 의미를 떠올렸다.
메세타고원의 ‘주’를 이룬 S자 길을 좋아했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나의 인생길 같아서. 오늘 길은 하이패스 고속도로처럼 뻗었지만 순례자들로 가득 차 이 또한 좋았다. 일방통행의 길 위에서 나는 가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에게는 내 뒷모습이 기준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방향을 신경쓰며 걸었다.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의 철제 아치문(순례자의 문)을 지날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치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아치 너머 풍경의 테두리가 분리되는 듯했다, 내가 알고 모르는 세계, 나와 남의 시선, 현재와 미래가 갈라지는 경계선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생각의 꼬리는 산타 카탈리나의 바(Bar)에서 끊겼다. 줄줄이 이어진 바 중 맛집인 줄은 모르겠고 태극기가 걸린 바로 빨려 들어갔다. 루틴 또르띠야를 먹고 있는데 저 멀리 건너편 테이블에서 또르띠야를 남긴 M님이 포착됐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날렵하고 확실한 몸짓으로 다가가 정말 안 먹느냐고 두 번 확인한 뒤 내 접시로 옮겨왔다. 맛있어 보여서 시켰는데 입에 안 맞는다는 그녀의 말과 달리, 내 안에선 '어쩜 이리 맛있지?' 소리가 반복재생 되었다. 또르띠야 근육이 발달한 건지, 타고난 역량인지 모르겠으나 2인분의 연료를 채우니 웃음도 나오고 배낭에서 간식을 꺼내 사람들에게 일제히 돌리는 관용도 출연했다.
바를 나오니 길은 온통 돌담이었다. 담벼락의 돌들도 근육질로 보였다. 돌담길이라고는 20대 소개팅 때 걷던 덕수궁이 전부이지만 덕수궁의 평온함이 스페인의 시골길 위로 포개졌다. 한국에서의 '담'이 나만의 공간을 구획하는 도구였다면 이곳의 담은 경계성인 내 마음조차 가만히 보호해 주는 울타리 같았다. 세상과 쌓았던 내 안의 날 선 벽조차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담벼락들. 돌담 집 마을에 들어서니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티격태격 장난을 친다. 세상은 내 마음이 보는 대로 흐르는 법이니, 나는 그것을 다툼이 아닌 다정한 장난으로 읽는다.
돌밭 자연을 건너는 것 같은 돌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길에 꽂힌 비석 문구에 마음이 꽂혔다. 해석하면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신념(Faith)을 가질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문장이었다. 돌담처럼 마음속에 신념이라는 벽을 세우지 않았다면 외부에 휘둘리는 물 탄 술처럼 살 것이다. 노파심인지 비석은 또 한 번 등장했다. 이번에는 '너 자신을 믿으라'고 쓰여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만큼이나 엄중한 말, 가슴에 새겼다. 비록 작심삼일로 흐릿해질지언정, 오늘 먹은 또르띠야 두 개가 목적지까지 지탱해 주리라는 신념만큼은 확고했다.
20여 년간 직장 생활에 몰입할 때 듣던 이루마의 피아노 곡을 재생했다. 이루마 곡은 멘탈이 흔들릴 법한 자갈밭 오르막을 앞두고 톡톡히 전주곡이 되어 주었다. 나름 가파르고 힘든데 사진을 찍어 보니 ‘잔말 말고 가라’는 듯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낭떠러지도 아닌데 철조망이 있었다. 땀범벅에 두 다리는 철조망에 걸린 듯 무거웠다. 철조망에 십자가, 묵주, 목걸이, 나뭇가지 등이 걸려 있는데 이번 생은 아니라는 말처럼 이번 길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 길을 두 번째 걸으면 나도 끼워 넣는 여유가 있으려나 싶다. 지금은 그저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 각본을 짠 것처럼 꼭 내려오면, 땡볕 한복판에, 소 떼가 한가로이 노니는 풍경을 본다. 덥다고 서두르던 조급함이 평화로운 소들의 눈망울 앞에서 부끄럽게끔.
라바날 델 까미노에 도착해 22일 만에 처음으로 수첩을 꺼냈다. 길 위에서 나는 기재부 예산 범위와 경제성을 판정하던 업무가 떠올랐고 가성비라는 제복을 입은 나를 보았다. 하지만 기록하는 이 순간만큼은 영혼을 담은 내가 있다. '몸 쓰고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야말로 내게 가장 잘 맞는 옷임을 깨달으며 피자 한 판을 뚝딱 비웠다.
알게르게는 4인이 쓰는 2층 방에, 모닥불까지 피운 휴게소까지 운치를 더했지만 화장실 겸용 목욕탕이 달랑 하나라 그 층에 숙박한 사람들은 생리적 욕구에 번호표를 뽑야야 했다. 이제 난 안다. 뭐 하나가 안 좋으면 다른 곳에 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베르게 밖으로 광활한 빨래터가 있어 속 시원히 뽀송뽀송한 빨래를 한아름 안을 수 있었고 알베르게 주인은 저녁 7시 이후에나 가능한 순례자 메뉴를 일부러 저녁 6시에 차려 주셨다.
저녁 7시, 1500년의 시간을 품은 성당에서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졌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베네딕트 수도원성당 소속이라 그런지 수사님들이 반겨 주셨다.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 책의 저자인 안영균 신부님이 계시던 성당으로 유명하다. 내용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음률의 높낮이가 내 영혼에 직접 반응했다. 그런데 문득 발바닥이 타는 듯이 쓰라려 신발을 확인하니, 어제오늘 깔창도 없이 자갈길을 걸었던 것이다. 고관절과 척추 병을 지탱해 주던 맞춤 깔창을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둔 채, 흙과 돌이 부딪히는 소리에만 심취해 있었다.
발바닥은 아우성을 치는데 마음은 오히려 고요하다. 풍경을 볼 땐 안단테, 몸이 가벼울 땐 모데라토, 오르막에선 알레그로 악장을 이루던 나의 발걸음. 깔창 없는 생발로 자갈길을 견뎌낸 죄는 달콤한 고통으로 남았다. 발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내면의 소리가 어우러진 이 오케스트라 연주가 종합 진통제인데, 아우성도 누를 화음인데 다른 약이 뭔 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