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페라다에서 비야프랑카_중성미 넘치는 여유

느긋하게 걷기

by 푸시퀸 이지

어젯밤은 ‘저녁을 잘 먹어야 잠을 잘 잔다’는 나만의 원칙이 훼손된 탓인지, 호텔 같은 알베르게에서 노숙인의 심정으로 새벽을 보냈다. 마트에서 산 손바닥만 한 치킨너겟 두 조각은 위를 채우기는커녕 위벽에 잠시 달라붙었다가 사라진 정도였다. 자정 넘은 ‘꼬르륵’ 소리에 버티다 결국 새벽 4시에 비스킷과 바나나를 먹었다. 당초 다섯 조각이던 너겟 중 세 개를 옆 테이블 남성들에게 건넨 기버(Giver)의 마음은, 허기진 새벽이 오자 뒤늦은 후회를 낳았다. 베풀어서 그나마 이 정도인 건가. 잠결에 온몸을 벅벅 긁게 만든 두드러기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투명하게 깨어있는 새벽이었다. 사람이 철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솔직해진 건지. 전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말을 사심 없이 당사자에게 툭 던졌다. “어젠 자는데 배에서 종소리가 울리더라고요. 꼬르륵, 꼬르륵.” 위장은 비었을지언정 심장은 충만한 채 오늘의 길을 나섰다. 어제보다 8km 슬림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를 향해.


어제 미사 시간 때문에 들르지 못한 ‘템플기사단 성’을 지나 도시를 빠져나갔다. 폰페라다는 빛의 도시 레온과는 또 다른 감성이었다. 레온이 화려한 조명쇼 같았다면, 폰페라다는 가로등 하나가 우직하게 제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점선을 잇듯 이어지는 불빛을 따라가니 그 길을 걷는 나조차 은은하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폰페라다의 독특한 화살표를 뒤쫓았고 길은 이내 화려한 가을색으로 이어졌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호접몽(胡蝶夢)처럼, 내가 나무인지 나무가 나인지 모를 ‘호목몽(胡木夢)’의 상태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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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길을 여러 번 건너고 도심 마을이 나타났지만, 가을에 물든 몸은 물리적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2시간쯤 무렵 나타난 바(Bar)도 무심히 지나쳤다(콜롬브리아노스). 가을을 흡입하는 것만으로 배가 부른 효과가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와인으로 유명한 순례길을 걷는 만큼 와인공장에 들어가 맛을 보고 싶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문은 닫혀 있었다(캄보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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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을 참아냈다는 성취감이 정점을 찍을 무렵, <까까벨로스>의 한 바에 들어섰다. 중앙엔 테이블이, 벽면엔 라면과 빵, 건어물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마치 재래시장 같은 구조였다. 그곳에는 이미 걸음이 상당히 빠른 남성 순례자 다섯 분이 라면집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11시에 도착한 나 역시 옆집에서 빵을 먹으며 11시 30분의 오픈을 기다렸다. 평소 라면을 먹지는 않지만, 김치를 직접 담근다는 스페인 사장님의 솜씨와 이국적인 맛의 호기심이 내 발길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 모든 것에 이토록 순수한 호기심을 뻗칠 수 있다면, 그만큼 세상을 이롭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며 빵 두 종류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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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문이 열렸다. 바깥 테이블에 참새처럼 쪼르륵 앉아 라면을 기다리는 남성 순례자들의 모습에도, 안에서 스쿼트 백 개를 하는 내 모습에도, 사장님은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적당한 압력으로 집게를 쥐고 리드미컬하게 면발을 위아래로 지휘하며 꼬들꼬들한 라면을 삶아내는 그의 모습은 가히 장인이었다. 나는 그 틈에서 한국식 비빔밥이 아닌, 사장님의 해석이 담긴 ‘스페인식 비빔밥’을 주문했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았음에도 잔뜩 취기가 올랐다. 비빔밥의 오묘한 맛에도, 정성 어린 김치 맛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대하는 사장님의 당당한 태도에도. 그렇게 나는 건장한 남성들 틈에 섞여, 누구보다 파워풀하고 맛깔나게 스페인의 정오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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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어제의 성취감이 부른 자만심과 새벽 허기로 인한 피로 물질이 온몸을 떠돌았다. 예상치 못한 힘겨움이었다. 음식은 위장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다리로도 먹는 것이었다. 나무 사이 해먹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쯤, 거짓말처럼 포도밭이 펼쳐졌다. 꽃밭으로 둔갑한 포도밭, 유연하게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듯한 덩굴들, 지지대에 기대어 십자가처럼 서 있는 포도나무들이 나무와 산, 구름과 조화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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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오르막에선 구름이 나를 끌어당겨 주었다. 나무에 둘러싸여 혼자 덩그러니 언덕 위를 지키는 하얀 집을 보았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이 길 위에서, 나는 그 집처럼 꿋꿋이 걸었다. 두 발은 그저 ‘오늘 안에 가겠지’ 하며 한 발 더, 한 발 더, 를 외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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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성당이 보이고 견학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늘 순례자 중 내가 꼴찌일지도 모른다는 한산함이 엄습했다. 이제라도 발에 채찍을 가해 속력을 내려는데, 갑자기 한 외국인 남성이 도깨비처럼 나타나 나를 멈춰 세웠다. 그는 내게 이 성당의 의미를 꽤 길게 설명해 주었다. 그가 떠난 후 번역기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육체적 한계로 더는 걷지 못하는 순례자를 위해 열리는 ‘용서의 문’이 있다고 했다. 서두르려던 찰나에 마주한 ‘멈춤’의 상징이라니. 마을 입구에서 60대 남성 P님과 G님을 만났다. 어제 치킨너겟을 건넸던 바로 그분들이었다. 발목에 고름이 찼음에도 절뚝이며 하루를 온전히 걸어내는 G님과, 그런 동료의 보폭에 맞춰 묵묵히 동행하는 P님. 그들 사이에 끼어 걸으며 땡볕에 달궈진 내 얼굴이 더 후끈 달아올랐다. 너겟의 상실감을 곱씹으며 뒤처지지 않으려 속도를 내려던 참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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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에 닿았다. 알베르게 근처에는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산 니콜라스 엘 레알’ 건물이 서 있었다. 예수회 수도원이라는 거창한 배경보다는 <스페인 하숙>의 촬영지로 더 친숙한 그곳에서 나는 건물 특유의 절도와 웅장함을 컨닝 하듯 훑어보았다. 그 곁에는 <앨러미더 공원>이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G님의 제안으로 ‘엘더미로 공원’에 들렀다. 이왕 늦은 김에 느긋해지기로 했다. 쇠고랑을 찬 듯 무거운 다리지만 못 갈 게 무언가. 길 위에서 마주친 거친 야생과는 또 다른, 정원사의 손길로 다듬어진 자연이 그곳에 있었다.


서두름을 내려놓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풍경이었다. ‘느림’이 아닌 ‘여유’라고 생각하던 찰나, G님은 공원 앞 바에서 맥주를 쏘겠다고 했다. 오전의 와인공장에서 시음하지 못한 게 생각나 와인을 시켰는데 또르띠야까지 주문해 내 마음의 지평을 또 한 번 열어주었다. 조급함이 걷힌 자리에 ‘느긋함’이 들어왔고, 비로소 타인의 삶을 담아낼 그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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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순례자 메뉴 맛집을 찾았다. 점심 라면집처럼 온통 남성들뿐인 곳에서 나 혼자 여성이었다. 어제 너겟의 열 배는 될 법한 고기를 얻어먹고, G님이 남긴 메뉴까지 이관받아 해치웠다. 문득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배가 너무 커서 다들 아들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이 길을 걷기 전에는 아이에게 아버지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왜 나는 여성스럽지 못하고 남성미가 넘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생각은 이내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내 안의 남성성 덕분에 중립을 지키는 눈이 생겼고,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양쪽을 다 경험해 보았기에 내 마음의 그릇은 그만큼 더 여유로워졌다. 단지 많이 먹어 푸짐해진 마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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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길 위에서 나만의 속도로 세포 하나하나를 느끼며 걷던 느긋한 하루. 어쩌면 나는 꼴찌로 걸은 게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나만의 기준으로 개척한 것일지도 모른다. <느긋하게 걸어라>의 조이스 럽 수녀도 그랬다.


"우리의 삶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매 순간 경험해야 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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