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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20. 2022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입성 첫날,둘째 날

2021.12.23.목~24.금요일 이야기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유일한 한인 전용 비즈니스텔인 “쏭 하우스”에 도착하니 새벽 4시.

 (이름이 왜 쏭 하우스냐고 물어보니, 비즈텔 집주인이 송씨라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호텔, 모텔같은 느낌은 전혀 안 나고 그냥 방이 많은 고급주택이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절대 숙박업소라는게 티 나지 않는 곳이었고 입구에 간판도 없었다. 로비(라 부르고 그냥 거실이다.)에 들어가니 한국인 매니저가 반갑게 맞아준다.(자신을 스카이 매니저라고 부르라고 일러준다.) 


쏭하우스 로비(인 듯 아닌 듯 그냥 집 거실)


 “도착하실 줄 알고 방에 온풍기랑 전기장판 켜 놨어요. 편히 주무셔요.” 


배정받은 내 방. 생각보다 깨끗하고 아늑하다.


 우리 마누라도 나 도착할 시간쯤 맞춰 방 좀 덥혀놔 주면 좋으련만. 간단히 잠옷만 꺼내고 대충 손발만 씻고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 10시. 맞춰둔 알람에 깼다. 오늘 점심부터가 공식 일정이다. 첫 일정은 직장 관계회사 000사 방문. 11시에 예정대로 경영지원팀장과 정비팀장이 쏭 하우스에 도착했고,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000사 사무실로 향했다. 000사는 파키스탄 현지 특수목적법인이지만 우리회사가 투자해서 만든 회사이고 우리가 대주주라 회사 경영진은 모두 우리회사 사람들이다. 사실, 내가 처음 지원하려던 보직이 이 회사 사장(법인장) 보직이었다. 도착해보니 사무실도 사장실도 나름 위엄이 있다.


 나보다 3주쯤 먼저 부임한 법인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보필하는 차장들도 대부분 아는 분들이라 마치 꼭 본사에서 모임을 갖는 느낌도 든다. 집무실에서 간단히 담소 나누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구내식당으로 안내받았다. 뭘 어떻게 해 먹고 사나 궁금했는데, 한식 조리가 가능한 현지 요리사를 고용해서 매 끼 한식으로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거짓국, 오이소박이, 계란말이 등 한국에서 먹는 맛이랑 똑같았다.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갈 현장 사이트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아무거나 잘 먹는 스타일이지만 먹는 걱정도 안 해도 되겠다. 


000사에서 상다리 부러질 만큼 귀한 한식을 넘치도록 차려주셨다.


 식사 대접도 잘 받고 인사하고 출발했고, 오후에는 현지폰을 개통했다. 개통된 폰을 받는 건 줄 알았는데 비닐도 안 뗀 박스와 유심만 건네주어서 조금 당황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스마트폰은 철저하게 개인 세팅을 하지 않으면 초기 구동 자체가 안 되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쓰던 국내폰에 유심만 꽂아도 될 것 같았는데, 그렇게 하면 세금 폭탄을 맞아 여기서 새 폰으로 개통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댄다. 몇 달 전에 딸내미랑 같이 출품한 해외자원웹툰 공모전에 당선되서 그 비용으로 딸이랑 나랑 스마트폰을 업그레이드했는데 괜히 무리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딸이랑 같이 했던 공모전 공모 당선 이야기]

https://brunch.co.kr/@ragony/121


 한 달만 참았으면 새 폰 생기는데 아깝구나. 그땐 몰랐지, 내가 해외 나오게 될 줄. 지급받은 폰은 국내폰이랑 대충 다 비슷한데, 듀얼유심이 가능하고 충전기가 이 나라 규격에 맞는 삼발이 타입인 게 조금 달랐다. 폰 개통에 성공하고 다 좋았는데, 명색이 LTE 통신규격이래는데 속도가 우리나라 3G 보다 느리다. 뭘 해도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도 인터넷이 되는 게 어디임?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다. 이제 24시간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을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 


현지 폰 개통(현지 유심 장착). Jazz는 파키스탄의 유명 통신회사 중 하나이다.


 저녁에는 재 파키스탄 요원들 환영회식이 있었다. 한국인이 밥먹는 자리, 아무리 금주국가라 해도 술이 빠질 수 있나. 파키스탄은 나라 전체가 금주국가라(무척 신기하고 생소하지만) 식당에서 술 판매 자체가 불법이라고 한다(일부 특별허가를 받고 파는 식당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식당. 중국 고량주와 현지 맥주를 판다(물론 비싸다). 다 여기를 고른 이유가 있댄다. 파키스탄에서 시켜먹은 중국요리도 한국에서 먹던 맛이랑 크게 차이가 없다. 나와 두 분의 법인장님, 그리고 파견차장들 모두 타국에서 사이좋게 오손도손 도우며 잘 살기로 도원결의하고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 모두 전담기사들이 수행하고 있어 음주를 해도 대리운전 부를 필요도 없어 편하긴 했지만,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현지 기사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어서 자율주행 시대가 되면 좋을 텐데. 어, 그러면 기사님들 실직을 걱정해야 하겠네...

    

파키스탄은 대중 식당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가져가서 마시는 것도 물론 금지된다. (다만, 암암리에 파는 곳도 있다...중국인이 경영하는 모 중식당....)


 기분 좋게 회식을 잘 마치고 다시 쏭 하우스, 숙소에 도착했다. 파키스탄도 12월, 1월이 짧은 겨울이다. 겨울이라고 해봤자 최저 온도가 5도 밑으로 잘 안 내려가는 늦가을 정도의 날씨인데, 실내는 무지 춥다. 온돌문화가 아니고 기껏해야 온풍기를 돌리는 정도인데, 온기가 바닥에서 올라오지 않으니 무척 생소하고 이질적이고 매우 매우 건조하다. 잠자고 있으면 너무 건조해서 마치 침대 위에서 오징어가 구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가습기를 틀면 수돗물에 석회질이 너무 많아서 진동자에 금방 석회가 끼고 고장난댄다. 가습기에도 생수를 쓰는 걸 권장받았다. 양치도 생수로만 하는 사람들이 많댄다. 나라는 가난한데 물도 일일이 사 먹는 나라구나. 아니, 그러기엔 생수값이 너무 비싼데? 서민들이 이걸 다 사 먹어요? 당연히 국민의 대부분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고, 부자만 생수를 마시거나 정수기를 설치해서 쓴다고 한다. 석회질이 너무 많은 수도 탓에 신장염, 신장결석 환자가 매우 많고 그것이 중심 도시마다 신장 전문 클리닉이 있는 이유라고 한다. 새삼 우리나라가 살기 너무 좋은 나라라고 느껴졌다.     


 어쨌든 피곤한 차에 잘 잠들어 자고 있는데 새벽에 염불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고 생소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무슬림 기도시간이다.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 5번 기도해야 하는데 그 첫 시간이 해뜨기 한 시간 전. 조용히 하는 기도가 아니라 사방팔방에 기도소리가 스피커로 울려 퍼진다. 인근에 모스크가 있는 게 틀림없다. 아, 여기 있으면 새벽에 잠자는 건 불가능하겠네. 자동빵 아침형 인간이 되겠구나.     


쏭하우스 식당 및 조식메뉴(2021.12.24.)


 쏭 하우스는 한인 전용 비즈텔이라 식사도 한식으로 제공해준다. 아침, 저녁은 숙박비에 원래 포함이고 요청하면 점심도 해준다고 했다. 아침상도 한식으로 정갈하게 잘 차려줘서 잘 먹고 숙소에서 조금 기다리니, 오늘은 은행원들이 숙소로 방문했다. 내가 은행가서 계좌 만드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나는 여기 VIP 자격에 해당되어 은행에서 출장 방문 서비스를 해 주는 거라고 했다. 회사 경비 수십억의 출납 승인 권한이 나한테 있으니, 그럴만하기도 했다. 책임자의 예우란 건 좋구나. 대신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거겠지. 


 뭐라 뭐라 한참을 설명하던데(물론 영어로), 다 모르겠고, 싸인하라고 하는데다 싸인만 했다. 계좌는 1~2주 뒤에 등록승인 된다고 했다. 아, 뭐가 그렇게나 오래 걸려요? 묻고 싶지만 해주는 게 어딘가. 따진다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닐 거 알아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0000사 사무실 외부 전경


 계좌 개설신청 작업이 끝나고 팀장님들과 함께 사업개발회사인 0000사 사무실에 방문했다. 신설 법인이라 아직 000사 사무실보다는 뭐가 조금씩 허전했고, 바로 옆이 자동차 정비공장이라 소음도 심했다. A 법인장님이 다가오는 6월 추가 파견자 사무실 마련 방안과 장기적 근무여건을 고려하면 사무실을 이전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 여기저기 후보 사무실 건물을 알아보고 있다고 알려줬다.


 0000사에서도 직원들과도 같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역시 이곳도 현지인인 한식 요리사를 고용해서 매 끼 한식으로 밥해먹고 있었다. 그래, 먹는 건 중요하지. 먹거리 걱정했는데 생각해보니 파키스탄에 와서 한국에서보다 한식을 더 자주 먹는 것 같다. 원래 아침 안 먹는 편인데, 여긴 일일이 차려주니 물릴 수도 없고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금주는 부임 첫 주이므로 공식 근태가 “부임출장”인 기간이다. 공식 일정은 이슬라마바드 내 부임인사 및 제반 근무여건 세팅까지만 끝내고 차주부터 현지 사이트 정상출근이라 시간이 조금 남는다. 내 입국수속과 정착을 돕는 경영팀장이 “지사장님, 이때 말고는 주중에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도심 인근 관광지 조금 둘러보실래요?” 제안하길래 딱히 바쁜 일도 없고 그러자고 했다.


"Monal" 레스토랑 전경. 실내, 실외 테이블이 모두 있는데 오늘따라 미세먼지가 심해서 산 아래 경치가 하나도 안 보인다. ㅠㅠ


 목적지는 인근 산 중턱에 있는 노천식당. 식당 이름은 Monal인데, 이 도시 대표 관광지 중 하나로 외지인들도 관광 목적으로 많이 온다고 했다.(Monal은 히말라야 주변 산악지대에 서식하는 무지개꿩 이름이라고 한다.) 유럽 노천 카페 느낌이 나는 식당이었는데 시내 전경을 다 볼 수 있으니 경치도 즐기고 식사도 즐기는 곳이었다. 다만, 내가 찾아간 날은 일 년 중에서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 분명 경관이 좋을 것 같았는데 뿌연 먼지에 덮여 갑갑한 경관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대기질인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출장을 가면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가 그 나라의 깨끗한 공기였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그 수준으로 가려면 멀은 듯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근 중국의 대기질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맑고 깨끗한 하늘은 아직도 요원할 듯하다. 2020년도 봄철의 우리나라 대기질이 얼마나 좋았던가. 공장을 멈춰버린 중국 때문에 대기질이 급격히 좋아진 거란 걸 모르는 국민들은 없을 거다. 이슬라마바드의 대기질이 안 좋은 건, 여전히 목탄을 겨울철 난방연료로 쓸 수밖에 없는 환경, 매연에 둔감한 낡은 자동차, 북쪽으로 산맥으로 가로막혀 통풍이 안 되는 지형적 특징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문제라고 한다.


 Monal은 스테이크, 케밥, 커리, 치킨 등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이던데, 차류도 판매한다. 가격은 이 나라 물가 생각하면 비싼 가격이겠지만 우리나라 대중 음식점 정도 수준이라 크게 부담스럽진 않다. 점심을 먹고 온 터라 각자 차 한잔만 시켰다. 내가 시킨 건 Royal Drinks라는 메뉴. 뜨거운 음료 중 제일 있어 보여 시켰는데 7가지 다른 맛이 난다고 적혀있다. 달고 시고 쓰고 오미자에 설탕이랑 초콜렛 섞어 뜨겁게 주는 맛이랑 비슷했다. 가격은 645루피. 한화 약 4,000원에 해당하니 관광지 성격 생각하면 한국 기준해서는 싼 편인 것 같은데 우리가 고용하고 있는 운전기사 하루 출장비 중 식비로 500루피를 주고 있으니 세 끼 밥값보다 비싼 가격이니 엄청나게 비싼 것 맞다. 


오미자차 같은 The Royal Drinks...........!!!!!! 무려 645루피!!!!!


 잠깐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금요일 오후라 이제 다들 공식적으로 퇴근할 시간이다. 여긴 도심 한복판으로 와도 당최 신호등이 없다. 신호등이 없어도 다들 알아서 잘 피해하고 잘 꺾어 다닌다. 나는 도저히 운전할 자신이 없다. 심지어 헷갈리게 차량도 우핸들이고 도로 방향은 반대다. 혹시 몰라 준비해왔는데 국제운전면허는 복귀하는 그날까지 쓸 일이 없겠다. 


 시기상 겨울이지만 우리나라만큼의 추위가 아닌 늦가을 수준 정도의 날씨라 분위기가 안 나긴 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 24일이다. 이 나라는 원래 태생부터가 무슬림을 위한 이슬람 나라도 만든 나라라서 도심 전체에 성탄 분위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크리스마스 당일이 이 나라 건국의 아버지인 무하마드 알리 지나 탄신일로 성탄보다는 건국자 탄신일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다시 쏭 하우스 숙소로 가니, 어제와는 살짝 분위기가 다르다. 입구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있고 캐롤도 준비해서 로비에 울려퍼진다. 매니저가 나름 크리스마스 분위기 신경을 썼다. 쉬고 있는데 나랑 같이 파견나온 차장들 연락이 왔다.


크리스마스 파티룸. 쏭 하우스에서 제공.


 “지사장님,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우리끼리 조촐하게 파티 하시죠.”

 “아니, 나랑 있으면 쉬지도 못하고 피곤하고 힘들텐데, 그냥 쉬셔요. 여기 밥 잘 나오니까 내 밥은 내가 알아서 먹을게요.”

 “아, 저희도 어차피 밥 먹어야 하잖아요. 저희가 그쪽으로 갈게요.”     

 나야 고맙지. 피자와 약간의 술을 준비해서 온다고 했고, 나는 매니저한테 부탁해서 한국식 치킨과 두부김치를 주문했다. 매니저는 우리를 위해서 별실을 준비해주었다.     

 “와~~~, 한국보다 더 크리스마스 파티를 성대하게 하는 것 같은데?”     


기대 이상으로 성대했던 크리스마스 저녁 파티


 정말 그랬다. 음식도 근사하고 분위기도 잘 맞고. 덕분에 타지에서 외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파키스탄 첫 주가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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