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5.토요일 이야기
앞서 얘기했지만, 파키스탄 한국인 파견자 사회에선 골프가 필수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파키스탄에 있는 한국 사람 중에서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이구동성 다른 건 두고 오더라도 골프채는 가지고 오라고 했다.
부랴부랴 골프장비를 장만해서 들고 오기는 했지만, 골프를 쳐본 건 대학 4학년 때 대학 교양강좌로 7번 아이언 똑딱이 몇 번 해본 것 말고는 전혀 전혀 흥미가 없던 스포츠였다. 일단, 장비가 너무 비싸고, 레슨비, 필드비, 캐디비 등 제반 비용도 너무나 비싼 스포츠라 입문할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런데 내 팔자에 골프라니. 이런 식으로 강제로 골프에 입문하는구나. 가뜩이나 머나먼 이국에 단신 부임인데, 주말에 동료들하고 어울리는 유일한 수단이 골프뿐이고, 골프를 안 치면 소외되어 너무나 무료할 게 뻔했다.
어떻게든 대충 급하게 골프장비는 마련해서 오긴 했는데 오자마자 필드 나갈 수는 없지 않나. 먼저 부임한 차장들이 또 친절하게 골프 레슨을 만들어줬다. 수년간 현지 한국인들에게 검증된 실력있는 현지인 강사라고 했으니 일단 믿어보자. 레슨비는 한 시간에 1,500루피. 한화로 약 1만원. 이 나라 물가수준 생각하면 싼 금액은 아니지만 한 시간 내내 밀착해서 동작도 봐주고 공도 올려주고(여긴 공이 자동으로 배급되는 시스템이 없다. 일일이 손으로 놔야 한다.) 하는 수고비 생각하면 또 수긍될 만했다. 이슬라마바드 골프장에 딸려있는 골프연습장은 여느 한국 골프연습장처럼 2층인데, 측면 그물은 있지만 바닥 그물이 없다. 공을 날리면 고용된 인력이 일일이 손으로 집어 회수하는 시스템. 뭔가 전부 매뉴얼, 아날로그 식이다.
한국에선 7번 아이언부터 시작한대는데 코치 선생님은 9번부터 치랜다. 짧은 게 치기 편하댄다. 아, 그건 아는데... 그럼 나중에 긴 건 어떻게....? 물어볼래다가 영어로 논쟁하기도 싫고, 오늘 처음 입문하는 학생이 토 달면 안 되지 싶어 시키는 대로. 저 멀리 보니 이제 갓 입문하는 나랑, 동료 한 사람만 빼곤 모두 필드 플레이 중인 게 보였다. 아, 골프장 느낌이 이런 거구나. 도심 한 가운데 골프장이 있는 것도 신기했고, 조금 전까지는 도심이었는데 골프장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느껴지는 기운이 아예 다른 것도 신기했다. 나도 삑사리만 면하면 필드 가서 쳐야지. 뭐, 프로 될 것도 아니고 같이 어울리고 즐기면 되는 거겠지. 마음 편하게 먹고 치려는데, 이미 쳐 본 사람들이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고 여유 있는 웃음을 날린다. 뭐, 아무렴 어떻노. 때가 되면 되겠지. 아니면 말고.
안 쓰던 근육을 쓰려니 한 시간만 골프클럽을 휘둘러도 사방이 아프다. 오늘은 이만하자고 끝내고 클럽하우스에 가봤다. 넓은 초원을 사방에 두고 클럽하우스에서 커피 한잔 시켜서 햇살받으며 마시고 있으니 이런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런 기분으로 골프장에 오는 거구나 싶었다. 도심 공기는 미세먼지 최악인 상황이고 사실 이곳 골프장도 뭐 크게 다를 게 없는데, 그러고 있으니 공기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차 한잔 마시며 동료들과 수다 떨고 있으니, 18홀을 다 마친 회사 사람들도 하나 둘 클럽하우스로 모인다. 다 같이 인사하고 차 한잔 마시다 도로 숙소로 향했다. 주말은 그렇게 오전에는 골프 치고, 오후에는 씻고 쉬고 빨래하고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단다. 아, 이게 이곳 생활의 일상 루틴이구나. 적응은 하되 너무 한쪽으로 빠지진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