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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20. 2022

파키스탄 입국 첫날

2021.12.23. 목요일 이야기

 드디어 파키스탄에 도착하다.     


 한국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시간이 12월 22일 새벽 0시 25분인데 여기 도착한 현지 시간이 23일 새벽 1시 40분이다. 만 하루하고도 1시간 15분이 더 걸려 도착한 셈인데, 이슬라마바드가 한국보다 4시간 빠르니까 한국 이륙에서 파키스탄 착륙에만 하루(24시간)하고도 5시간 15분이나 걸렸다. (그나마 연착이 없는 게 어디냐...)


 어릴 때는 자유민주주의 / 공산주의 국가 이분법이 확실한 시대여서 우방국이 아니면 입국 자체가 힘든 시절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요즘은 그런 이분법이 희박한 시대라 이제 어느 국가가 두 분류 중 더 가까운 쪽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다. 파크스탄은 공산국가? 민주국가? 아이고, 이제 의미 없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도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지 않은가. 코로나 방역정책의 이면에는 국민들의 협조라는 미명 아래 상당분의 자유를 반납한 것이 사실 아닌가. 비단 코로나만 그런가? 더 말하면 잡혀갈라. 아무튼, 우리나라도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며 요즘 시대에 그런 것 따지는 게 이상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픈 거뿐이다.     

 파키스탄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죽겠어? 그래. 들어가자.     


 사실 입국심사 줄을 설 때부터 살짝 긴장했다. 비행기 통틀어 맑은 피부의 수염 기르지 않는 동양인은 딱 우리 셋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 유럽인처럼 보이는 백인들 몇 외에는 누가 봐도 중동 또는 서남아시아 사람처럼 보이는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사대 안내원이 대뜸 차이니즈? 하고 묻는다. 노노 코리안. 위 아 코리안즈. 중국인들은 별도의 심사대가 따로 있나 보다. 우리는 기타 외국인 심사대로 안내받았다. 친절한 제복 입은 안내원 상상하지 마시라. 이 나라는 공공장소에서 여자 찾아보기가 힘들다. 공항 종사자는 100% 남자였고, 경찰복을 연상하는 무서운 제복을 입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남자도 여럿 보였다.


 1년 먼저 파견 나가 있던 현지 직원을 통해 현지 스마트폰을 개통해둔 상태라 로밍이고 선불 유심이고 뭐고 아무것도 준비 안 하고 왔다. 사전에 미리 환영 나가 있을 테니 걱정마라고 했지만 그래도 내리자마자 연락이 안 되고 공항 미아가 되는 거 아닌가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무료 와이파이가 되었다. 쾌적한 속도는 아니었지만 카톡 문자라도 가는게 어딘가. 안심이 되었다.     


 이미 이 나라에 몇 번 출장을 와 본 A법인장님이 비자 입국자는 비자 심사대에서 확인 도장을 받아 와야 한다고 알려줬다. 아,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지. 난생처음 받아온 비자인데 그런 거 알 리가 있나. 비자 심사대 가니까 얼굴 한번 쳐다보곤 아무것도 안 묻고 날짜가 찍힌 도장 찍어주고 그냥 보내준다. 다행이다.     


비자에 도장 꽝. 이 문서는 여권만큼이나 엄청 중요하니 잃어버리면 큰일 난다. 두고두고 써먹는다.


 도장받은 비자를 들고, 여권을 챙겨 입국심사대에 섰다. 역시 아무것도 안 묻고 그냥 통과다. 사실, 사전에 승인받은 비자가 있는데 입국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조마조마했는데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역만리까지 와서 뭐 하나 잘못되면 구해줄 사람도 없는데. 암암. 아직까진 순조롭다.     


 개도국 치고는 공항 상태가 깨끗하고 출입국 수속도 순조로운 편이었다. 공항이란 게 그 나라의 첫 이미지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인천공항은 정말 세계 Top of Top이다. 세계 많은 곳을 가봤지만 우리나라 인천공항만큼 깨끗하고 첨단인 이미지를 가진 곳이 없었다. 해외 나와보니 없던 애국심도 막 생긴다. 어쨌든 이 나라의 공항도 기대보다 좋았다. 사진 찍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만, 출입국 수속장 주변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안 관계상 촬영금지 구역이므로 스마트폰 자체를 꺼내지 않았다. 입국부터 밉보이면 큰일 나니까.     


 별 무리 없이 입국 수속을 다 마치고 짐만 찾아 나가면 되었다. 여느 여행객, 본토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비자를 받아 이 나라에 살러 들어온 사람이니까 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나라는 무조건 골프가 필수라는 소리를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와서 수많은 옷가지와 책자들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골프백을 싣고 왔다. 짐 찾는 컨베이어에서 거의 40분을 기다리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자기 짐을 다 찾고 나가는데도 내 골프백은 대체 나오질 않는다. 아... 오다 어디 다른 곳으로 샜나...? 돈을 안 줘서 쥐고 있나? 별 생각이 다 드는데 또 무서운 안내원이 와서 뭘 찾는지 친절히 영어로 묻는다.     


수하물 도착 컨베이어 벨트. 우리 골프백만 안 나온다.....


 "What kind of lugage do you find?(무슨 짐 찾아요?)", "My Golfbag didn't arrive yet.(골프백이 아직 안 나왔어요)", "Oh, It's not here, Over there~.(아, 그거 여기 아닌데, 저쪽이에요)"     

 수 차례 와 봤다는 A법인장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가 보다. 대형 수하물 찾는 곳이 컨베이어를 한참 지나친 아예 별도의 장소에 있었다. 아니 그럼 어디에라도 좀 써붙여놓고 안내 좀 해주지... 이래서 선진국 하고 차이가 있나 보다. 그래도 안내원이 안내해줬으니까 낙제점은 아니다. 시간을 너무 허비해서 그렇지.     


 드디어 44kg 가득 채운 수하물을 다 찾아 카트에 착착 담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다른 여행객들처럼. 그런데 아뿔싸. 타이밍을 놓쳤다. 수백 명 우르르 나갈 때 같이 나가야 심사대가 붐벼서 그냥 파묻혀서 나가는데, 골프백 찾아 나가려니 우리밖에 없어서 세관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 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고급 골프채를 싣고 오는 너무 티 나는 양반들 아닌가...     


 세관원은 아예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일부러 무서운 분위기 조성을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태도도 거칠어서 노트북을 두 개나 수납한 기내용 트렁크를 X레이 투과 컨베이어 통과 후 바닥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암튼 뭐 나는 식재료를 싸온 거도 아니고, 술을 가져온 거도 아니고, 세관 신고할 새 상품도 없고 시비 걸릴 게 없으니 무사통과.     


 어, 그런데 옆에서 뭐가 좀 시끄럽다. 같이 입국하는 A법인장님 골프채가 걸린 모양이다. 세금내고 반입하란다. 대포가 크고 영어가 누구보다 능통한 A법인장님이 그런데 당할 리가 없다. "아니 세상 어느 나라가 쓰던 골프채에 반입 세금을 메기는 곳이 어딨습니까? 이거 내가 직접 쓰던 거예요. Used One!!!" 유창한 영어로 큰 소리로 박박 우기니 이번엔 그냥 보내준다. 어... 나는 안 잡던데. A법인장님 잡아보고 안 통하니 그냥 보내주나 보다. 이래서 처음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런데 이번엔 뒤가 또 시끄럽다. 자기 몸만큼이나 바리바리 뭘 싸들고 온 직원 자녀 S양이 걸렸다. 애보고 막 뭐라 그러는데 서로 대화가 전혀 안 된다. A법인장님은 아직 자기 처신이 덜 끝났고... 겁나지만 내가 나섰다. X레이 찍힌 박스 뭉치를 콕콕 가리킨다. 새 상품은 돈 내고 반입하란다. 짐을 열어보니 마스크팩 여섯 상자가 나왔다. 50달러 내고 반입하란다. 엥? 6만원? 마스크팩 한 상자가 몇천원 안 할 텐데 배보다 배꼽이 더 비싸? "아니, 이거 재판매물품도 아니고 개인이 쓰려고 조금 가져온 건데 너무해요", "안됩니다. 최대 2박스까지만 개인으로 인정하고 이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무슨 세금이 50달러에요? 새거 사도 그렇게 안해요."(물론 대충 다 영어로 진행됨)     


 S한테 상황을 설명하고 제안을 했다. 50달러면 근 6만원인데, 그걸로 새로 사는 게 낫지 않니? 그냥 다 포기해버린다 할까? 아, 그건 또 싫단다. 그냥 돈 내겠단다. 음... 구매원가만 증빙해서 보여줘도 이렇게 바가지 관세는 안 물 텐데. 찾아볼 수도 없고... 이 때 경험많고 융통성 있는 A법인장님이 우릴 구해주러 왔다. S랑 같이 납부창구에 가서 몇 마디 주고받더니 그냥 30달러로 협상하고 왔다. 역시 탁월하고 유능한 협상가다. 사업추진 적임자라는 신뢰가 팍 들었다.     


 암튼 앞으로 뒤로 털려준 덕분에 나는 무사통과. 드디어 입국이다. 이제 시간은 파키스탄 현지 시각으로 새벽 4시가 다 되어간다. 입국 게이트를 딱 벗어나니 누가 봐도 현지인들과 다르게 생긴 동양인들이 보였다. J차장, K차장, A차장, L차장이 마중 나와 있었다. 회사 차량과 현지인 운전사와 함께.    


입국환영 화환을 목에 걸고 다 같이 기념샷

 하하하- 무슨 금메달리스트 귀국한 것도 아닌데, 입국 화환을 만들어 목에 걸어준다. 그래, 무사히 살아서 이역만리 먼 곳까지 무사도착 했으니 축하할만하지. 그렇게 환영화환을 목에 걸고 준비된 차에 탔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량. 튼튼한 SUV를 타야만 하는 이유가 다 있다고 한다.


 "지사장님, 이 차가 앞으로 지사장님이 주로 이용하실 차량이구요, 이 분은 기사셔요. 이 분도 회사 정직원입니다. 조니라고 부르시면 되요." 경영팀장님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아니 이제 갓 부장 단 사람한테 의전차량과 기사라니. 좀 많이 과한 것 같다. 그런데 대외 파견을 가면 통상 사내직급보다 1직급 상향된 보직으로 나가고, 여긴 조직장의 자격인데다 위험국가이니 그렇겠구나 바로 수긍이 되었다. 나는 적응이 빠른 사람이니까.


 파키스탄 현지인인 조니 기사님과 간단히 통성명하고 지정석에 올랐다. 44kg 짐을 안고 지고 집에서 공항까지 오느라 쉽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옆에서 알아서 이동시켜 주고 실어준다. 지사장님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마란다. 아, 도착과 동시에 적응 안 된다. 바로 그저께까지 실무차장으로 살았는데. 내 옆에 수행원이라니.     


 해 뜨기전에 조금은 자야지. 이제 숙소로 향했다. 첫 숙박지는 이슬라마바드 쏭 하우스. 한인 전용 비즈니스텔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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