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생계형 아르바이트
나는 소문난 사내 공모전 사냥꾼.
통상 사내 공모전은 귀찮은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참여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
바로 그 점이 나의 공략 포인트.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경쟁률. 조금만 신경 써서 커트라인만 넘기면 적은 에너지로 쏠쏠하게 용돈 벌 일이 생긴다. 고위 간부가 되기 전엔 사내 공모전에 매우 높은 확률로 내 이름을 선발작으로 올릴 수 있었다. 공모전 분야는 다양했다. 논문 공모, 사업 홍보 UCC 동영상 공모, 표어 공모, 창의적 멘토링 활동 공모, 새 건물/공간/시스템 이름짓기 공모 등등. 공모전의 부상은 문화상품권, 온누리상품권 등 주로 상품권이 많았지만 드는 노력 대비 쏠쏠한 용돈벌이가 되어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고, 직급이 올라가니, 공모전 선발 확률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다수의 공모전이라는 것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한다기보다 사내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적극 홍보하고 공감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하다 보니 나이 든 중견간부가 공모전을 독식하면 안 되는 무언의 룰 아닌 룰이 있는 것. 아... 용돈 벌이로 쏠쏠했는데. 생계형 알바였는데 수입이 끊기는구나.
현금 흐름을 유지해야 하니, 사외로 눈을 돌렸다. 그래, 공모전이라는 것이 사내만 있는 게 아니잖아. 경쟁률이 조금 더 높겠지만, 잘만 찾아보면 블루오션이 있을 거야.
공모전 블루오션은 별 거 없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귀찮고, 어려우면서, 참신하기가 쉽지 않은 아이템을 잘 추리면 된다. 물론 그런 주제는 나한테도 어렵고, 귀찮고, 독창적이기 쉽지 않은데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참여만 하면 확률이 화아아악~ 올라간다.
수많은 사례가 있는데, 오늘은 일단 하나만 먼저 소개해본다.
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건 상금! 상당히 짭짤해 보인다. 거기에 시상 편수도 많은 편이라 경쟁이 덜 하겠다는 확신이 보인다. 기본만 하면 컷 인 하겠어. 웹툰은 마침 청소년만 응모가 가능하네? 이런게 개꿀이지. 성인 참여 공모전은 사실 난이도가 너무 높거든. 마침 막내딸이 초등학생이니 응모 자격이 된다.
초등학생한테 "자원개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자유 주제로 10컷 이상의 웹툰"을 그리라는 요구는 조금 과한 것 같다. 중, 고등학생도 응모자격은 되는데 공부하느라 바쁜데 이런 거 할 시간이 어딨나. 그럼 초등학생 수준 정도의 작품을 만드는 걸 도와주되, 커트라인 안에 드는 걸 목표로 공략하면 최소 50만 원 획득 가능하단 계산이 나온다.
"딸, 요리 캄. 요거 함 봐바바."
"뭔데 아빠?"
"공모전. 잘하면 백만 원 준대. 아빠가 다 생각이 있는데, 그림은 딸내미가 그려야 해. 대신, 상금 타면 반땡 OK?"
"OK~. 그럼 나 50 아빠 50 갖는거야? 근데 아빠, 해외자원개발이 뭐 하는 거야???"
"아, 그게~ ....(쏼라 쏼라)"
고렇게 기본 교육과 기본 계약을 마치고... 본격적인 콘티를 구상해본다. 자원개발 중요성과 필요성이니까... 애들 시각에 맞춰서... 동화를 차용해보면 좋겠네. 뭐가 좋을까나... 아, 그래, 근면 성실 및 미래 대비를 강조하는 "개미와 베짱이"면 좋겠다~! 그렇게, 딸내미하고 둘이서 백지에 기본적인 스토리 구상을 하고 본격적으로 만화 제조. 아무래도 이런 웹툰 창작은 백지에 도화지보다는 IT기기가 편하지. 그렇지만 요즘 대세인 아이패드에 애플펜슬이 그때는 집에 없었다. 창작 도구는 딸내미의 오래된 중고 갤럭시FE 노트. 창작어플은 기본 어플인 펜업. A4에 둘이서 머리 맞대고 구상한 콘티를 보고 야무지게 따라 그리는데, 아래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 그린 개미하고 마지막에 그린 개미하고 느낌이 조금 조금 달라져간다. 아무래도 처음 그리는 그림이다 보니 통일성을 갖추기는 힘들지. 그래도 이만큼 그리는 게 어디야.
흘러간 기억의 회상이라 후다닥 전개가 되는 것 같지만 사실 하루에 한 시간씩 거의 2주 이상을 투자했으니, 확실히 가성비가 나오는 공모전은 아녔다. 귀찮아하는 딸내미를 얼르고 달래고 때로는 색칠도 도와주고 하면서 드디어 완성. 개별 작화를 웹툰 하나의 파일로 엮는 건 아빠 몫. 당연히 안 해봤고 할 줄 모르지만 인터넷 뒤져보니 무료로 하나로 합쳐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서 무난하게 해결.
아래는 완성작. 오~ 나름 괜찮은데?
공모전을 접수하면서 나름 확신이 있었다. 대상 아니면 우수상이라고. 판단의 근거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췄고, 스토리를 도와준 건 맞지만 어쨌든 아이 스스로 그린 작품이며, 자원개발의 주제를 강하게 어필했고, 쉽고 재밌게 읽힌다. 이 정도면 채점기준 합격이지. 1등 1등 염불을 외고 다녔는데... 두 달쯤 뒤 결과가 발표되었다. 에고, 아쉽게 우수상.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딸내미 작품이 최고드만 심사항목 어디에서 밀렸을래나.
사실 성인부에서 열리는 동영상 공모전도 기본 콘티를 짜 봤는데, 한 번에 두 개를 동시에 하는 건 무리라, 표지만 만들고 결국 완성을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까운 마음도 들지만, 성인부 공모전이라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든다. 실제 전년도 수상작을 보면 전문 동영상 툴로 전문가가 만든 느낌이 난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긴 하지만 이 시국에 꽁돈 70만 원이 어디냐.(꽁돈은 아니고 엄연한 노동의 댓가!)
그걸로 딸내미는 꿈에 그리던 아이폰(물론 중고로)을 샀고, 나는 나대로 사회적 체면을 세워 줄 갤럭시 노트(물론 중고로)를 샀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딸내미에게는 유용한 돈벌이 삶의 체험현장 교육이었으며, 강한 목적의식 아래 그림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게 다 좋을 수는 없어서, 후유증도 좀 남았는데, 언제나 용돈이 모자란 딸은 "아빠, 요즘에는 공모전 뭐 없어?" 하며 그 아빠에 그 딸로 공모전 사냥에 나선다.(응모하기 전이라 밝힐 수는 없지만 요즘도 뭔가 그리고 있다...)
안 보이면 멀어진다고, 한동안 공모전 사냥을 안 하고 브런치에만 전념했는데, 오랜만에 공모전 공지가 뭐가 떠 있으려나 한번 검색해 봐야겠다.
블루오션, 잘 찾으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