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평온한 월요일이 되기를 기원했건만 아침부터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 들려온다.
전날 지사 인근의 산불을 수습하느라 모두 경황이 없는 와중에 이번에는 새벽 5시경에 지사 정문 근처에서 대형 화물트럭이 브레이크 파열로 전복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나라로 치면 119에 해당되는 1122 구조대를 급히 불렀으나, 트럭 운전자만 겨우 구조되고 조수석에 탔던 조수는 트럭이 전복되며 차체에 깔려버려서 쉬이 구조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1122도 자체 중장비는 보유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경비보안 책임자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이미 지사 협업사에 연락하여 지사 내에서 대기 중이던 협업사 소유의 굴삭기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우리 소유가 아니므로 책임자 결재를 득하고, 협업사에 공문을 발송하여 작업 협조를 얻고, 용역에 따른 대금 지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회사의 업무지만 당장 사람이 죽어가는 일인데 그런 게 어딨나. 일단 되는대로 투입하고 볼 일이지. 경비보안 책임자에게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고 칭찬해주었다. 긴급한 상황은 선조치 후보고. 아주 당연한 일인데 "지시하지 않아서" 가만있는 갑갑한 경우도 생각보다 잦은 빈도로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조직원이라면 누구나 "내가 상급자라면"하고 가정하고 판단하는 훈련을 평소에 해야 한다고 주장해본다.
지사 내에 있던 굴삭기를 동원하는 일조차 운전기사를 수배하고, 사고 현장에 이동하여 수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다. 여전히 차체에 깔린 조수의 생사는 모르는 상황. 마음은 안타깝지만 내가 있어본 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사고 현장은 경비보안 책임자에게 맡겨두고 사무실에 출근하여 오늘의 업무를 챙겨보고 있던 중 왓츠앱 알람이 울린다. 트럭을 인양해서 조수를 찾았다는 소식. 그런데... 보고 문장이 느낌이 싸~하다.
"Body has been recovered under the truck.(트럭 아래서 신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구출되었습니다.... 가 아니네? 사고 정황을 보고받고 지레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희망을 가져봤는데, 시신이 수습되었다는 소리다. 연이어 올라오는 수습 현장 동영상.
아...ㅠㅠ 대체 이 나라는 모자이크가 없다.
피떡이 된 채 말 그대로 납작해져 버린 시신... 중량물에 깔리면, 사람 몸이 저렇게 되는구나... 디테일하게 묘사해본 들 나도 너무 괴롭고, 읽는 사람도 즐거울 게 없으니 정말 처참하고 참혹하다는 표현 정도만 해 놓자. 동영상을 본 것만 해도 충격이 큰데, 현장에서 사고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들의 충격은 과연 어떤 감정이었을까. 왓츠앱 매니저방을 공유하고 있던 다른 직원은 차마 영상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굳이 안 봐도 좋았을 것을. 사진과 영상의 힘은 위대해서 또 격하게 공감을 해 버린다.
아.. 삶과 죽음이란. 저 고인은 사고 현장에서 어떠셨을까. 고통 없이 가셨을까. 시신이 가족에게 인계될 텐데, 가족은 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까. 온전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것도 하늘의 큰 축복이겠구나. 아, 아직 젊어 보이는 분인데 결혼은 하셨을까. 자녀는 있을까. 자녀가 있다면 아내와 자식은 아버지의 저런 참혹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왜 이 나라는 정비 수준이 위태로운 차가 길마저 위태로운 곳을 안전벨트도 없이 운전하도록 방치할까. 어쩌면 막을 수 있지도 않았을까.
내가 만일 저 상황에서 운명의 끈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뭘 택할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숨만 붙어있는 산 송장, 사고 직후 고통 없이 즉사. 그래도 살아있는 쪽이 나을까? 고통 없이 빨리 가는 게 나을까? 고인의 참혹한 시신이 아직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고 있는 나는, 그런 몸의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다. 고통 없는 죽음이 훨씬 자비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불에, 사망 교통사고에 정신이 몽롱한데, 오전에 경찰서장이 지사로 찾아왔다.
3인조 테러리스트가 외국인 대상으로 테러를 계획 중이라는 첩보가 있으니, 앞으로 각별히 경호를 강화하라는 내용. 당분간 시외 이동 시 이슬라마바드까지 밀착 경호를 해 주겠다는 제의다.
사고 사망사고 충격에서 정신도 안 돌아왔는데 이번엔 또 테러경보라니. 아침의 참혹한 영상이 오버랩되면서 시신은 온전히 찾게 해 주세요 상상해버리는데 첫 주의 시작부터 너무 암울하다. 나는 당장 죽을 준비가 되어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준비한 게 없는데. 내일 테러가 난다면 뭐부터 준비해야 하지? 유언을 미리 써 둬야 하나? 공증을 안 받으면 유언장 효력이 없다고 얼핏 들었는데? 뭐, 그런데 유언으로 남길 말이라도 있나? 아니지, 이런 거 너무 구체적이면 말이 씨가 된다던데?
아...
저 그냥 죽음 같은 건 준비 안 할래요. 안전하게만 한국으로 돌아가게만 해 주세요...
지사 안은 매우 평온하지만 한편 매우 심란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