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0일 오늘의 나
번복하다
"오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지 말아야지."
출근길,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
나는 원래 차가운 음료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몸이 차가운 편이라 에어컨 바람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한 여름에도 찬 음료는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올여름의 습하고 뜨거운 공기는 저절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게 했다.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카페에 가면 자연스럽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한여름에도 "쪄죽따"였는데... 체질도 변하나 싶을 정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중독되어 버렸다.
출근길에 고이 모셔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무실 텀블러에 옮겨 담고 흔들면 텀블러 벽을 두드리는 얼음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딸그닥딸그닥. 그리곤 하루 종일 조금씩 조금씩 차갑고 씁쓸한 갈색 액체를 홀짝거린다. 일하는 시간 동안 잠시나마의 쉼과 청량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요즘 날씨도 사뭇 달라지고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며 지낸 지 두어 달이 되어가니 점점 차가운 음료를 멀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밤이 되면 목이 조금 칼칼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매번 아침 출근길 따가운 햇살을 받을 때면 그 무서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회귀본능에 참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은 굳은 결심으로 출근길 카페를 늠름하게 지나쳤다. 이렇게 여유 있게 회사에 도착했는데, 책상 위에 라지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떡하니 놓여있었다.
"누가 사주신 건가요?"
"아~ 새로 오신 분이 한잔씩 돌리시더라고요."
월요일부터 새로 출근한 아르바이트생이 출근 기념으로 팀원들에게 커피를 선사한 것이다.
아침부터 이런 소중한 마음을 마주하다니!
"제가 오면서 커피 마시고 싶어서 사는 김에 같이 드시라고 사 왔어요."
거참... 넉살 좋은 청년일세~
이렇게 나는 넉살 좋은 청년이 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에 굳은 계획과 결심을 번복했다. 아니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바쁜 출근길에 무거운 커피를 바리바리 들고 왔을 그 수고와 사회초년생의 상큼함과 기분 좋은 뻔뻔함이 녹아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계획은 어기라고 세우는 것이라는 명언을 다시 되새기며 오늘 하루도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홀짝인다.
내일은 꼭 따뜻한 음료 마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