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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Aug 09. 2020

밤이 무서워

[이모 말고 고모]

밤이 무서워     


9살이 된 봄, 승현이는 아직도 혼자 못 잔다. 그 덕분에 새언니는 9년째 승현이와 동침하며, 자면서도 직장에서 퇴근하지 못하는 계속된 오버타임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선별해서 취할 수 있는 출중한 재주를 가진 승현이는 밤에도 그 재주를 쉬지 않고 가동해 엄마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승현이가 밤에 듣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은 엄마이다. 엄마의 숨소리, 엄마의 냄새, 엄마의 온기만을 선별한다. 밤에는 엄마의 소리와 움직임만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고 그것만을 엄중하게 고른다. 엄마가 뒤척이면 같이 뒤척이고 엄마가 침대 한쪽 끝으로 가면 반대편에서 자다가도 데굴데굴 굴러와 엄마에게 붙는다. 그것도 무서워서 끌어안고 자는 3개의 인형을 모두 데리고 엄마에게로 굴러간다. 인공지능이 붙어있는 자석 같은 느낌이다. 오죽하면 우리 집에서는 ‘승현이가 자다가 깨는 타임’이 있다. 9시 30분경 잠자리에 드는 승현이는 밤 11시 30분~ 12시 30분 사이가 되면 어김없이 엄마를 찾아 깬다. 이따금씩 새언니가 승현이를 재워놓고 잠시 거실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낼 때에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엄마~~”하는 소리가 안방에서 새어 나온다. 승현이 타임이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혼자 자면 안 되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면      


“아직은 좀 힘들 것 같아. 왜냐하면 말이야, 내가 밤에는 아직 좀 무섭거든."


무섭다는데 어쩌랴. 혼자 자고 싶어도 무섭다는데.... 무서워도 혼자 자라고 내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승현이는 혼자 잔다는 사실보다 어두움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에도 어두운 곳을 무서워해서 영화를 보러 가거나 유치원에서 뮤지컬 같은 공연을 보러 갈 때도 무섭다고 울음을 터트린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니 온통 까만색인 밤이 얼마나 무서울까. 이렇게 무서운데 혼자 자라고?? 승현이에겐 안될 말이다.


잠이 깊이 들기 전에 엄마가 잠시 화장실이라도 가게 되면 어김없이 내방으로 달려온다.      

“고모~~ 무서워~ 엄마가 잠깐 화장실 갔거든. 그때까지만 고모 방에 있을게. 고모, 나 무서운데 조금만 안아주면 안 돼?”     


너덜너덜해진 애착 인형을 껴안고 쪼르르 내 방으로 달려와 쫑알쫑알 자기변명을 해댄다. 사실 승현이가 이런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동안 새언니는 이미 볼 일을 마치고 내 방문 앞에서 승현이를 기다리고 있다. 정말 한순간인데도 그 짧은 어둠도 견딜 수가 없나 보다. 그런데 이런 승현이의 심정이 100% 이해가 된다. 어둠에 대한 그 심경이 고스란히 기억난다.     




난 부모님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방을 중학생 즈음이 되어서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었던 나도 그렇게 원했던 내방이었지만, 지금의 승현이처럼 밤에 혼자 자는 것은 무서웠다. 그렇지만 무섭다고 내방을 포기하거나 엄마랑 같이 자면 안 되냐고 말하기에는 너무 커버렸기에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얻은 내 방인데, 혼자 조용히 자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누우면 내 주위를 휘감고 있는 까만색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불 밖으로 발을 내놓고 자면 귀신이 발바닥을 간지럽히면서 깨운다는 무서운 말을 들은 후로 한 여름에도 목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꽁꽁 덮고 잤다. 방문을 굳게 닫고도, 혹시나 방문으로 누가 들어올까 싶어 문을 등지고 벽을 보고 눈을 감았다. 이런 버릇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불을 목까지 덮고 벽을 보고 새우처럼 웅크려야 포근하게 잠이 잘 온다. 그야말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의 표본이다.      


그 어둠이 익숙해지기까지는 공포의 밤이었다. 졸린데 너무 무서웠다. 잠들기까지 그 짧은 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골목 끝에서 괴물이 다가온다고 상상해. 근데 그 괴물을 네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해치워버리는 거야. 너 혼자 안되면 오빠도 있다고 생각해봐. 아무것도 아냐. 막 때려버려~ 그럼 하나도 안 무서울 거야. 그러다가 잠들 거야.. 한번 해봐~”     


내가 밤에 혼자 자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자, 나보다 4년이나 먼저 세상을 살아왔던 오빠는 다 큰 동생에게 밤에 무섭지 않게 자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그 이후로 마법처럼 혼자 잘 수 있게 되었다면 전설로 남을 비법이 되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오빠의 말을 듣고 상상을 하면 할수록 더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면서 상상 속의 내가 나를 잠 못 들게 깨우고 있었다. 이렇게 졸린데 무서운 날들이 지속되다가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샌가 나는 혼자 잘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너무 혼자 잘 잔다. 혼자 자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자면 그것에 더 불편한 지금은 그 어둠이 무섭다기보다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외로움이 두렵다. 처음 혼자 자는 것에 적응할 때도 ‘어둠’보다는 ‘혼자’ 자는 것에  대한 외로움이 무의식에 세계에 존재했던 것 같다. 무의식 속의 외로움이 어둠에 대한 두려움으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는 알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둠보다는 그 속에 숨어있는 외로움이 더 무서운 존재였다.   


어둠의 무서움 저편에서 숨죽여 때를 기다리고 있던 외로움은 내가 혼자 자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혼자 자는 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지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밤의 어둠에 대한 무서움보다 보다 밤이 되면 더욱 절절해지는 삶의 외로움을 알아버린 것이다.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바쁘게 지낸 날도, 친구들과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치열하게 다음날 수업시간의 발표 준비를 하면서도 찰나의 순간마다 밀려오는 공허함과 그것을 정확하게 공유할 수 없음에 대한 외로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밤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면 그 외로움은 더 기세가 등등해져서 내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혼자 마주하는 밤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그것은 더 위력적이 되어서 어떤 날은 감당하기 어려워 나도 모르게 훌쩍이는 날도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선 ‘나이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라며 어르신들이 들으시면 혀를 끌끌 차며 비웃으실 그런 말을 나지막하게 내뱉곤 했다.      


승현이는 밤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3개나 되는 인형을 끌어안고 잔다. 신기하게도 몸을 움직여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 인형들을 모두 끌어안고 간다. 인형의 크기도 제각각인데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데리고 간다. 그러는데도 깊이 자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각기 이름도 붙여준 그 인형들은 승현이가 어둠을 이기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지금껏 그 노력을 지속하고 있지만 ‘밤에 혼자 자기’는 안타깝게도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골목 끝의 괴물과 계속해서 싸웠던 것처럼 승현이도 계속 혼자만의 노력을 하고 있다.


몇 해 전 해외여행을 갔을 때 호텔에서 수줍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승현이 뒤에 애착 인형이 보인다.


아직도 엄마 없이는 못 자는 승현이도 어느 순간 어둠의 무서움보다 더 무서운 삶의 외로움을 마주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 밤을 외롭지 않게 보내는 지혜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외로움을 즐기거나 그것을 새로운 결과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인가 자신만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많은 밤의 어두움 속에 도사리고 있던 외로움을 나는 외면하거나 혹은 너무 정면으로 맞닥뜨리거나 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해 왔다. 그렇기에 승현이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외로움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시간을 살아나갈 수 있는 비법을 간직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기꺼이 손을 잡아줄 것이다.     


지금도 이렇듯 외로움을 타고 날씨 변화에도 민감한 것을 보면 나이가 들어도 단단해지지 않는 마음의 부위가 있나 보다.      

누구나 다 외로운 존재라는 명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밤이다.  

나도 사람이기에, 외롭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출근시간이 어김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무서운 여름밤이다.     

이제는 밤의 어둠을 즐기고 외로움을 잊기 위해 글을 써본다.  

오빠가 알려준 비법을 성공시키지  못해 미안하지만, 지금 이렇게 잘 견디고 있으니 그것으로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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