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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노 Jul 22. 2020

칭찬의 결여로 만들어진 억지 겸손

“선생님 잘생겼어요~”

“오우. 땡큐.

라고 말하는 건 외국인.”

“..?”

“어우, 아니야. 안 잘생겼어~

라고 말하는 건 한국인.”


고등학생 때 교실에서 한 학생이 음악 선생님께 잘생겼다고 하자 선생님이 한 말이었다.

한 학생이 선생님을 보며 잘생겼다고 하자 바로 인정하고 고맙다고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약간의 당혹감이 들었는데

다른 반응을 내보이며 갑작스럽게 한국인과 외국인의 차이라는 말을 하는 선생님을 보니 뭔가 모를 색다름이 느껴졌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그대로를 고맙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약간의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 같은 경우는 누군가 나에게 이쁘다고 했을 때

“그래. 고마워.”라고 바로 의사 표현을 하는 편인데

내 주변의 보통의 사람들을 보면 이쁘다는 말, 멋지다는 말을 들으면 아니라는 둥, 요새 살쪘다는 둥. 말을 돌리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등학생 때 음악 선생님이 했던 장난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의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겸손하지 않은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칭찬을 즐길 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더 자신감 있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겪어왔던 상황들이 이런 ‘불편한 겸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사회. 등수를 1등부터 꼴등까지 공개하던 초등학생 때의 기억.

미술대회에서 특선을 타 오면 그거 아무나 주는 거 아니냐고 들었던 기억.

성적에 있어서 상위 10프로에 드는 것들이 아니면 중위권에 머물렀을 때 칭찬은 전혀 받지 못했으며

칭찬은 그야말로 인색 그 자체였다. 칭찬받기 더럽게 힘들었던 기억들이 모여서 우리를 억지 겸손으로 밀어 넣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에 있어서 칭찬을 받게 되면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분명 이 정도로 칭찬받을 것들이 아닌데 내가 이 칭찬을 받아들여도 되는지 자꾸만 그 칭찬들에 대해 따지고 검토했고 거절했다.


무조건적인 칭찬은 힘을 잃을 수도 있지만 칭찬은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칭찬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되며 겸손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칭찬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보단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당당하고 멋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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