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식구가 다 아프다.
나는 목감기로 쿨럭거리고, 남편은 각막염으로 고생 중이다.
다온까지 열이 내렸다 다시 올랐다를 반복하고 있다.
밤에 열이 38.6도.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또 열이 오른다.
아침에 바로 병원에 가봐야지. 유치원은 못 가겠네.
아침부터 서둘러 병원에 갔다. 열이 난다고 하니 코로나며 독감검사를 한다. 다행히 아니다. 그런데 왜 자꾸 열이 나는 걸까. 요즘 여러 가지 바이러스들이 유행하고 있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열이 나긴 하지만 나머지 증상들은 심한 편이 아니라, 그에 맞게 처방을 해주셨다.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 집으로 왔다. 오늘도 애랑 하루종일 집콕 당첨. 병원에 갔다 집에 오면 뭔가 비장해진다. 점심은 뭐 주지, 저녁은 뭐 하나? 하루종일 뭐 하나? 아픈 건 아픈 거고 답답한 건 답답한 거다.
우선 치킨에 맥주 한 캔을 해야겠다.
나는 생각보다 건강체질이다. 정신과를 제외하고 병원 신세를 진 적이 거의 없다.
정신적으로 나약하니 몸이라도 건강하게 타고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또래 엄마들 보면 여기저기 쑤시고 애 낳고 나서 후유증도 많다던데, 나는 그런 게 거의 없다. 아마 내가 스트레스를 잘 받으니 힘들만한 일들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ADHD 특성상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하니 오히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 게 아닐까? 그러니 피곤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덜 아픈 게 아닐까 하고 헛웃음을 지어본다. 정신이 아파서 몸은 덜 아프다니, 나 다운 결론이다.
맞다. 나는 모순 덩어리다.
예쁜 옷을 좋아하면서 살은 못 뺀다.
온갖 인테리어 소품들로 집을 꾸미고 싶은데 청소는 하기 싫다.
우아한 엄마가 되고 싶으면서 조금만 화가 나면 소리를 빽빽 지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모순 이겠지만, 나는 모순덩어리인 내가 싫고 부끄럽다는 게 문제다.
되고 싶은 나로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까봐 두렵다. 나는 본연의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초등학교 이후로 거의 처음으로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내 방에서 놀다가 친구가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다 우연히 뭔갈 보게 됐는데, 펼쳐져 있는 생리대였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인데 그 순간 친구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나는 늘 그 친구 앞에서 캐릭터를 좋아하고 예쁜 척하는 공주병 환자였는데, 우연한 순간에 민낯을 들키고 만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그때도 조심성이 없었다.
중학교 때까진 그나마 얌전한 편이어서 실수들이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고등학교 가면서부터 스스로 해야 할 것이 늘어가고 책임질 것도 많아졌다. 고등학교 스쿨버스는 늘 놓쳐서 택시를 타고 가기 일쑤였고, 가사시간 저고리 만드는 바느질 실기평가는 힘든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웠다. 수학시간에 모눈표에 함수 그래프를 그리는 일은 고역이었고,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만 가득한 과학시간은 왜 그리 안 지나가는지. 나는 언어-외국어 영역은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도 꽤 잘했다. 내가 4년제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건 수리 탐구 영역과 과학 탐구 영역 때문이었다. 이 두 과목은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던 거 같다. 이렇게 과목별 편중이 심한 것도 ADHD의 한 증상이라고 하는 글을 본 적 있다. 이때부터 알았다면 나는 좀 달랐을까? 나는 왜 수학을 못하지, 바느질 하나 제대로 못하지 하고 자책은 덜 하지 않았을까?
ADHD가 모든 걸 용서하는 만능키는 아니다.
허나 미리 알았다면 나는 부족해, 나는 이상해, 남들 다 잘하는 걸 나는 왜 못해 하는 자책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었을 것 같다.
ADHD인 줄 모르고 나는 나를 탓하며 우울했고, 어느 날은 갑자기 열심이었으며,
뜨겁게 사랑하다 어느 날 갑자기 미워지고 지겨워졌다.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했다. 수학이 그랬고, 바느질이 그랬고, 돈 계산이 그랬고, 직장 생활이 그랬다.
나는 어른이 될 능력치가 부족한 철부지였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나를 구해줄 사람이 운명처럼 찾아왔으며,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남편 앞에서는 감춰야 할 것이 없었다. 이상하게 그랬다. 이전 남자친구들을 만날 때는 10센티 힐을 항상 신었고, 렌즈를 빼고 안경을 끼고 만난 적도 없으며 집 앞에서 만날 때도 꼭 머리를 감고 뭐라도 바르고 나갔다. 그런데 남편과는 처음부터 편했다. 눈이 발개진 걸 보고 렌즈 끼냐고 다음엔 안경 끼고 나오라고 말해주었고, 높은 구두에 발이 아파할 때마다 낮은 플랫을 사주는 남자였다. 나는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는 사랑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 사람 앞에서는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겠구나. 나를 다 이해해 주는구나. 안심이 되었다.
발꿈치를 들지 않아도 되었다.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남편이 나를 편하게 해 줄수록 나는 점점 더 어리광이 늘어났다. 이제껏 받지 못한 사랑을 다 받으려는 듯 마구 보챘다. 남편은 지치지 않고 나를 달랬다.
아이도 안단다. 엄마가 결국은 자기 요구를 들어줄 거라는 걸. 그래서 더 크게 운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도 울고 보채면 결국 그는 해줬다.
남편이 잘해줄수록 나는 본연의 모습이 나왔다. 감춰뒀던 내 모습.
나는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누군가의 슬픔에 눈물이 나지 않아도 우는 척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반갑지 않은 사람을 만나도 크게 웃으며 손잡아 줘야 사랑받는 줄 알고 살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에 맘에 드는 옷이 없어 못 나가겠는데 미안하다는 문자 한 통 보내고는 핸드폰을 꺼버리는 나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누가 돌아가셨어하고 우는 연기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면을 쓰고 화장을 하고 나의 모순을 감추었다.
감추면 감출수록 모순 덩어리는 점점 더 불어갔다.
이제는 내가 굴리지 않아도, 속이지 않아도 저절로 불어나 걷잡을 수 없이 큰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모순에는 욕망이 숨어있다.
진짜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그걸 감추려 그럴듯한 포장을 하는 것이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것.
보여주고 싶은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욕망이 다른 것이다.
모순은 나를 설명하기에 아주 적합한 단어인 것 같다.
모순덩어리였던 내가, 그게 부끄러웠던 내가,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집이 깨끗했으면 좋겠는데, 청소는 하기 싫어.
책을 읽고 싶은데 책 읽고 있으면 지루해.
아이가 아프면 걱정은 되는데 치킨이 먹고 싶어.
그날도 치킨은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매콤한 숯불양념치킨. 맥주도 한잔 했다.
아이는 열은 나지만 잘 놀았고, 같이 식탁에 앉아 나는 치킨을 먹고 아이는 과자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열은 떨어졌고, 그날 밤 아이도 나도 잘 잤다.
이렇게 모순된 일상이 흘러간다.
그래도 꽤 즐겁고 반듯한 삶이다.
자동차 바퀴에 틈이 있어야 미끄러지지 않고 굴러가듯 조금은 이상하고 삐뚤어진 데가 있어야 삶이 진짜 삶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짜인 각본이고 연극이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다.
나는 이제 나의 모순을 인정한다.
ADHD이고 조울증인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는 것도 모순이라면 모순 일 것이다.
좀 그러면 어때.
나는 그래도 글 쓰는 게 좋고 재밌다.
좀 모나고 삐딱해도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이다.
그런데 쓰다 보니 갑자기 치킨에 맥주가 먹고 싶다. (다이어트 중입니다만)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모두가 정답처럼 흘러갔나요?
저는 아이 보고 지각하겠다고 재촉하면서 눈썹을 그리고 앞머리에 롤을 말았어요.
도서관에서 글을 쓰며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을 보며 나가서 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모두는 모순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괜찮아요. 우리 모순을 사랑하기로 해요.
모순덩어리인 우리는 그래서 사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