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어보니 커피 머신이다.
남편이 괜찮은 가격에 좋은 제품이 있길래 샀다고 한다.
사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핸드폰으로 무엇이든 잘 구입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물건 하나 사면서도 어디에서는 뭐가 저렴하고, 언제 할인하고, 그램 당 얼마 차이가 나고, 꼼꼼하게 잘 비교해 보고 사던데, 나는 그러지를 못 한다.
물건 하나 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냥 딱 하나 살려고 할 뿐인데, 핸드폰을 열면 비교해야 할 거리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여기 들어갔다 또 다른 물건이 눈에 띄고, 들어가 보니 연예 뉴스에 눈길이 가고. 여기저기 헤매다 보면 내가 뭘 살려고 들어왔지? 다시 정신을 치리고 알아볼라 치면 디자인, 가격, 리뷰... 비교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시장에서 이거 하나 주세요. 요즘 뭐가 잘 나가요? 하고 무엇이든 쉽게 살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나는 이런 것들이 힘들고 불편하다.
무엇 하나 사기 위해 오랜 시간 검색하고 비교하고 알아보는 시간들이 아깝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클릭 몇 번 해보고 이거면 되겠다 싶으면 구입하거나,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제품들은 남편이 검색해 보고 최저가로 구입을 한다. 내가 덜렁거려 물건을 비싸게 사도, 남편이 최저가로 구입을 잘하니 중간은 가겠다 싶어 안심이 된다.
그날은 나도 좀 꼼꼼한 주부가 되고 싶어서 핸드폰을 한참 들여다봤다. 여름이라 더워서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페트병으로 된 아메리카노를 살지, 더치커피를 살지, 스틱형으로 된 걸 살지... 결정해야 할 게 너무나 많았다. 그러다 스타벅스가 눈에 띄었다. 집에서 마시는 스타벅스, 할인 26%, 리뷰 2342개...
내 눈엔 그것만 보였다. 이거 사면 나도 알뜰하고 센스 있는 주부 될 수 있겠지? 리뷰를 꼼꼼히 읽어 보고 다른 제품도 좀 더 비교해 보고 구매하기를 눌렀다. 아! 잘 샀다.
그리고 다음 날 로켓처럼 택배가 왔다. 룰루 랄라, 시원한 아메리카노 마셔야지. 포장 박스에도 스타벅스 고유의 로고와 이미지가 어울리게 디자인되어 있다. 두둑두둑 뜯어보니...
"어? 이게 뭐야? 캡.... 슐??? 캡슐? 내가 캡슐을 샀다고? 우리 집엔 커피머신이 없는데?"
두둥, 나 또 이런 어이없는 사고를 쳤다. 사고라기엔 좀 귀여운 정도 인가? 그래도 이건 좀 창피하다.
박스를 뜯었으니 반품도 안된다. 아까 박스를 보며 경쾌하게 두둑두둑 뜯은 나 자신이 한심하다. 보면 모르냐. 이를 어쩐다. 동네 동생들에게 부끄럽지만 이 사실을 알리고 내 실수의 전리품을 양도받을 사람을 찾아본다. 동생들도 커피 머신이 없거나 맞는 제품이 아니란다. 어려운 커피머신의 세계란. 그렇다고 이걸 버릴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다. 일단 우리 집의 많은 물건들이 그렇듯. 어딘가 비집고 넣어 본다.
거기가 네 자리야. 잊어버리지 마. 내가 잊어버려도 너는 나 여기 있어요 말해줘야 해. 알았지?
이렇게 물건들이 말을 좀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스타벅스 캡슐커피는 어딘가로 들어갔다. 휴.
남편이 퇴근해 들어와 물었다.
"커피는 샀어?"
"어... 응... 그런데..."
종알 종알, 주절 주절.
늘 그렇듯 또 오늘의 실수와 에피소드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러면 남편이 한참을 듣다가 그런다.
그럴 수도 있지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럴 수도 있지. 이 한 마디가 그나마 내가 이만큼 버티고 살아가는 힘이 아닌가 싶다.
그럴 수도 있지.
오늘은 한 마디를 더 보탠다.
"그럼 이참에 커피머신을 하나 사자. 있었으면 했잖아."
참 고맙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이 검색하고 알아본 끝에 이 귀여운 커피 머신이 우리 집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