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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ADHD Sep 03. 2023

나의 하루+남편의 하루

오늘은 수강 중이던 나만의 책 만들기 종강 파티 겸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기념일, 생일, 파티파티, 노는 거 제일 좋아하는 나에게 너무 기대되는 날이었다.

강의 시작하는 날부터 일정을 보고 와, 출판 기념회도 있네! 너무 재밌겠다! 하고 설레하던 나였다.

5월부터 8월 말까지 강의 일정이 모두 마치고 각자 자신이 만든 POD책을 가지고 와 서로 나누기도 하고 자신의 책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소감까지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차례가 되어 발표를 하는데 이게 뭐라고 왜 이리 떨리는지.

나는 말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욕심이 있으니 더 떨리고 쉽지 않은 거겠지. 앞으로 강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하는 일이 많을 텐데, 욕심만큼 말하는 실력이 따라가지 못해 아쉽다.

발표 순서가 되면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정해 놓긴 했는데, 덜컥 내 차례가 되니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다.

"아, 저는... "

무슨 말로 시작했더라.


'저는 처음 강의 안내를 보고 무조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써놓은 일기가 있고,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거든요. 어쩌면 저에게 운명 같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저는 진짜 책을 만들고 작가가 되고 싶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최종목표는 정식 출판을 해서 진짜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수업이 그 시작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저의 꿈은 크고 높은 곳에 있습니다. 혹시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아시나요? 저는 그곳에서도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모전이 열렸는데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출판사에 투고 해 볼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힘들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그동안 책을 만드느라 애쓴 모든 작가분들 수고하셨고, 너무 멋지십니다!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 했나 모르겠다. 한 70%는 말한 거 같다. 이만하면 성공이라 치자.

그렇게 모든 분들의 발표를 마치고 함께 준비한 다과를 먹으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풍성하고 즐거운 파티였다.

나는 이런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잔뜩 들뜬 기분이 되어 방방 날아다닌다. 누구라도 붙잡고 내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지 않다.

행사를 마치고 서율 엄마와 같이 우리 집에 가서 수다를 떨고, 점심을 먹고,  아이들 하원시간이 되어 함께 데리러 갔다. 오늘은 학원에 가는 날이라 학원으로 향했다. 마침 서율이랑 다온이가 같이 학원에 가는 첫날. 이런 작지만 소소한 변화들이 나를 들뜨게 한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이렇게 마음이 널을 뛰고 마는 거다. 매일이 오늘 같으면 좋겠다. 너무너무 즐겁다. 아마 내가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이라 이런 건가, 하고 또 잠시 들뜬 기분을 멈춰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즐겁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니 5시가 넘었다. 남편한테 내가 오늘 출판 기념회도 하고 기분이 너무 좋으니 외식을 하자고 꼬드겼다. 남편은 틀림없이 그러자고 하겠지? 야호! 신난다. 그렇게 퇴근한 남편과 만났다.


 "여보. 그런데, 나 아픈 건 알아?"

두둥, 이건 또 무슨 말? 다 나은지 알았는데...

"다 낫지 않았어?"

"그래도 아직 좀 안 좋지. 약 먹고 있잖아."

"그럼 미리 얘기를 하지. 이제 와서 그럼 어떡해?"

사람 많은 역 앞에서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남편은 계속 답답한 얼굴로 나를 본다. 화가 났을 때 그가 늘 그렇듯 눈에 힘이 들어간다.

"여보는 나를 왜 이렇게 미안하게 만들어? 나는 다 나은 지 알았지, 까먹었어. 완전히."

남편은 굳게 입을 닫고 나를 빤히 본다.

"내가 몰랐잖아. 그럼 어떡하라고. 집으로 가. 그냥."

뾰로통 해진 나는 그럼 가지 마 가지 마, 됐어 됐어하고 만다. 잔뜩 부풀었던 내 기분은 바람 꺼진 풍선처럼 푸쉭 꺼진다. 지금  남편이 아프건 말건 그건 내 안중에 없다.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다. 나밖에 모른다.


그러다 아, 이러면 안 되는 거지 하고 정신을 차린다. 나는 성숙한 어른이지, 이렇게 나밖에 모르는 건 잘못된 거지 하고 다행히 정신을 차린다.

"여보, 내가 미안해. 오늘 정신없고, 좀 들떠 있었어. 이제 괜찮은 거야? 미안해."

"그래그래. 가자 가자."

"알았어. 기분 풀고 가자.'


번화가로 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밤의 공기인지. 북적북적 나처럼 들뜬 사람들의 무리가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도처럼 일렁였다. 어디 가지?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번쩍번쩍한 간판들을 올려다본다. 어디든 좋을 거 같다. 공깃밥만 먹어도 신날 거 같다.

 

"너무 힘들어. 집에 갈 때 어떡해?"

"눕고 싶어. 힘들어."

이제는 다온이다. 여기까지 15분 정도 걸어왔는데 그게 힘들었나 보다. 내가 기분에 취해 우리 애 체력을 잊고 있었다. 이제 좀 커서 괜찮을 줄 알았지. 언제까지 애기처럼 그럴래? 제발 좀.

"갈래. 갈래. 가까운 동네 갈래."

시끄럽고 사람 많은 거 싫어하는 우리 딸.

데리고 나올 때마다 이러는데, 나는 그래도 계속 시도하고 계속 실패한다. 하. 오늘도.

나는 또 표정관리가 안된다. 입꼬리가 턱 밑으로 처진다. 하늘까지 솟아 있던 기분이 땅 밑으로 꺼진다.

남편이 나를 본다. 휴. 또 시작이구나. 

남편은 눈빛을 달리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내가 가정의 행복을 지켜내리라.

"다온아, 우리 편의점에서 맛있는 음료수 하나 사 먹을까? 아빠 안고 갈까?"

"음료수 사 갖고 다온이 가고 싶은 식당에 갈까?"

다온 달래기 작전이다. 나는 그냥 싸하게 지켜본다. 답답하다.

들떴던 나의 기분이 내려앉는 것이 마냥 속상하다. 내 머릿속엔 그 생각뿐이다. 내 생각뿐이다.

오늘 줄곧 좋았는데... 완벽한 하루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기심이 올라온다. 이기적인 눈을 치켜뜨고 딸을 보니 짜증이 밀려온다. 엄마 좀 놀고 싶은데 도와주면 안 되니? 엄마가 뭐 많은 걸 바라니? 외식 한번 하자는데...

남편이 나와 딸을 어르고 달래 양꼬치 집으로 들어간다. 극한 직업이다. 정말.


어찌 됐든 목적을 이루었으니 입꼬리를 다시 올려 보자.

소주와 맥주를 시켜 소맥을 만든다. 캬. 그래 이거지. 이거 한잔 먹고 싶었던 건데.

양꼬치가 꼬릿꼬릿 익어간다. 맛있겠다. 입에 뭐가 들어가니 다행히 기분이 풀어진다.

딸은 옆에서 여전히 피곤한 듯, 앉아 있는지 누워있는지 모를 만큼 흘러내린다. 그래. 너는 그래라. 나는 마실테니.

한잔 두 잔 목을 축이고, 마음도 축이고 남편도 나도 날카로웠던 긴장을 조금 내려놓는다. 술은 이래서 좋다.

술을 마시면 긴장했던 마음도 녹아들고, 식어버린 삼겹살처럼 딱딱했던 분위기도 부드럽게 풀어진다. 양고기는 쫄깃쫄깃 맛있었다

술을 한잔하고 남편이 나를 보고 입꼬리를 올린다.


남편은 퇴근해서도 일을 한다. 내 기분을 맞추고, 보채는 딸을 달래고.

출퇴근길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지쳤을 텐데, 회사에서는 온갖 사람들 마주하며 억지웃음을 짓고, 애쓰며 하루하루를 보낼 텐데. 집에 와서도 그 업무는 끝나지 않는다.

남편의 인생은 이제껏 그래 왔을 텐데. 장남으로서 무게로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못하고, 가족 모두가 본인에게 기대하고 기대고. 정작 자기 힘든 건 어디다 풀 데가 없었을 텐데.

나는 남편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푹 꺼진 어깨 위에 무게를 더해 나를 얹고 있다. 지치기도 할 텐데. 버겁기도 할 텐데...  


남편은 또 입꼬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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