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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의나비 Oct 08. 2024

4. 천재작가로 레벨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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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문이 열렸다. 손님인 줄 알았는데 그였다.

"아, 왔어? 이제 돌아온 거야?"
 "같이 저녁 먹자고."

그러고 보니 벌써 6시.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었다. 나는 앞치마를 벗고 그를 맞이한다.

베이지색 맨투맨 티셔츠에 검은 머플러, 청바지 차림. 그가 다가오는 걸 보니 참 오랜만이었다. 벌써 3개월? 마지막으로 본 게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바람이 쌀쌀해진 만큼 그와 나 사이도 시려졌다. 그는 지난여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했었다. 취업 전에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것도 어쩐지 그의 스타일답다.

그는 늘 이렇게 갑작스럽게 와서 갑작스럽게 떠난다. 요즘 해가 정말 빨리 진다. 벌써 밖이 어둑어둑하다. 그와 안 지 7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그를 보면 눈이 부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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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다 쓰고 나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바라봤다.
 메모장 앱 속에 쓰여 있는 내 첫 웹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눈앞에서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반해 있다.”


으아아아. 이 문장 너무 좋아! 그를 보면 눈이 부신 것 같고, 나는 여전히 그에게 반해 있다. 잘 썼다, 나!

처음엔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얘졌었는데, 그때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써봐, 뭐 어때.


 그 말에 용기를 내 한 줄 한 줄 쓰기 시작했고, 어느덧 이렇게 완성된 이야기가 내 손안에 있다니!

솔직히 내 경험이 반쯤 들어간 이야기라 상상과 현실이 섞여 있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 실감이 난다. 그때 느꼈던 설렘과 아쉬움,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이 내 글 속에 스며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다시 한 번 글을 읽어보니, 그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그저 상상만은 아니었다. 내 안에 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 정리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며 혼자 피식 웃었다.
 조금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뿌듯함이 훨씬 컸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도 난 해냈어. 이제 다음 이야기를 써보자."
 혼잣말하며 다시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어차피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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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많아? 오우, 사장님인 거 실감 나는데."
 "에이, 뭐~ 오늘은 손님도 없었어. 나갈까? 한잔해야지?"

어색함에 더 밝은 목소리로 말해 본다.
 "처음 오는데 가게 구경 안 시켜줘? 저긴 뭐야? 스태프 온리?"
 "창고야."
 "차라도 한잔 주라. 처음 가게 온 손님한테 이러기야?"

그가 너스레를 떤다. 맞아, 이런 남자였지. 이래서 내가 좋아했지.
 "알았어, 알았어. 기다려봐."

커피머신에 물을 받고 캡슐을 끼운다. 드르르릉. 머신 소리가 어색한 공기를 채운다.
 그가 다가온다.
 "진짜, 나 차만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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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19금도 잘 써야 된다던데… 조금 그런 느낌을 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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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열아홉. 그에게 나를 처음 허락한 날처럼 나는 또 떨리고 만다. 그가 나를 가지려고 다가오는 반쯤 감긴 눈빛만 봐도 나는 눈빛이 떨리며 입술이 열리고 만다. 항상 먼저 여는 건 나였다. 그를 처음 유혹한 것도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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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다 쓰고 저장 버튼을 누르자마자 손에서 힘이 빠졌다.
 ‘아, 뭐야… 너무 오글거리나?’

그래도 이렇게 처음으로 뭔가를 써낸 나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한참을 멍하니 메모장 앱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글을 복사해 동생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이 동생은 사실 친동생은 아니고 나에게 글을 계속 쓰라고 응원해주는 그런 친구다.


[와, 언니 진짜 대박! 이거 언니가 쓴 거야? 진짜 실화야?]


그녀의 답장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실화라고 하기엔 상상이 많이 섞였지만, 그 감정들만큼은 솔직했으니까.


[너무 재밌어! 다음 내용 빨리 써줘, 나 진짜 궁금해 죽겠어!]


동생의 열정 넘치는 반응에 나도 괜히 으쓱해졌다.
뭔가 대작을 쓴 사람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불안함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이게 정말 괜찮을까? 독자들은 좋아할까?


[정말 괜찮아?]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차 물어봤다. 내 불안감을 알아차렸는지 그녀는 바로 답장이 왔다.


[언니, 진짜! 무조건 돼.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그녀의 확신 어린 메시지에 마음 한켠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차피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는 거지. 이왕 하는 거 나도 즐겨보자.


  이제 다음 이야기를 써보자! 고고!


 혼잣말을 하며 다시 메모장 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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