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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Feb 23. 2024

겨털을 정리하다가도 또 문득,

나이듦의 순간들

오랜만에 긴 샤워.

보통 샤워는 외출을 앞두거나 남편이 퇴근에 오기 전 후다닥 하는 편인데, 오늘은 안 하던 운동도 한 김에 홀로 세월아 네월아 샤워를 했다.

샤워 후엔 2년 째 바르고 또 발라도 (사실은 자주 안 바른다) 안 없어지는 바디 로션도 넉넉하게 전신에 발라주고, 그러다 또 생각난 김에 겨털 정리까지.

준비물은 소독한 쪽집게와 뽑은 털을 한 데 모을 티슈 한 장이면 끝이다. 아 참, 면밀히 들여다봐야 하니 내 경우엔 안경도 필수. 간단하지만 뭔가 시술을 하는 집도의의 느낌이 물씬 난다.   


어려선 밀어도 보고 발라도 봤지만, 내 기준 역시 제일 간단하고 속시원 한 건 뽑는 거다.

굵고 검은 털일수록 보기는 망측해도, 뽑는 맛은 그만이다.  

그런데 요즘은 갈수록 그 맛이 예전만 못하다.

원래 소매 없는 옷 같은 건 입지 않으니 남에게 내 겨드랑를 보일 일 같은 건 잘 없지만, 나는 한 번씩 내 손에 만져지는 털도 싫어서 틈날 때마다 정리를 하는 사람.

그런데 지난 연말부터 줄곧 잊고 지냈는데도, 별 게 없다.   

그 말은 곧 나이가 드니 이제 겨털도 예전같지 않다?

맞다. 가늘고 힘 없는, 존재감 없는 애들만 간간이 눈에 띈다.

그러니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도 별반 손에 만져지는 게 없었던 거고, 별반 손에 만져지는 게 없으니 한동안 잊고 지내다 오늘에서야 겨털 정리를 한 셈인데...


에라 모르겠다. 관두자.

솜털 같은 애들은 뽑아도 맛도 안나고, 뽑으나 안 뽑으나 티도 안나니 이내 하다가 관둬버리는 나.

그러고 생각해보면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전보다 눈에 띄게 가늘지고 잘 끊기고 잘 빠진다.

어디 그 뿐이랴. 어려선 하루만 머리를 안 감아도 개기름이 줄줄. 극기훈련이고 MT고 샤워를 할 수 없는 환경이면 늘 곤란했던 내가 요즘은 며칠을 안 감아도 당당하게(?) 외출을 한다.

어려선 머리 개기름이 그렇게 골치더니... 쳇


그 대신 요즘은 턱 밑 돼지털이 골치다.

한 번씩 턱 밑 솜털 사이 굵고 진한 털 하나가 삐죽 올라온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건 밝은 대낮 함께 외출을 한 남편 눈에 더 잘 띈다.

햇살이 좋아 얼굴을 다 드러내놓고 활짝 웃고 있으면, 이내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남편.

그러다 지그시가 집요하게로 느껴져 물어보면,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뭐 났어. 돼지털인가. 내가 뽑아줄까?"


그런데 이거 정말 나만 이런 거야??

그 전처럼 발에 땀이 안 나 양말이 돌아가고, 발목에 난 양말 자국이고 허리에 난 팬티 줄이고 자고 일어나도 안 없어지고, 이거 정말 나만 이런 거야???



(주의사항)

고개를 한 쪽으로 꺾어 겨드랑이 쪽을 내려다보고, 한 손으론 팔뚝 살을 들어올려 받친 채, 다른 한 손으로 겨털을 뽑는 행위는 피부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승모근에 담이 올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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