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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s Dec 21. 2020

눈사람

누군가를 닮는다는 것

저번 주말에는 눈이 참 많이 왔다. 올해의 첫눈은 오다가 길이라도 잃었는지,  참 늦게도 찾아왔다. 그래도 첫 손님은 반갑기 마련이다.


비와는 다르게 따뜻한 눈의 냄새를 맡으며 문 밖을 나설 수 있으니 참 뽀드득한 날이다. 눈은 비와 다르게 지나간 사람을 기억해준다. 순백의 카펫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일은 그 길의 첫 손님이 되는 일이니 그것만으로도 설렌다. 그러니 일부러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 나만의 흔적을 슬쩍 남겨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눈이 오면 항상 새 친구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 친구는 어쩜 그리 얼굴도 동그랗고 예쁘게 웃고 있는지. 당근처럼 빨간 코를 갖기로 한 것은 참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눈사람은 아이들의 정성 덕분에 점점 더 예뻐질 수 있다. 어쩌면 그 빨간 당근은 눈사람을 만들던 아이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웃고 있어 참 보기 좋은 눈사람.


눈사람은 아이를 닮았다.


어릴 적의 나도 눈사람을 참 좋아했다. 눈사람이 너무 좋은 나머지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어서 어느 날은 정말로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손에 올려도 될 만큼 작은 그 친구에게 우리 집 냉장고의 방 한 구석을 내주기 위해서였다.


3일 정도가 지났을까, 냉동실을 열었을 때 눈사람은 키가 많이 작아져 있었다. 웃고 있던 그 밝은 얼굴도 사라졌다. 차갑게 매끄러운, 그저 얼음덩어리.


이제는 내가 눈사람을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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