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탄다'는 말을 매일 실감해 보는 아침입니다. 좀더 나이를 덜 먹었을 땐 '탄다'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관용적 표현으로 계절이 바뀌는 이 시기에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가을 타냐'고 묻고 답해왔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오늘 출근하면서 학교 교문 앞 벚꽃나무가 가득한 길을 지나다 보니 구르는 낙엽과 초록에서 금빛으로 그라디에이션 중인 논벼들을 보고 서글퍼지는 감정을 느끼면서 스스로 '가을을 탄다'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오늘부터 제 사전에서 '가을 탄다'라는 말 속 '탄다'는 '감정이입'내지는 '동병상련'의 의미로 재정의하기로 했습니다.
구르는 낙엽과 분명 익어가는 중이지만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가을 풍경 속 말라가는 것들에 유난히 애달픈 감정 이입이 되어 '가을 타는'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진도 강계. 카페 LIVIN
긴 삶을 멀리서 바라보면 아마 나이로도 감정으로도 가을의 시작쯤 어디여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고 있는 듯 합니다. 더 자세히 파고들면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은 표면적인 이유 없이 매일 사는 게 좀 서글픕니다. 불꽃같던 십대 사춘기의 그 어느 순간처럼 격정적이지는 않습니다. 특별하게 미동도 없지만 삶의 뉘앙스가 조금 예전하고 달라진 걸 매 순간 느끼게 됩니다.
글을 쓰면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조금 더 솔직해 질 수 있다는 핑계로 조금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을이 오기전부터 그 훨씬 이전부터 '가을 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라서 적을 내용이 없다던 아이들에게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 것이고 소중한 것인지 진심으로 이야기하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는데 마치 일기 글감이 없다고 투정부리던 아이들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누구보다 삶에 긍정적인 그런 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껏 스스로 가졌던 긍정과 인내, 너그러움, 배려 같은 게 예전엔 바다처럼 출렁였다면 지금은 그런 것들이 증발해버린 느낌입니다. 서서히 증발하고 있었을 텐데 한없을 줄 알고 너무 퍼내 써버리기까지 해서 지금은 바닥이 드러나 있나 봅니다.
무안 '백련지'. 바람도 햇살도 좋던 날.
마음이 목석 같아서 비가 와도 바람 불어도 아무렇지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슬픈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차디 차게 아무렇지 않았으면 더 좋겠습니다. 애초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목석도 비 바람에 닳고 닳아 작아지고 또 작아질테지요. 사는 일도.
이렇게 되지도 않을 바람을 써가고 있는 가을 타버린 아침 시간들은 또 결국 오늘 하루를 살아낼 에너지가 되어줄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하며 이 가을을 잘 타서 어여쁜 목적지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누구에게도 하기 쉽지 않는 이야기들을 써내는 일은 겨우 책임지고 있는 삶에 대나무숲이 되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