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고전에 취하다

새벽낭독의 책들3-전영애 번역 <파우스트>

by 난다유

서재 책상에 앉아 가만히 책꽂이를 바라본다. 정면으로 보이는 4단짜리 원목 책꽂이에는 새벽낭독에서 진행한 책들이 꽂혀 있다. 세워 놓은 책의 제목이 적혀있는 책등 색깔이 가지각색이다. 그중 한여름 짙은 초록을 품은 듯한 두 권의 두꺼운 책이 눈에 띈다. 괴테의 <파우스트 1, 2권>이다. 우연히 <인생정원>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1만 제곱미터나 되는 뜰과 서원을 가꾸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자그만 키에 듬성듬성 하얀 머리칼이 섞인 짧은 단발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온종일 잡초를 정리하고 꽃을 심고 나무를 키우는 모습에 계속 시선이 머물렀다 그녀가 만들고 있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 호를 따서 지은 '여백서원'이었다. 나중에 서원 안에 자리 잡은 작은 서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괴테 연구가 '전영애 교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괴테사랑은 남다르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독일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괴테 금메달을 받았을 정도다.

그리고 지금은 여백서원 안 곳곳에 괴테의 작품을 감상하고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괴테하우스를 짓고 있다. 학자로서 평생을 괴테 연구에 바쳐 온 그녀의 순수한 학구열에 감동했다. 그래서 그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번역한 <파우스트>를 새벽낭독 여름 고전책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권의 고전을 새벽낭독에서 진행했다. 월든, 데미안, 오만과 편견, 그리고 파우스트를 진행하면서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전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다 보니 당시의 언어 표현, 사회 문화적 배경 등이 지금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번역가는 이러한 간극을 뛰어넘어 원작의 의미와 뉘앙스를 현대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색함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낭독할 때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집에 한 권씩 소장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출판사와 번역가의 작품을 비교하며 서로 조금씩 다르게 전달되는 문장을 낭독하는 재미도 있었다.


전영애 교수님이 번역한 파우스트는 다른 번역서와 조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먼저 책의 왼쪽 면은 독일어 원문을 오른쪽 페이지에는 전영애 교수가 번역한 한국어가 들어간다. 원서와 번역의 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독일어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소장하고 싶은 책이 아닐까 싶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60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으로 총 12,111 행의 정교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적 괴테 연구자이자 시인인 전영애 교수는 우리말로 '시(詩) 답게' 되살려 주었다.

오늘은 파우스트를 시험하고자 주님께 내기를 걸고 있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이야기인데 책 전체를 관통하는 괴테의 철학이 담겨 있다


(주님)

더는 할 말이 없느냐?

늘 불평하러만 오느냐?

네 눈에는 땅 위에 제대로 된 건 영원히 없단 말이냐?


(메피스토펠레스)

그럼요, 주님! 저긴, 늘 그렇듯, 정말이지 고약해요.

비참한 나날을 보내는 인간들이 불쌍하죠,

저조차 그 가엾은 것들 괴롭히고 싶지도 않다니까요.


(주님)

너 파우스트를 아느냐?


(메피스토펠레스)

그 박사요?


(주님)

나의 종이니라!

그가 지금은 혼란스럽게 나를 섬길 뿐이더라도

머지않아 내가 그를 분명함으로 이끌어 가겠노라.

정원사는 아느니라, 어린 나무가 푸르러지면,

그것이 꽃피우고 열매 맺어 장래의 나날을 치장할 것을.


(메피스토펠레스)

내기하실래요? 저 자를 잃으실 텐데요,

허락만 해주셔서 제가

그를 제 길로 살짝 인도하면요!


(주님)

그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

그동안만은 그걸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전영애 옮김, 괴테의 파우스트1 292행~317행 중 일부>-도서출판 길



우리는 뜨거운 여름 두 달을 전영애 교수님의 <파우스트>로 이겨낼 수 있었다. 괴테가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고쳐가며 죽을 때까지 놓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이야기. 괴테의 문학을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독일어 원문 <파우스트>가슴에 품고 책이 닳도록 공부했던 노학자의 결실로 탄생한 <파우스트 1,2>.

우리는 매일 그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새벽의식처럼 낭독으로 채워 나갔다



<몇 달 후, 겨울>

우리는 여주에 위치한 여백서원을 찾아가 전영애 교수심의 괴테 특강을 들었고, 사인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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