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 넘어 풍덩 넘어가보니

새벽낭독의 책들2-김약국의 딸들

by 난다유

2021년 3월 새벽 5시, 온라인에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새벽에 웬 웃음? 바로 시대를 뛰어넘고 세대 간의 간격을 느끼지 못하게 했던 책, 우리를 '여자'라는 공통분모로 똘똘 뭉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책.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이다. 작품 해설 속에는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운명이란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문학평론가)'라고 했듯이 여자에게는 더 가혹했던 시절의 이야기. 사실 <김약국의 딸들>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지릿지릿한 아픔이 곳곳에 새겨져 있어 낭독하기 힘든 책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숨 죽이며 웃음을 참지 못했을까?


<김약국의 딸들>은 첫날부터 우리를 헤매게 만들었다. 통영의 질펀한 사투리를 표현하기가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서울, 경기 권에 살고 있었기에 책 속에 사투리 대사가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았다. 느낌을 표현하려면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해야 하는데 아픔이 절절 나오는 대화체가 키득거리며 개그톤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구원투수처럼 나타나 사투리의 늪에서 허우적 대는 우리를 건져 올려 준 사람이 마드쏭 님이다. 그녀는 통영 출신은 아니지만 같은 권역에 있는 경상도 출신이고 현재 거주를 하고 있기에 우리보다 훨씬 맛깔스럽게 사투리 표현을 해 주었다. 우리는 그녀 덕분에 사투리에서 중요한 억양, 음가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배울 수 있었고 반복적으로 되뇌다 보니 조금씩 어색함이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웃음소리는 긴 침묵과 한숨으로 이어졌다. 소설이 흘러가면서 의식의 흐름도 같이 진행이 되면서 그 안에 담긴 등장인물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이렇게 한 집안을 몰락의 끝까지 몰고 가야만 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끈질긴 생명력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았다.


둘째 딸 용빈은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을 찾아온 강극에게 이렇게 되뇌었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가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에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집안의 비극적 몰락을 지켜보았던 용빈의 독백은 슬프지만 강인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비극으로 끝나버린 <김약국의 딸들>에서 그 비극을 마주 보며 담담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도 생겼기 때문이다. 용빈은 막내동생 용혜와 배를 타고 통영을 떠난다. 멀리 통영 항구가 멀어지면서 '봄이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우리는 마지막 문장을 낭독하며 이대로 이 책을 보낼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새벽낭독, 첫 번째 낭독극 <귀향>이 탄생했다.

<김약국의 딸들>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의견 일치를 본 게 2장 첫 번째 이야기 <귀향>이었다. <귀향>은 둘째 용빈이 서울에서 고향으로 오는 통영 항구에서 시작된다. 아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 가족이 모두 모인 잠시의 아늑함이 좋았던 부분이었다. 용빈은 마중 나온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고향 아니에요? 어머니, 서울에도 부산에도 다 있지만 사람의 얼굴이 다 같지 않고, 또 좋아하는 얼굴이 따로 있는 것처럼, 나는 통영의 가스등이 좋아요"

자신을 마중 나온 엄마 한실댁과 여동생 용옥과 집으로 향해 가면서 용빈은 가스등을 보면서 참 다정스럽고 슬프다고 하면서 좋다고 한다.


<귀향> 부분을 프린트해서 대본을 만들고 내레이션과 등장인물의 배역을 정했다. 사투리가 심한 배역은 마드쏭 님이 하기로 하고 내레이션과 한실댁, 옥화 할매, 용옥 등 등장인물을 차례로 정했다. 소설낭독극은 평소보다 표현이 입체적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새벽이지만 온라인이라는 장점을 무기로 우리는 마음껏 소리를 내지를 수 있었다. 그렇게 작가가 모질게 던져 주었던 희망의 꽃씨를 시대를 뛰어넘어 다섯 명의 여자들이 작가의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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