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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pr 01. 2020

죄송해요. 사실 제가 당신을 떨어트렸어요.

인턴이야기(1)_정규직 전환 탈락 후기

1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습게도 그 시간들이 정규직으로서의 경력이 아니다.

총 3번, 비정규직으로 이곳저곳 회사를 떠돌아다녔다. 


가장 최근 인턴으로 지냈던 회사는 정규직 전환형 인턴이었다. 정규직 전환율 약 50프로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나는 내가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인턴 동기에 비해 주요 프로젝트 참여 비중은 줄고, 잡일 업무가 점점 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런 업무가 하나둘씩 늘 때마다 나 역시 미리 사무실의 짐을 하나둘씩 정리하여 회사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추운 겨울에 의자에 놓았던 방석과 담요를 들고 왔고, 건조한 계절을 이기기 위해 책상 위에 두었던 가습기도 들고 왔다. 서랍 속에 고이 쟁여두던 마스크도 챙겨 왔다.

그래서 정규직 전환 최종 면접의 불합격 연락을 받은 당일에는 꽤나 담담했다. 오히려 합격한 이들을 위로해줬다.

그렇게 시원섭섭한 감정으로 회사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하는데,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잠깐 회사 휴게실에서 이야기하실래요?"


나는 약간 민망하고 겸연쩍은 마음으로 팀장님을 뵈러 갔다. 의례 하는 그간 수고했단 인사말을 건네실 줄 알았고, 나 역시 그간 감사했다는 뻔하지만 진심을 담은 말을 하고자 했다.

근데 상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


"죄송해요. 사실 제가 OO 씨 평가를 안 좋게 드렸어요. 그것 때문에 떨어지셨을 거예요."

".... 네?"


황당한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어안 벙벙한 표정을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목소리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 건지, 팀장님은 계속해서 채용과정에서의 tmi를 잔뜩 말씀해주셨다.


회사에서의 모습이 즐거워 보이지 않으셨어요. 성격이 좀 회사 분위기와 맞지 않는 거 같아요. 속도가 느려서 기다려 줄 수 없었어요. 작업 스타일이 맞지 않았어요. 등등..


전부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요점은 내 전부가 회사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가 나빴다는 것이다. 성격부터 작업 스타일, 업무 속도까지. 그 모든 것이!


불합격 연락을 받은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마음이 팀장님 말에는 꺾일 거 같았다.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비록 최고가 아니었을지라도 최선은 다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매일 야근을 해왔고, 주말에 일을 계속 해왔다. 정시퇴근과 주말 휴식을 즐긴 날들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꺼번에 업무가 몰려와도, 내색하지 않고 다 마감 내에 끝내려고 노력했다.

잠시나마 회사의 소속이었고 이제 곧 나가는 외부인에게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줄은 미처 몰랐다.

이해는 안 되지만 굳이 이해해보자면, 평가를 좋게 안 줘서 나를 떨어트렸다는 팩트를 알려줌으로써 팀장님 본인의 약간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조금 덜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왕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조언도 해줄 겸 그렇게 이야기하신건 아닐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역지사지를 하며 내 입장이 되어본다면 그런 말은 쉬이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노력했고 또 이제 곧 떠나는 한 인턴의 모든 면을 부정하면서까지 굳이 말해야 했던 것이었을까?

이러한 말을 듣고 나서도 그래도 내가 답할 말은 정해졌다.


"네. 저도 그러한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고, 잘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 부분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어떻게든 좋은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말만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비참했다. 지난날, 좀 적당히 일할걸. 이런 후회까지 들었다. 정규직 전환을 바라는 마음도 컸지만, 정말 잘 해내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이 더 컸다고 자부한다. 인턴 중간에 탈락을 직감하면서도 게을러지지 않고 프로젝트 마감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의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노력을 쏟아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저렇게 무례한 이야기를 눈 앞에서 듣게 되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비참한 심정으로 퇴사날을 맞이했다. 원망과 허탈한 감정은 순간이었고, 끝없는 자괴감 밀려 들어다. '내가 그렇게나 못났구나'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퇴사한 다음날 나는 또다시 예상치 못했던 말을 팀장님으로부터 듣게 됐다.


"저희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해보실래요?"


두번째 인턴이야기(2)로 내용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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