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바나나가 있다. 반쯤 잘라낸 붉은 외관과 탄탄해 보이는 속살을 가진 사과도 있다. 냉장고엔
먹기 좋게 작게 조각내어 언제든 "제발 나를 먹어주시오"하는 듯한 수박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몸에서 잘 받아주지도 않는 시커먼 커피에만 자꾸 손이 간다.
나쁘다
좋지 아니하다
옳지 아니하다
몸에 이롭지 아니하다
모두 아니라고만 하는 단어,
그래서 더 그 매력에 끌려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는 단어 나쁘다.
한 때, 나는 나쁜 남자에게 빠진 적이 있다. 본인의 일상을 송두리째 내팽개쳐 버리고, 무책임하고 무지하게 내게 모든 걸 걸었던 한 남자. 결과적으로 그는 나빴다. 그는 나와 만나는 내내 내가 하고픈 대로 모든 것들을 이끌었고, 단 한 번의 싫은 내색 없이 늘 오롯이 내편이 되어 주었다.
그와 만날 당시,
지인들은 모두 내가 나쁘다고 했다.
배려 깊고 자상한 그에 비해 나는 누가 보더라도 그에 대한 배려가, 관심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했으므로.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쁜 건 내가 아니라 그였다.
사실 그는 솔로가 아니었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람이 이미 그의 곁에 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그녀에 대한 미안함에 미처 내치지 못했다' 던 그는 '부모님께 당장 말씀드리고, 그녀를 바로 정리하겠다'며 울면서 내게 사정했었다. 그렇다한들 헤어짐을 앞에 둔 우리의 상황이 달라질 건 없었지만.
"한 번 깨어진 그릇은 그만이오. 아무리 깨어진 조각을 모아서 풀로 붙여 봐도, 이미 깨어진 그릇은 깨어진 것이오."
_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중에서
그가 내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주변의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그리도 이기적이라던 나는 더 이상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면 호의였을 그의 고마웠던 배려와 따뜻함 들은 더 이상 오롯이 좋은 것이 될 수는 없었다.
헤어짐을 선택하고 나서도 나는 쉽게 그를 끊어낼 수가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건 오롯이 내편이 되어주었던 사람. 나의 일상 구석구석 묻어나는 그의 흔적이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처럼 무딘 사람에게는 내편을 만드는 일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거니와, 오롯이 내 편이었던 사람을 나의 의지만으로 강하게 밀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닌 건 아니기에... 결국 힘겹게 그를 내 삶에서 분리해냈다.
뒤늦게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그와 만나는 중에도 몇 번의 시그널은 존재했었다. 조금만 더 세심한 관심을 가졌더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었을 법한 기회가 내게도 있었다. 다만, 그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굳이 제대로 현실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을 뿐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좋고 나쁘고는 아무래도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 중 한쪽의 배려가 지나치게 깊어지면 배려의 추는 점점 무거워져 한쪽으로 기운다. 게다가 무거운 추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하릴없이 멍을 잡고만 있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 한쪽이 너무 좋거나 나빠지면 다른 한쪽은 괜히 덩달아 반대편으로 기울어진다.
과일과 커피를 앞에 두고서 나는 왜 또다시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아마도 카페인을 거부하는 비루한 몸뚱이의 시그널을 무시하고 싶어서는 아닐까.
그도 아니면, 밤낮없이 바쁘게만 흘러가는 나의 부지런한 생체신호에 잠시 잠깐의 휴식, 혹은 교란을 주기 위함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