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으로 배우는 말하기와 글쓰기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어원에서 시작해보자. 레토릭(rethoric)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에이로’(eiro. 나는 말한다)에서 나온 ‘레터’(rhetor. 연설선생)와 기술을 뜻하는 ‘테크네’(techne)를 합친 ‘레토리케’(rhetorike), 즉 ‘레토리케 테크네’의 생략어에서 유래한다. 영어 단어 rethoric은 프랑스어 레토리크(rhetorique)에서 곧바로 넘어온 것으로 ‘연설가의 기술’이 바로 수사학이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활약하면서 유명한 수사학 고전인 ‘변론법 수업’(institutio oratoria)을 쓴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수사학을 ‘말을 잘하는 학문 또는 지식’(bene dicendi scientia)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말을 잘해야 하는가?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아가 말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차차 뒤에서 풀어놓기로 하자. 레토릭이란 ‘연설가의 기술’, ‘말을 잘하는 지식’이라는 정의를 피상적으로 해석하면 레토릭이 그저 말재주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수사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클래식인 ‘수사학’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수사학과 변증학은 짝을 이룬다.
이 둘은 어떤 의미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것을 다루지만
어느 특정한 기술이나 지식 분야에 속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수사학이 어느 특정 학문이 아니라 학제적, 메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2400년이 지난 오늘날 수사학은 철학, 문학, 심리학, 언어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학문과 관계하고 있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지력은 실로 놀랍다. 당시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은 일종의 변증학이고, 성품에 관해 다루는 일종의 윤리학일 뿐 아니라 정치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옳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학문이나 기술과 차별되는 수사학만의 특징을 명징하게 잡아냈다.
다른 기술이나 학문 중에는 서로 정반대되는 결론을 둘 다 증명하는 학문은 없다. 오직 변증학과 수사학만이 서로 반대되는 것을 증명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수사학은 수학이나 자연과학처럼 엄밀한 (과학적) 증명, 즉 확실성을 추구하는 분야가 아니라 개연성의 영역을 다룬다. 다시 말해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에서 필요하고 쓰임새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만사, 세상사 모든 일이 수학이나 과학처럼 확실하고 틀림없이 딱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저마다 의견이 다르고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TV토론을 보면 저마다의 논증으로 자신의 주장을 앞세운다. 그 논증과 레토릭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도 맞는 것 같고 저 사람도 맞는 것 같다. 뉴스 리포트의 클로징 멘트는 대개 ‘이럴 수도 있지만 저럴 수도 있으니 전문가들은 주의하라고 말한다’라는 말로 끝난다.
우리는 왜 수사학을 배우고 왜 레토릭을 쓰는가. 그것은 바로 화자가 청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수사학’ 첫 장에서 이 점을 분명히 밝혀놓았다. 이 기술의 핵심은 설득하는 것이다.
수사학은 결국 설득하는 기술이다. 완력이 아니라 말-레토릭-로 설득하는 기술, 그것도 케케묵거나 설득력 없고 딱딱하고 비논리적인 말이 아니라, 에토스(연설가의 품성이나 윤리에 호소하는 것)와 로고스(논증), 파토스(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를 상황과 청중에게 맞게 적재적소에 활용한 말로 설득하는 기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몸을 써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치욕스럽다고 하면서도 말을 사용해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치욕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했다. 몸을 쓰는 것보다 말을 쓰는 것이 인간의 더 고유한 속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전 수사학의 시대에 공개적인 토론장에서 직접 청중들을 설득하는 데 쓰이던 레토릭은 현대에는 결국 TV나 인터넷, 신문처럼 비대면, 간접대면으로 존재하는 미디어와 언론를 통해 시민대중에게 전달된다. 점잖고 객관적이며 딱딱해 보이기까지 뉴스는 사실상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는 레토릭의 전장(戰場)이다. 그 전장에서 정신을 차리고 객관성으로 위장한 위장막을 걷어내려면 수사학이라는 무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수사학을 다른 수사학을 통해서만 반박할 수 있을 뿐이다.” (*올리비에 르불『수사학』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