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그런데, 왜 고대 그리스에서 수사학이 움트고 발전했을까? 기원전 5세기 무렵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민회가 권력의 중심축을 이루고 민주주의가 시행되면서, 전제정치 시절과 달리 대중연설이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자 정치적, 사법적 설득 수단으로 부상했다. 아테네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출세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펼쳐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레토릭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런 지위를 누렸다.
“2,000년 역사 가운데 상당한 기간 동안 수사학 공부는 교과 과정에서 핵심 과목이었다. 수사학이 최고의 지위를 누린 것은 그런 기간 동안 연설 기술이나 글쓰기 기술이 법정과 포럼과 교회에서 승진을 가능케 하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한 권으로 배우는 수사학』)
고대 그리스는 신문, TV나 라디오 또는 인터넷 같은 미디어가 없어서 공론장이나 재판장에 나와 직접 면대면으로 연설하고 설득하는 시대였다. 그 시대의 개인이 직접 하던 역할을 지금은 미디어가 전문적으로 (중개)하고 있다. 지금도 정치인들이 대중 집회나 유세장에서 청중들을 만나긴 하지만 정치인 유세에 제대로 눈길을 주는 사람도 거의 없고, 대부분은 그런 유세(의 편집된 일부나 풀영상)를 TV나 인터넷을 통해 본다. 절대 다수가 언론, 미디어를 통해서 화자를 만난다. 또한, 화자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그대로 청중에까지 전달되는 경우도 중요한 대통령 담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오늘날의 청중은 그걸 다 들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저널리즘이 나름의 필터로 걸러 내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널리즘이 중요하고, 저널리즘의 레토릭이 중요하다. 게이트키핑 능력이 저널리즘의 핵심 중 하나이고, 저널리즘 콘텐츠는 언어, 즉 레토릭을 통해 전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화자의 그릇된 레토릭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저널리즘의 레토릭에 (팩트가 아니라!) 왜곡이 있다면 이는 곧 진실의 배달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직접 파악할 수 없으므로 항상 미디어의 세계 기술(記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미디어의 레토릭이 문제가 있을 경우 청중들은 사실상 가상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자들은 세계와 사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기술하는 것을 넘어 ‘수사학적으로도’ 정확하게 기술하여야 한다.
다시 수사학의 역사로 돌아와서, 드디어 (아리스토텔)레스형 차례다. 대철학자이자 문학, 논리학, 정치학, 윤리학, 생물학 등 고대의 ‘모든문제연구소장’이었던 그는 수사학의 아버지라 부를만하다. 바흐가 음악을 발명한 건 아니었지만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정치적 연설, 사법적 연설, 과시적 연설의 세 가지 장르로 구분했고, 설득의 요소로서 앞서 언급했던 에토스(화자의 성품과 관련), 파토스(청중의 심리 상태와 관련), 로고스(뭔가를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 자체에 관한 것)의 세 가지를 언급했다. 그리고 예증과 생략삼단논법을 논증의 기법으로 제시했다. 무엇을 더해 그를 설명하랴. 지금도 수사학의 장르와 기술을 분류할 때 준거들로 쓰이는 이 개념들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