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의 세가지 설득법: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2) 두 번째 3- 수사학(설득)의 세 가지 요소
이번에도 클래식에서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화자의 성품과 관련이 있고(에토스, ethos), 또 하나는 청중의 심리 상태와 관련이 있고(파토스, pathos), 마지막은 뭔가를 증명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로고스, logos) 하였다. 흔히 수사학, 변증학이라고 하면 ‘논리적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설가는 자신의 연설이 뭔가를 입증하기에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만 신경 써서는 안 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보여주고 연설을 듣는 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리 들리는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한다. 에토스는 청중에게 화자나 필자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해당 사안에 대해 이야기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 윤리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제 경험에 따르면”, “저는 여러분만큼 똑똑하지는 않습니다만” 같은 말들도 청중들에게 자신이 말할 만한 자격이 있다는 점과 겸손하다는 점을 내비치는 에토스의 수사학이다.
누가 말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설득의 요소인지는 광고가 잘 말해준다. 광고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유명인을 쓰는 것은 에토스에 호소하는 수사적 방법이다. 그들이 어떤 제품이 좋다고 말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반쯤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특정 광고에 나오던 연예인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면 곧바로 그 광고는 폐지되고 모델 계약이 취소되는 것은 그들의 에토스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를 청중에게 신뢰를 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파토스는 청중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감정이란 분노, 연민, 두려움 등이나 그 반대의 감정과 같이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을 바꾸게 되는 모든 느낌을 말한다. 요즘 케이블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선단체의 광고들은 처음에는 한 아이에 대해, 한 가정에 대해 담담히 기술하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점차 파토스에 호소하는 연설로 바뀐다. “여러분의 작은 후원이면 이틀 동안 죽 한 그릇 밖에 못 먹은 이 아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움직인다고 하듯이, 논리에 맡겨두면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잘 판단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인간의 심리에 주목하는 행동경제학은 왜 나왔겠는가? 기본적으로 논리에 호소하더라도 마지막 행동에 이르는 방아쇠를 당기는 건 파토스이다. 마트의 매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1+1’ 표시는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1+1=2여야 하는데 1+1=1이 되는 상황이니까) 역으로 그만큼 강력한 파토스적 레토릭알지도 모른다. 18세기의 수사학자 조지 캠벨도 “열정을 움직이는 것이 불공평한 설득 방법이기는커녕 열정을 움직이지 않으면 설득도 없다”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로고스는 우리가 평소 가장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설득의 방법이다. 로고스는 청중의 이성과 이해력에 호소하는 것이다. 예증(귀납법)과 생략삼단논법(enthymeme)으로서 논증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데, 소크라테스는 사람이고,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삼단논법에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대전제를 생략하고 소크라테스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는다고 말하는 것이 생략삼단논법이다. 로고스는 그리스어로 ‘말하다’를 뜻하는 동사 ‘legein’의 명사형에서 나왔고 말, 이성, 진리, 논리 등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Word was with God, the Word was God)라는 문장에서 ‘말씀’이 곧 로고스이다.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논증 가운데 청중에게 박수갈채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연설가가 논증을 시작해서 결론을 내기 전에 청중이 결론을 미리 예상해 볼 수 있는 논증이거나(청중은 결론을 미리 예상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논증 직후에 즉시 결론을 알 수 있는 논증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