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의 법칙1

수사학의 3가지 장르

by Editor M

지난 2011년에 ‘레토릭: 세상을 움직인 설득의 비밀’(원제: You Talkin’to me?)이란 책을 쓴 저널리스트 샘 리스(Sam Leith)는 어느 날 구글에서 ‘수사학’이란 단어를 넣고 검색을 해본다. ‘레토릭일 뿐’(just rhetoric), ‘레토릭에 불과’(only rhetoric, mere rhetoric), ‘공허한 레토릭’(emptyrhetoric)이란 단어를 넣고 검색해봤더니 순서대로 각각 3만7천8백 개, 4만2천 개, 8만8천2백 개가 나왔다. ‘공허한 레토릭’은 무려 11만 8천 개나 나왔다. (지금 검색해보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영어권에서 레토릭이란 단어의 이미지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결과이다.


나는 특정 단어와 조합하지 않고 ‘레토릭’이란 단어만 네이버에서 검색해봤다. ‘레토릭’이 들어간 기사를 관련도 순으로 정렬한 결과 상위 100개 기사에서‘레토릭’의 쓰임새는 주로 다음과 같았다.


“그린뉴딜, 레토릭에 그치지 않으려면 명확한 목표 있어야” (이데일리, 5.25.)
“한미정상회담 자화자찬…한반도 평화 레토릭에 그쳐” (연합뉴스, 5.24.)
정의당 “정상회담 대북 정책 성과, ‘레토릭’ 그친 수준” (YTN, 5.24.)
‘책임’ 보다는 ‘레토릭’…민주당 강경파의 ‘유체이탈 발언’ (머니투데이, 5.8.)
“정치적 레토릭으로 시선 끌기… 저급한 인식” (서울신문, 2.2.)
칼보다 강한 펜, 레토릭이 아니었다 (조선일보, 12.26.)
“공무원피격, ICC제소 어렵다…北 무력과시는 레토릭” (뉴스1, 2020.10.14.)


‘레토릭에 그치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 무언가 ‘실질적인 행위가 뒤따르지 않고 말 뿐이었다’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레토릭은 그저 시선끌기용이나 보여주기식 과장법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100개의 기사를 살펴보면 그중 28개가 본문은 물론 기사제목에서 ‘레토릭’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쓴 기사인데 전체의 1/4이 넘는다. 기사 제목과 본문을 포함해 우리나라에서도 ‘레토릭’은 대부분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였다. (이에 비해 ‘수사학’은 비교적 가치중립적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리스 시기에도 소피스트로 불린 수사학자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고대와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며 학교 교육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던 수사학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과 기술을 갖고 있기에 평가가 엇갈리는 것일까. 지금부터 레토릭, 특히 고전 수사학의 기본 개념과 주요 도구들을 하나하나 간단히 짚어보자. 이 개념들을 ‘3-3-5’라는 숫자로 대표해 정리해본다.


(1) 첫 번째 3- 수사학의 세 가지 유형(장르)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제1권에서 수사학적 연설에는 세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조언을 위한 연설, 법정에서의 변론, 선전을 위한 연설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고, 수사학을 다룬 책마다 ‘정치적 수사, 사법적 수사, 과시적 수사’라고도 하고 ‘토론적 연설, 법정(재판) 연설, 제시적(의식용) 연설’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수사학의 세 가지 유형(장르)을 부르는 말에는 너무나 다양한 번역이 있고 각각의 단어들이 주는 어감이 현대인에게는 생소할 때가 있어서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이 글에서는 비교적 독자들에게 친숙한 정치적 연설(deliverative rhetoric), 사법적 연설(judical rhetoric), 과시적 연설(epideictic rhetoric)으로 명명하기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치적 연설은 권유하거나 만류하는 연설이고, 사법적 연설은 고발하거나 변호하는 연설, 과시적 연설은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연설이다. 정치적 연설을 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중요하고, 사법적 연설을 하는 자에게는 과거가 중요하고, 과시적 연설을 하는 이에게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은 놀라운데, 먼 훗날 계몽주의 시기에 탄생했던 삼권분립의 개념에서 말미암은 바, 입법부는 미래의 일을 다루고, 사법부는 과거의 일, 행정부는 현재의 일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회는 법을 만들어 미래를 설계하고 법원은 법에 따라 과거에 벌어진 일을 판결하며 정부는 집행하여 일을 추진한다.


각 연설의 지향점도 다른데, 정치적 연설은 이로운 것이냐 해로운 것이냐를 따지고, (이 장르의 레토릭에서는 합법인가 불법인가, 아름다운가 추한가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예를 들어 신공항특별법을 만든다고 치면 이 법안이 국민에게 –또는 자기 당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법적 연설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지고, 과시적 연설은 미추(美醜)를 따진다. 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꿰뚫어 보았다.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과시적 연설이고, 바이든의 취임사는 정치적 연설에 해당한다. 정치적 연설은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입법 사안에 대한 공개 토론 등 공동체의 진로에 대해 청중을 설득하기 위한 수사적 장르이다. 샘 리스는 정치적 수사는 미래의 일을 다루는 것이므로 미식축구 감독이 하프타임 때 탈의실에서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과 매장 직원의 상품 구매 권유도 정치적 수사에 해당한다고 본다. 정치적 연설의 유명한 사례로는 “저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반복 구절로 잘 알려진 마틴 루터 킹의 1963년 링컨기념관 연설이 있다. (바이든 취임사에서도 언급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은 과거의 일을 바탕으로 미래의 일을 판단하기 때문에 ‘예증’이 이 장르의 주요 논증법이라 하였다.


사법적 연설은 유명한 법정 영화들을 떠올리면 좋을 듯하다. 이 분야의 고전인 “앵무새 죽이기”(1963, 아카데미 각색상)부터 톰 크루즈의 리즈 시절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en, 1992)”,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2013)”, 그리고 93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아론 소킨 감독의 “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The Trial of the Cicago 7, 2020)” 등에서 나오는 검사와 변호인, 증인들의 불꽃 튀는 레토릭 대결을 보면 사법적 연설의 진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대 그리스에서도 시시비비와 잘잘못을 가리는 법정 다툼이 빈번했던 만큼 무슨 일이 왜 일어났으며, 그 일이 합법인가 불법인가를 가리는 것이 사법적 연설이 다루는 영역이다. 생략삼단논법이 사법적 연설의 주요 논증법이다.


과시적 연설은 청중을 설득하기보다는 기쁘게 하고 감동을 주는데 주목적이 있는 레토릭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법(amplification)과 비교를 주된 수사법으로 활용하는 과시적 연설은 찬양하거나 비난함으로써 사람이나 사건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거나 깎아내리며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쉽게 얘기해서 결혼식 축사나 장례식의 추도사 같은 것들이 과시적 연설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미사여구를 많이 동원해 세 종류의 연설 중 가장 스타일리시하고 문학적이다. 올리비에 르불은 청중에게 연설에 갈채를 보내는 일만 남겨져 있다면 과연 과시적 연설에는 수사학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논쟁과 설득은 어디 있냐고 자문한 뒤 과시적 연설은 선동적 전언을 ‘통과시키기’ 위해 찬사를 이용한다고 설명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설 중 하나인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도 실은 추도사였다. 미국 남북 전쟁이 진행되던 1863년 11월 19일,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설립 기념식에서 링컨은 전몰장병을 위한 추도사를 한다. 이 연설의 뒷부분에 나온 말이 바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유명한 구절이다. (역시 삼절문이고 반복의 수사법이 쓰였다) 과시적 연설에 해당하는 추도사이지만 링컨은 이 추도사를 통해 민주 정부를 향한 의지를 표명하고 함께 분투하자는 호소를 단 2분, 272단어로 해낸다. 과시적 연설로 시작했지만 정치적 연설로 전개해 나간 것이다.


이렇게 수사학적 연설의 세 가지 유형을 살펴보았다. 세 가지 수사학의 장르는 각각 논제를 끌어오는 말터(토포스)도 다르고 주로 사용하는 수사법도 다르다. 하지만 링컨 연설에서도 보듯이 이런 분류가 절대적이거나 칼로 두부 자르듯이 딱딱 나뉘는 것은 아니어서, 한 연설 안에 다른 유형의 레토릭이 섞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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