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의 역사5

근대와 현대

by Editor M

과학의 발달로 산업혁명이 일어나 근대가 활짝 꽃피우려는 고갯마루 턱에서 고대 수사학과 현대 수사학의 분기점을 이룬다고 평가받는 중요한 저작이 나왔다. 스코틀랜드의 수사학자 조지 캠벨의 ‘수사학의 철학’(The Philosophy of Rhetoric, 1776)이라는 책이다. 조지 캠벨은 수사학이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 이상의 목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논리학에 복무하는 짝으로 여겼지만, 캠벨은 거꾸로 논리학이 수사학의 도구로 간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사학은 청중을 설득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심리에 관심을 기울여 첫째, 청중의 이해력을 일깨우고 둘째,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셋째, 열정을 움직이고 넷째,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수사학의 영역을 넓혔다. 심리학과 인지과학에 기반을 둔 신(新)수사학의 토대를 놓은 이러한 견해는 꽤 인기가 높았는지 ‘수사학의 철학’은 19세기 후반까지 미국 대학들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조지 캠벨이 넓혀놓은 수사학의 범주는 철학과 의학을 공부한(신수사학자답게 정신분석학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영국의 학자 I. A. 리처즈에 의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리처즈는 조지 캠벨의 역작과 똑같은 제목의 책 ‘수사학의 철학’(The Philosophy of Rhetoric, 1923)을 통해 담론에서 언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탐구했다. 리처즈는 과거의 수사학을 “우편엽서의 여백에 써있는 듯한 조야한 상식” -이를테면 명징하지만 무미건조하지 않게 하라, 용법을 존중하라, 우아함보다는 활기찬 것을 선호하라 등등-에 비유하고 이전의 수사학자들을 “평범한 물질을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려 한 연금술사”로 깎아내렸다.

리처즈는 단어들이 고유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미신이고 바로 거기서 오해가 싹튼다면서 대부분의 단어는 문맥과 맥락이 바뀜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가 변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 부분에 수사학이 탐구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수사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사학은 19세기 들어서 쇠퇴의 길을 걷는다. 화려했던 고전기의 영화를 뒤로하고 객관성은 과학적 실증주의에, 독창성은 낭만주의 미학에 밀려난다. ‘레미제라블’을 쓴 프랑스의 대표적 낭만주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다. “수사학에는 전쟁을, 문장에는 평화를”


1885년, 수사학은 프랑스의 교육 프로그램에서조차 사라졌다. I. A. 리처즈조차 ‘수사학의 철학’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이 일련의 강의들은 진부한 주제를 부활시키려는 시도의 하나입니다. 내 생각으로 수사학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기술하는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불쌍한 학생들이 1학년 교양 영어를 수강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끔찍하고도 무익한 낭비입니다. 수사학은 너무나 쇠퇴해버려서 그것 때문에 골치를 썩는 것보다 연옥에 방치해버리는 것이 나은 편입니다”


Google-Ngram-Viewer.png 구글북스 N그램뷰어 ‘rhetoric’ 검색 화면


그런데 1960년대에 이르면 수사학은 갑자기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TV나 라디오 같은 매스 미디어의 발달 때문일까, 자본주의가 고도화하면서 상품 판매를 위한 광고 기법의 진화 때문일까. 또는 냉전 시기의 체제 경쟁과 선전에서 레토릭이 중요하게 쓰였기 때문일까. 구글북스 N그램 뷰어로 수사학(rhetoric)을 검색해보면 1800년부터 지지부진하던 레토릭이란 단어의 쓰임은 1960년부터 갑자기 로켓처럼 뛰어오른다. 수사학이 부활한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시대의 대중은 이율배반적이게도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이다. 파편화돼있는가 하면 플래시몹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레토릭이 지휘한다. 언어가 촉발하고, 언어가 불을 지르고, 언어로 겨우 마무리된다. 실천적 기술로서든 철학적 탐구로서든 레토릭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과거보다 더 중요해졌다. 과거처럼 단일화된 개인이나 사회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 수사학을 넘어, 개인화되면서도 획일화된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 수사학의 탐구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사과 제대로 하는 법, 사과의 기술 같은 –이것이야말로 사실상 고전 수사법의 현대판이 아닐까– 사과의 레토릭이 그리스 시대의 수사학 교본처럼 나돈다. 온라인에는 온갖 은어, 특정 집단의 전문적 용어, 젠더와 세대를 구별 짓고 편 가르는 수사가 난무하고, 이 강력한 수사는 다시 구별 짓기와 편 가르기를 강화한다. 언어가 현실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얘기한 것처럼 인간이 언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언어의 쓰임새를 바로 하고, 인간의 감정을 움직여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이 바로 레토릭이다.


“기나긴 역사에 걸쳐 수사학은 정치 영역과 학문 영역 둘 다에서 주기적으로 그 공적인 명망이 올랐다 떨어졌다 했다. 그런데 수사학은 오랜 기간 잠들어 있었다가도 항상 무대로 복귀한다. 한때 그토록 활발했던 것이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어도 그 적실성과 효능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는 없다. 인간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한 수사적으로 행하는 것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한 권으로 배우는 수사학』 6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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