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으로 뉴스읽기4

좋은 레토릭·좋은 뉴스

by Editor M

키케로는 좋은 레토릭은 설득의 기술을 넘어 청중을 가르치고, 감동을 주고, 즐겁게 하는 것(ut doceat, moveat, delectet)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네 번째로, 뉴스와 수사학의 밀접한 관련성은 키케로의 말대로 수사학이 남을 설득하는 기술 이상인 것처럼, 뉴스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뉴스 이상의 것이라는데 있다.


쉽게 말해 뉴스는 단지 사실의 전달을 넘어서 독자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고, 슬프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감동시키고, 소속감을 줌으로써 대중을 하나로 묶어 사회를 통합시키는 그 무엇이다. 언론사의 고전인 “뉴스의 역사”(A History of News)를 쓴 미첼 스티븐슨은 “뉴스는 정보와 흥미, 지식을 갈망하는 개인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뿐 아니라 평안과 결속을 바라는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키기도 한다”고 보았다. 대중은 불법 행위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법에 대한 이해와 벌칙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하고, 전쟁이나 국가 행사, 스포츠 뉴스를 교환하면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멤버십을 갱신’한다는 것이다.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한 장면. 출처: 아마존닷컴


2021년 개봉한 톰 행크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The News of the World)를 보면 뉴스가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은 1870년, 미국 남북전쟁 직후의 텍사스이다. 전직 인쇄업자이자 남부군 대위였던 제퍼슨은(톰 행크스 분)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돌며 뉴스를 읽어주는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없고 신문을 구독할 환경도 처지도 못 되었던 시대. 밤마다 하루의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마을의 술집이나 공터에 모여 10센트 정도의 푼돈을 내고 뉴스를 듣는다. (이 점이 중요하다. 뉴스는 ‘본능’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마을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단순한 소식이 아니다. 무미건조한 팩트의 나열이 아니다. 정보를 주고, 웃음을 주고, 희망을 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를 북돋는 뉴스들이다. 이것이야말로 뉴스의 ‘본질’ 또는 ‘본성’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저널리즘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수사학에 대한 키케로나 캠벨의 정의처럼, 삶에 필요한 정보를 알리고,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고, 특정한 판단을 내리도록 설득하는 기능을 필연적으로 갖고 있다고 본다. 필자가 뉴스가 추구해야 할 객관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언론은 좀 더 ‘명료한 레토릭으로써’ 객관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객관성을 견지하는 것이 곧 단순한 팩트의 나열은 아니며, 객관성은 팩트를 어떻게 배열하고 어떤 어휘로서 팩트를 기술하는가 하는 수사학적 태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언론인은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의 뉘앙스와 의미의 행방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취재원이 어떤 레토릭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언술을 펼치고 있는지 살펴 일반의 언어, 객관적인 언어, 진실에 접근한 언어로 바꿔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뉴스는 팩트를 다루지만 팩트는 그 자체로 진실이거나 참이 아니며, 팩트들이 모여(이조차도 100% 취재할 수는 없다) 진실을 구성한다.


저널리즘은 사실 전달을 넘어 진실, 다른 말로 맥락적 사실, 총체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궁극적 사명으로 한다. 이런 쉽지 않은 목표도 결국 단어 하나, 레토릭 하나에서 시작한다. 언론의 언어를 수사학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그래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


말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용기를 갖게 하는 언어의 마법,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찾아내며 절망의 폐허에서 희망의 왕국을 짓는 언어의 연금술,
그것을 그리스인들은 연설가의 기술, 곧 수사학이라고 불렀다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민음사, 201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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