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으로 뉴스읽기3

뉴스도 설득이다

by Editor M

두 번째로, 수사학이 ‘설득의 기술’인 것처럼 뉴스 역시 그러하다. 뉴스는 건조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인데 그게 설득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언론 보도는 기본적으로 설득의 영역보다는 사실 전달의 영역에 있기는 하다. 실제로 건조하고 단편적인 팩트만을 나열하는 뉴스도 많다.(나는 그것을 좋은 뉴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흔히 뉴스에서 “~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또는 “~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끝맺는 경우를 많이 보지 않는가. 전자는 전문가의 입을 빈 설득이고, 후자는 기자가 예측의 레토릭을 사용한 설득이다.


기자가 특정 전문가를 인터뷰해서 말하게 하는 것도 설득이다. 누구의 견해를 듣느냐에 따라 시청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도 설득이다. 예를 들어 ‘부추기다’와 ‘유도하다’는 청자의 파토스를 서로 다르게 자극하는 설득이다. 나아가 어떤 뉴스를 내보내고, 어떤 뉴스를 내보내지 않느냐 결정하는 것 자체도 설득이다. 뉴스가 설득의 수사학이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언론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1930년대 동아일보 기사에도 이미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신문의 사회적 기능이란 결코 보도에만 잇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한 사실의 윤곽을 충실히 보도하려는 것도 물론 그의 기능의 하나이겠지 마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하는 동시에 그 사건에 얼킨 사회의 병든 기구를 폭로하고 암시하야 독자의 두뇌에 이러나는 정신적 유기작용을 어느 한 목표에 종합하야 드듸어 그 관념을 행위 행동에까지 유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유치진, 동아일보 1931.12.18.일자 5면) ※당시 표기법과 맞춤법을 수정없이 전재


특히나 요즘처럼 뉴스와 미디어의 쌍방향성이 중시되는 트렌드에서는 뉴스에서 수사학적 설득의 요소가 더욱 강조될 수 있다. 조왯과 오도넬은 “선전과 설득”이란 저서에서 “설득은 언어 메시지를 보내는 자가 메시지를 받는 자의 믿음과 태도 그리고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의사소통의 과정”이라고 하였다.


세 번째로, 뉴스가 설득 커뮤니케이션인 한, 레토릭의 기본 개념과 작동 원리를 대부분 공유한다. 수사학의 세 장르인 정치적 수사 · 사법적 수사 · 과시적 수사, 설득의 3요소인 에토스 · 파토스 · 로고스, 5대 규범인 ‘착상-배열-표현-기억-발표’ 모두 뉴스 제작 단계마다 기꺼이 참고해야 할 기본적인 고려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해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하는 언론수용자조사의 2020년 결과를 살펴보면 수용자들은 언론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비교적 큰 편이라고 평가하고(3.82점), 전문성(3.57점)과 사회 기여도(3.41점)에는 중간을 약간 웃도는 점수를 줬지만, 도덕성(2.99점)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다. 이 통계를 끄집어낸 이유는 언론인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가 바로 수사학의 에토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미디어가 소홀히 하는 부분이 바로 에토스의 형성이다. ‘기레기’로 대표되는 폄훼의 레토릭이 말해주듯이 뉴스 전달자이자 이야기꾼으로서 기자들의 에토스는 바닥에 떨어졌다. 기사만 잘 쓴다고 곧바로 회복될 일은 아니어서 언론계 전체가 에토스에 대해 숙고하고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사례로 든 기사에서는 언론이 게이트키핑에 소홀하고 ‘그대로 보도’해서 비판을 받았지만, 대개는 ‘있는 그대로만 보도’하라며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런데 기자들을 위한 변명을 하나 하자면 언론이 보는-봐야 하는- 사실이란 ‘조각 사실’이나 단편적인 팩트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기자들이 다뤄야 하는 팩트는 한 개인이 직접 체험하는 단편적인 팩트를 넘어선, 다양한 취재원을 통해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팩트이기 때문에 한 개인인 내가 직접 보거나 겪은 바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바닥을 친 에토스를 가지고 얼마나 설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에토스 외에도 저널리즘에는 로고스와 파토스적 요소가 필요하다. 뉴스는 다각적인 취재와 다양한 제작 기법, 레토릭을 통한 논증과 논박(로고스)으로 논제를 전개해 나가며 이는 탐사 보도나 사설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특정 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는 현대인은 대개는 -특히 정치 이슈에 대해- 자기가 평소 가지고 있는 프레임으로 뉴스를 훑어보거나 ‘조각 사실’를 자신의 프레임에 맞추어 취사선택하기 때문에 정확한 맥락적 사실을 전달하고 설득하려는 기사에는 시청자와 독자의 파토스를 고양하는 레토릭이 필요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잘 쓴 기사라도 읽는 재미, 보는 재미가 없으면 독자들을 붙잡아두지 못하는 것을 현장에서 많이 봐왔다. 뉴스는 수사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이 아니고 문학도 아니며 그 사이에 있는 무엇이다.


또한 수사학처럼 철저하게 독자지향적이어야 한다. 저널리즘은 자신을 돌아보고(에토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취재했는지 밝히며(‘과정으로서의 뉴스’, 에토스) ‘가짜뉴스’와 수익만을 좇는 유튜버들이 난립하는 시대에 청중을 팩트와 진실로서 설득할 수 있는 수사학적 힘이 있어야 하고(파토스) 이성적으로도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논증해야 한다.(로고스)


수사학에 정치적 연설, 사법적 연설, 과시적 연설이 있듯이 뉴스에도 이에 대응하는 장르가 있다. 주로 로고스를 바탕으로 논제를 서술하는 법조 기사가 사법적 연설의 레토릭에 가깝다면, 과시적 연설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는 피쳐 기사는 수사학의 5대 규범 중 ‘양식’(표현)에 해당하는 수사법을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여 파토스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정치 기사나 정책 기사는 ‘착상’의 토포스와 에토스가 중시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연설가들이 수많은 청중 앞에서 실시간으로 연설했던 것처럼, 적어도 현장 라이브(Live)의 형식이 유지되고 있는 TV뉴스의 전달 형태는 여전히 ‘기억’과 ‘발표’가 중요한 수사학적 장치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특정 고전적 수사학 요소가 현대 뉴스의 특정 장르와 매번 고유하게 조응한다기보다는 서로 맞물리고 교차하며 진술하고 설득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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