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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an 10. 2024

독일의 아픈 역사와 밝은 미래가 공존하는 드레스덴

오랜 기간 숙원과 같았던 드레스덴 여행. 그 시작은 Straubing을 떠나기 전부터였다. Freiburg로 이사하게 되면 드레스덴은 더욱더 멀어졌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로 진지하게 여행을 출발하려던 전날, 여행의 핵심 중 작센스위스 국립공원에 불이 나는 바람에 산행이 통제된다고 하니 눈물을 머금고 여행을 취소했다. 대신에 갔던 퓌센이 기대 이상이고 너무나도 아름답긴 했지만.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다. 여전히 너무나도 먼 드레스덴, 편도만 7시간 거리에 아는 지인도 없으니 여러모로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도중 즉흥적으로 여행을 결정했다.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이곳만큼 오고자 하는 열망이 강렬하진 않았던 듯하다.


카를로비 바리를 출발해 작센스위스 국립공원부터 방문한다. 가는 길 체코의 대표 공업도시를 지나는데 그곳부터 엘베강이 시작한다. 엘베는 라인강 다음으로 독일에서 중요한 강이다. 역사적으로나 지금 산업에도. 이는 주변국 체코에도 해당하는 말인데, 바다에 접해있지 않은 체코는 엘베강을 쭉 따라 함부르크에 있는 항구를 통해 북해로 통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99년간 체코에 함부르크 항의 일부분을 빌려줘야 했으며 90년대에는 체코는 이 임차권을 연장해 함부르크항을 계속 이용한다고 한다. 이만큼 실로 엘베강은 그들에게는 바다로 향하는 오데르 강을 제외하곤 유일한 길, 생명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오데르 강에 끝, 폴란드의 슈체친(Szczecin) 항에도 함부르크와 비슷한 체코를 위한 부두가 있다.


이처럼 체코를 지나 이 엘베강을 쭉 따라가면 독일과 체코 국경인 작센스위스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스위스만큼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사실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산세가 낮고 그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끼진 못했달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30분 정도의 산책 아닌 등산을 하면 목적지 Bastei 다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의 경치는 퍽 훌륭하다. 기암괴석이 뾰족뾰족 튀어나온 게 우리나라로 치면 주왕산 혹은 두타산과 비슷한 느낌이다. 중국의 장가계는 이보다 더 멋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산 아래 바로 엘베강이 보이는 풍경은 청량산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는 풍경이 겹치기도 했다. 저 멀리서부터 기차가 들어오는 풍경은 낭만이 넘친다. 황량한 겨울이 아니라 푸릇푸릇한 봄여름, 혹은 가을이었으면 정말 아름다웠겠단 아쉬움이 들면서도 비가 안 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강을 건너 조그만 배를 타고 넘어가는 것도 낭만이 있었다. 혹 내가 드레스덴 공대에서 공부했다면 검은숲이 아니라 이곳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겠거니 하는 생각도 함께하며 이곳을 떠난다.

최근에 이곳에 비가 많이 뿌려졌는지 주변 마을이 침수되었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는 이곳뿐만 아니라 기차를 타고 넘어오는 모든 체코 마을도 그러했는데, 이는 드레스덴도 마찬가지였다. 21세기에도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정도로 이곳의 범람은 어제오늘 이야기 일만은 아닌 듯했다.


드레스덴.

드레스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다. 작센 공국의 수도였으며 지금도 작센주의 주도로, 구동독 지역 중에선 베를린, 라이프치히 다음으로 큰 도시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기타 도시보다는 짧은 역사를 지녔는데 주목할 점은 17세기 작센의 지배자였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아우구스트 2세 폴란드 왕이 되면서 이곳에 수많은 예술가를 드레스덴으로 불러들여 그동안 주목받지 않던 도시를 유럽 내에서도 잘 나가는 도시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시내엔 그의 이름이 여기저기에 있으며 그의 동상은 구시가지는 물론이고, 강 건너 제일 좋은 자리에 황금 동상까지 세워져 있다.

또한 드레스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내에서 제일 큰 피해를 본 도시 중에 하나다. 1945년 2월, 때는 이미 전쟁이 승패가 판가름이 난 이후였는데, 영국과 미국 공군은 이틀 밤 동안 이 도시에 엄청난 폭격을 가한다. 당시 나치는 2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있었다고 발표했는데, 물론 역사학자들은 이는 과장된 수치로 2만에서 2만 5천 명이라고 했으나 그렇다고 그 피해가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도시는 처참히 파괴되었으며 이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이 교회에도 마찬가지.

그을린 건물의 외벽은 비참했던 그 날의 기억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렇게 도심은 과거를 지니고 새로 복원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도심 외곽엔 폭격의 잔해가 그대로 있는 경우도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보이는 광경은 폭격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상상하게 된다.


연합국의 이와 같은 무차별적인 폭격은 건물뿐만 아니라 독일 국민의 엄청난 반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필자와 제일 친한 독일인의 뿌리는 드레스덴이었는데, 그의 조부모는 2차 세계대전 중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보다도 연합국에 대한 반감 내지는 분노가 훨씬 강하다고 했다. 한때 드레스덴이 극우성향의 네오나치주의자들의 거점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는 그 복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후대세대들의 새로운 복수를 낳는 법인데,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을 바라보며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한반도도 마찬가지. 안타깝지만 이 순간에도 계속된다는 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생각할 수 있다. 전후 독일과 프랑스와의 특별한 유대 같은 건 정말이지 특별하고, 어려운 일이다.


한편, 부서진 교회는 전쟁 이후에도 계속 복구되지 않았는데, 당시 동독은 이념적인 이유로 교회 재건에 굉장히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복원 사업은 통독 이후에나 진행되는데, 이를 위한 엄청나게 많은 후원금이 들어왔다고 한다. 십수 년간의 복원 사업으로 지금은 웅장한 모습으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건축물이 복원되고 몇몇 건물은 지금도 진행 중인데, 이들이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리잡아 사람들은 드레스덴을 독일의 피렌체라고 부른다. 한편 냉전 당시 몇몇 건축물은 복원되지 않고 그냥 파괴되기도 했는데 이는 68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사회주의 정권 아래 라이프치히 대학건물이 폭파되었던 상황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격동의 시기였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역사가 아닐까.




라이프치히가 Neue Berlin, 새로운 베를린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드레스덴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냉전의 산물로 보이는 개성 없는 수많은 건축물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역사적인 건물과 더불어 현대적인 느낌도 있다. 더불어 구시가지를 형성하는 다리를 건너면 트렌디하고 힙한 식당과 술집이 가득하다.

이를 토대로, 독일에서 제일 역동적인 도시라면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이 꼽히지 않겠는가. 이는 독일에서 진행되었던 연구 결과도 이를 증명하는데, 앞으로 향후 10년, 20년동안 수많은 광산이 있었던 라인루르(Rhine-Ruhr) 지방의 많은 도시는 인구 유출이 되지만, 언급된 3개 도시는 계속 성장해 기술과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 아직도 구동독과 서독 지역의 뿌리 깊은 반목과 정치적인 양극화를 생각하면 구동독 지역 중엔 이 3개의 대도시만 전망이 밝은 건가 싶은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아름다웠던 도시와 많은 역사를 뒤로하고 떠난다. 이렇게 독일에서는 모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일 주요한 도시들은 어느 정도 보게 된 듯하다.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었으면 훨씬 좋았을 뻔했지만, 이곳에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출장을 오게 될 일도 있지 않을까. 앞서 생각한 것처럼 새로운 독일의 동력은 위 3개 도시와 더불어 뮌헨,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정도가 되지 않겠냐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오는 길에 20분 남짓의 짧은 환승시간에 라이프치히를 구경했다. 기차를 놓칠 뻔하긴 했지만, 충분히 가치 있었다. 예전에 쓱 지나갔던 파우스트의 배경이 되었던 라이프치히 맥주집부터 구시가지에서 우연히 괴테 동상도 발견했다. 예전에 이곳에 와서 괴테에 관한 이야기를 유심히 보진 않았는지 동상은 처음 보는 듯하고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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