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국은?
나의 지도교수 M은 대단히 이상주의적인 유럽식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에겐 한국과 일본이 친하지 않은 것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같은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두 자유주의 국가가 왜 사이가 좋지 않은지, 내 설명을 듣고서 끄덕이긴 했지만, 계속 안타까운 모양이다. 물론, 나도 한국과 일본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유감이긴 하지만, 절대로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늘, 그에겐 모두 자유주의 국가일 뿐이다. 이 자유주의 사상이 널리 퍼진다면 지구상의 갈등과 전쟁이 없어질거라고 믿는 편인 듯하다. 물론, 2차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모습을 상상하면,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다만, 소위 제3세계, 글로벌 사우스에서 온 이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너무나도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법이다.
국제 정치에 관한 주제는 그리하여 1주일에 최소 두세 차례는 식탁에서 주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 고국에서의 나의 스승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다른 국가의 뉴스를 굉장히 자세하게 보도하는 경향을 보고, 그들의 관심사를 그저 국내 및 이웃 국가에 한정하지 않고, 이를 전세계로 다루는 이른바 ‘제국’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했는데, 어쩌면 독일은 그런 모습을 지닌 셈이다. 나쁘게 말하면 제국이지만, 좋게 말하면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려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사상의 코어엔 분명히 자유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 그 체제에 관한 관심은 역시나 끝이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한국도 정부에 따라 대북기조, 주변국과의 외교가 완전히 뒤바뀐다는 이야기는 그에겐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했다. 아무리 독일에서 관심이 있겠다고 한들, 동아시아의 정치 상황을 속속들이 아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 또한 그런 셈이다.
독재 국가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는다. 일례로 이란 이야기가 나왔는데, 연구 분야에 있어선 아주 합리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이가 본인들의 정치에 대해선 굉장히 방어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비치기도 한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다른 비자유주의 국가에 대해 갖는 전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그러하다.
이들에겐 이런 자유주의가 퍼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자유주의자들이 제일 숭배하는 인권의 개념에서도 그렇겠지만, 그보다도 이 모든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바탕에 있어서다. 예를 들면, 유럽연합이 각 국가의 국민에게 유럽 내에서의 이동의 자유가 주어지게 된 이후에, 동유럽에 살던 몇몇 이들은 국민소득이 높은 서유럽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한편, 이게 모든 국민이 그러는 건 아닌데, 아무리 다른 나라가 더 잘 살아도 언어도, 정서도 다른 동네로 이사하는 게 좀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 이유로 그저 몇몇 이들만 떠나는 셈이다. 이렇게 사람들에겐 이동의 자유가 있고, 적어도 유럽 내부에서는 본인들끼리 전쟁할 걱정이 없어져서 좋고, 이게 유럽식 자유주의의 좋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다음은 미국의 대선.
교수는 누가 됐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건 막아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바이든은 무조건 내려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트럼프가 되면 본인의 자식들이 군대에 가야 하는 비극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나는 거기에서 의문이 들었다. 역시나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친 이에게 군대 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그 무언가. 물론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군 복무는 무언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야기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유럽인들은 사실 너무 naive한 부분이 없지 않다. 미국에게 모든 안보를 맡기고 이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위험한 태도가 아니냐.’
누군가는 공감했지만, 30여년 넘게 ‘평화의 시대’에서 살아온 그들에겐 필히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을 테다. 트럼프가 되는 걸 더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한반도의 현상 변화를 이끌었던 건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물론 그 결과가 꼭 좋진 않았지만.
이에 이라크, 이란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학위를 한 중년의 박사가 본인도 국제 외교에 있어선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거든다. 민주당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ISIS를 비롯한 지금의 난민 무제가 다 그로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나는 사실 그 전쟁을 시작한 건 다 부시 행정부가 아니냐고 하여 그는 맞지만, 전쟁을 그런 식으로 마친 행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이라크는 몇몇 일종의 마피아 세력이 힘을 갖고 사람들의 생사이탈권을 쥐고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사담 후세인 때가 나았다고 말한다. 그도 악마였지만, 이미 2차 걸프전을 할 때, 그의 권력은 이미 나약했다고.
이어서 아랍의 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 봄은 사실 결국 좋은 결과를 낫지 못했다. 서울의 봄과도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그들의 진정한 봄은 찾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 퇴행한 정치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그들이 그런 정치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 유지할수록, 유럽에 밀려드는 난민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이는 또다른 사회 문제를 양산할 것이다. 이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내게 없다.
다음은 난민.
육로보다는 북아프리카 내지는 중동으로 배를 타고 유럽으로 오려는 경우가 있는데, 불운하게 바다에서 사고가 나서 목숨을 잃는 이들도 적지 않고, 운이 좋아 육지까지 오더라도, 현재 관련한 이탈리아 법에 의하면, 이들은 본인이 처음에 도착한 나라, 아니 나라도 아니고 그 고장을 떠날 수 없게 구속되어 있다. 이것도 난민수용소에 갇힌 사람들보단 훨씬 좋은 처지이다. 난민수용소에선 수많은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유럽에선 전쟁이 끝난 지 오래고, 모두 굶어 죽을 일은 없겠지만 이들에겐 그런 상황도 쉽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난민에 대한 정책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많다. 이 첨예한 갈등, 문제에 대해 나 또한 확실한 답 혹은 입장이 없는 편인데, 이는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도 수많은 난민이 독일에 이주한 지 이제 10년인데, 그들이 이 사회에 정착했다기보단 또 많은 사회 문제를 양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날 연구실 내 동료 A와의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작년 독일의 시민권 취득권자 중 원래 국적이 대부분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터키였다는 사실을 봤는데, 나는 가끔 독일이 독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A는 말한다.
‘어차피 출산율이 너무 낮아서 노동력이 없는 이 상황에 유일한 해결책이 이들을 더 받아들이는 길이고, 물론 그들은 살아온 배경 자체가 너무 달라 완전히 적응하는 건 아직도 어렵지만, 그래도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심각하진 않아. 나는 그리고 독일에 터키식당이 더 생기고, 중동 음식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에 더 좋은데?’
이런 A의 입장은 유난히도 자유주의 사상이 더 강한 이곳, 프라이부르크에서 공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있었던 독일에서의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구 동독 지역은 분명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다. 그리고 많은 독일인들은 이에 대해 분명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생각해 볼 법한 문제이다. 재밌는 건 독일인들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독일 언론에서 한국을 꽤 큰 비중으로 보도하는 모양이다.
그들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너희는 이걸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한국의 경제상황은 어떤지. 기업들은 지금 채용을 많이 하고 있는지’ 등등.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가 이를 인식하는 부분도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어려운 문제가 어렵다고 손 놓고만 있으면 이에 대한 해결은 결국 미래 세대가 더 크게 감당할 수밖에 없을 테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