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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생각

등산의 참 의미

산경표

by 송다니엘

충주나 무주, 구례에서부터 하동, 산청과 같은 지역에서 보면 길게 연결된 산봉우리, 능선을 볼 수 있다. 전국, 꽤 많은 곳을 다니며 문득 나는 우리 산, 우리 국토의 뿌리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학창 시절 배웠던 ‘태백산맥’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산맥’은 1903년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서양 지리학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산의 줄기가 아니라 지질구조선에 기반을 두고 만든 것으로, 땅 속의 광맥줄기를 기본개념으로 했다. 정확한 지형과 지질조사를 통해 효율적인 자원 수탈을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개념에 따르면, 산맥은 줄지어 모여 있을 뿐 이어지지 않으며 산맥 속에는 산도 있고, 물도 있다.


직접 산에 올라서 산을 보면 산과 강은 절대로 서로를 건너지 않는다. 이것이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핵심이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

“산 없이 시작되는 강은 없고, 강을 품지 않는 산이 없으니 산과 강은 하나이다.”


이와 같은 개념은 1980년대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발견된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이 썼다고 알려지는 ‘산경표’라는 책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택리지’, ‘대동여지도’ 등에도 산수에 대하여 언급은 되어있지만, 실제로 산줄기를 체계적으로 논하고 있는 책은 전무하다.


속리산에 오르면, 삼파수(三派水)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남한강, 금강,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뜻이다. 실제로 측량결과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우리 산과 강에 대한 선조들의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지금처럼 현대화되기 전에는 산은 취미로 오르거나 정복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삶의 일부분이었다. 선조들의 생각과 산경표의 개념은 맞닿아 있었다.


“산줄기는 지형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 기후, 언어, 예술, 지역감정 등 모든 인문지리학적 사실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기에, ‘산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산경표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부터 ‘이 땅의 척추는 태백산맥이 아니라 백두대간’이라고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故 이우형 선생은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우리 땅, 우리 산들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한 모태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는 물줄기 중심으로 가름한다는 산경 원리, 즉 우리를 낳고 살게 하고 쉬게 하는 그 원초적인 알맹이인 물의 산지라는 인식을 옛 선인들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선조들이 인식했던 산경의 원리를 새롭게 인식하는 작업에서 우리 땅에 대한 더욱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있기를 빈다.“

곱씹어보기를, 등산은 단순한 산행 이상의 의미가 있다.


덧붙여, 일제뿐만 아니라 효율만을 강조하는 서구 사상에 의해 우리의 좋은 가치를 얼마나 많이 잃었는지,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갔던 선인들에 비해 유례없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우리는 이를 얼마나 거스르고 있는지 성찰해본다.


수도권의 산에 오르면 끝도 없이 보이는 아파트. 그곳에 너도나도 못 살아서 아쉬운 우리들의 모습을 대비되게 ‘깊은 산’에 올라서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능선을 보며 잠시나마 물질적인 가치를 잠시 뒷자리로 밀어본다.


마지막으로 사회라는 과목을 배운 것이 10년이 넘었다. 지금 학생들은 아직도 ‘산맥 체계’로 우리 국토를 배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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