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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나길 Dec 12. 2020

책 <버드 스트라이크> 리뷰

작가님을 향한 내 사랑만큼 안 써져서 뚁땽함...

 -<버드 스트라이크>/구병모/창비

 -출간연도: 2019

 ※스포일러 주의! 소설 내용이 담긴 글이므로 소설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어느 날, 50여 명의 익인(翼人)들이 시 청사를 습격한다. 익인은 명칭 그대로 날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익인과 도시인의 혼혈로, 다른 익인보다 몸이 둔한 비오는 습격 후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경비원들의 총에 맞아 붙잡히고 만다.


 책 소개는 이쪽 -> http://aladin.kr/p/aeceQ


 여기 <버드 스트라이크>에서는 크게 두 세계가 제시된다. 익인(翼人)들이 사는 고원지대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 익인들은 도시인보다 몸이 작고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이 날개는 특이하게도 견갑골 어드메에 숨어 있다가 원할 때면 펼쳐져 나온다. 이들은 공동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며, 자연에게 온 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묘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을 떠올리게 한다.


 이 두 세계는 자연과 문명을 연상시킨다. 도시는 자연을 개발하고 원하는 것을 갈취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의 착취는 익인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정당한 무역이라는 이름을 반듯하게 내걸고는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도시에서는 도시 말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놓고 필요하지 않은 옷들을 떠안겨놓곤 익인들에게 그보다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미과, 은각안, 우리온의 가죽…. 도시에서 요구하는 물량은 점점 늘어만 간다.


개체 수에는 한계가 있는데, 내놓으라는 양은 자꾸만 늘어나. 홀림목은 저토록 끝 간 데 없이 우거져 있어서 자연이 키워 주기라도 하지만, 은각마의 눈은 두 개뿐이란 말이야. 살아 있는 은각마한테서 눈을 뽑아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눈을 얻기 위해 일부러 죽여서는 당연히 안 되는 일인데, 도시 사람들은 그 당연한 이치를 모르는 척하더구나. (p.109)


서로 맞추어 커다란 그림이 되는 퍼즐조각처럼 '너'도, '나'도 세상의 일부임을 알아야 한다. 그 무엇도 우열을 가리거나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사실 도시인들은 익인을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시행(도시의 지도자)인 휴고의 '개체 수'라는 표현이나 마이가 '너희 같은 야만인들한테 인간의 측은지심을 기대하는 게 이상한 거겠지'라고 했던 발언(예??? 누가 누구한테?)을 보면 알 수 있다. 도시인들은 심지어 날개에 대한 궁금증에 사람 수만큼 깃털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이런 대목들과 설정에서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인간이 같은 인간을 착취하는 일들이 떠올랐다. 은각안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은각마의 눈을 뽑듯이 우리는 털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뽑고, 가죽을 취하기 위해 동물을 해치지 않는가. 이것들은 결코 소설 속의 일만이 아니며, 그렇기에 더욱 잔혹하다.


소설에 언급되는 벽안인(유안, 마이)들은 도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질적인 존재로 구분된다.


 여기서 제시된 세계를 좀 더 세분화하면 익인과 도시인, 도시에 살고 있으나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벽안인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소설에선 각자 딛고 선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는 이들이 나온다. 익인과 도시인의 사이에서 태어나 익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온전한 익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비오와, 전 시행의 혼외자로 태어나 청사에서 소외받는 루가 대표적이다. 비오와 루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나중에 나오는 마이도 소외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마이는 비록 무화라는 거대한 무기회사의 후계자이나, 벽안인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거리감이 있다. 마이의 특성으로는 꼭 '벽안인'이라는 묘사가 붙는다. 벽안인이란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데, 우리로 치면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마이는 같은 벽안인인 아버지 유안 회장과의 사이도 소원하다. 이들은 각각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복잡한 것, 논쟁이 되는 것은 극히 사소하고 작은 부분에서만 발생한다. 종교, 성별, 인종, 지리적 배경이 무엇이든 우리 모두에겐 서로 98퍼센트 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극히 사소하고 작은 부분 때문이다. …(중략)…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서로 다른 2퍼센트에 초점을 맞추려 하고, 이 세상 갈등 대부분은 거기에서 초래된다. - 책 <에브리데이> 中


 마이는 다른 도시인들과 똑같이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며, 루 또한 마찬가지다. 비오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도 정체성을 '익인'으로 정의한다. 심지어 익인과 도시인도 생김새의 일부와 날개가 있다는 점 외에는 다르지 않다.


 저자는 옛사람에게 새어나가면 안 될 말들을 쏟아놓는 모습과 혈통관리를 위해 혼혈인 비오를 차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칫 익인에게 품을 수 있는 환상을 단호하게 깨뜨린다.


신비화·신성화되는 대상은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 익인의 모순적인 모습이 비춰지지 않았다면 익인은 자연을 사랑하고 이타적인 다른 종족 정도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자연과 공생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선한 익인들이 가진 모순적인 모습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이들이 도시인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며 이들과 도시인들을 옳고 그름이라는 틀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한다. 또, 신비화·신성화 될 수 있는 익인의 이미지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해하지 못하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p.169)


 너와 내가 다르다면 다른 만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게 되면 그걸 낱낱이 해부하거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로 끌어오려 한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대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은 잔혹동화같은 느낌을 준다. 동화처럼 신비로우면서도, 신랄한 현실의 칼을 휘두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고, 이들이 성장한 것은 기뻤지만 소설의 끝에 다다랐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속이 더 쓰렸다.


 솔직히 삶에서 타이밍이라는 게 늘 적절할 수만도 없고 손에 넣었다 생각한 것을 놓치기도 부지기수다. 그렇다곤 해도 비오가 겪은 상황에 몰입하니 너무도 잔인했다. 정말 간발의 차였다. 어쩌면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어긋난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마침내 다다른 끝은 처절했다.


 마이가 받은 벌이 저질렀던 짓들에 비해 약하게 느껴졌지만 애초에 모든 이야기가 권선징악에 개과천선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그가 다스릴 제국이 무너져 내림으로써 모든 걸 잃어버린걸지도 모르니 그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얘기하겠다.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는 조류가 비행기에 부딪히거나 엔진 속에 빨려 들어가 항공사고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말로는 '조류충돌'이라고 한다.


 루는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다. 비오를 차별하는 익인들의 사회에 균열을 일으켜 비오가 한 명의 익인으로 받아들여지게 한다. 비록 지장(익인들 수장)의 마음 구석에 비오에 대한 생각이 계속 가시처럼 따끔거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루가 그에게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익인들은 이러한 모순을 덮어두고 있었을 것이다. 루는 마이를 저지했고 결과적으로 익인과 도시인이 새로운 관계를 도모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 또한 마련되었다. 그 과정에서 심하게 다쳐 너덜너덜해진 루를 비오는 두 팔과 가슴으로 끌어안아 치유한다.


 작 중에서 익인의 날개는 비행뿐 아니라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날개로 감싸안으면 어떤 상처든(병 제외) 낫게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날개가 작은 비오는 날개로 상대를 감싸안아 치유하기는 어렵다. 대신 비오는 다니오의 조언대로 상대를 꼭 끌어안는다. 상대를 감싸안는다는 것, 최선을 다해 마음의 전부를 주는 것, 가진 것을 내어준다는 것…. 그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바람에 몸을 맡기면서도 때론 바람에 저항해야 하는데, 흔들리지 않고 휘청거리지 않고 날 수는 없어. 비오가 아니라 우리 중 그 누구라도, 하다못해 작은 새나 벌레라도 날개를 가진 자라면." (p.195)


 비오는 다른 이들보다 큰 몸을 그보다 작은 날개로 버티며 비행한다. 날기 위해 흔들리고 휘청거리는 건 비오 뿐 아니라 날개를 가진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이는 작은 유영기에 올라탄 루의 모습도 떠오르게 한다. 루는 비오가 날개를 접고 쉴 수 있는 땅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느 한 방향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임을 느낄 수 있었다. 루와 비오는 자신의 방식으로 비행하며 동시에 서로가 딛고 설 수 있는 땅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들의 비행을 지켜볼 수 없지만 비오도, 루도 각자의 방식으로 날아오를 것이다. 커다란 날개를 쭉 펴고 시원스럽게 날진 못하더라도 폴폴, 날 수 있는 높이와 속도로 멀리, 원하는 만큼 어디까지나 날아가리라. 그러다 날개를 접고 쉬어가고 싶어질 때면 숨을 고르고 마주보며 서로에게 기대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구병모 작가님의 책은 소재도 독특하고 캐릭터들도 매력적이다. 현실에서 잘 쓰이지 않을 법한 이름을 가진 인물들을 통해 소설 속의 세계를 이질적으로 느끼게 한다. <아가미>의 강하, 곤이나 <파과>의 조각, 투우, 해우 같은 이름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이런 작명은 소설을 더 신비롭고 환상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구병모 작가님이 꾸었던 꿈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책읽아웃'의 인터뷰에서 <버드 스트라이크>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작가님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다. (링크: http://naver.me/FXOBd4Vz)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이라 잘 쓰고 싶고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쓰다보니 잘 안 써져서 속상하다. 작가님 제가 많이 사랑해요. 건강하시고 평생 글 써주세요!




사진출처:

https://pixabay.com/images/id-2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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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책 <에브리데이>

http://aladin.kr/p/GGb4g


(본문에 표기된 페이지는 전자책을 기준으로 임의적으로 설정된 페이지 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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