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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Oct 04. 2023

파월은 왜 高금리로 우릴 苦통스럽게 하나

2023년 9월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이 혼돈의 카오스를 겪는 중이다. 지금도 미국의 정책금리(기준금리)는 연 5.50%로 매우 높은 수준인데, 연내 5.75%까지 한 번 더 올릴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 나왔다.


'그래도 곧 인하하겠지'라는 나 같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향해 연준은 점도표(dot plot)로 준엄하게 꾸짖었다. 2024년 말까지는 5%대를 유지할 거라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채권 금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좌절스러운 상황이다. 과거보다 높은 이자율을 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2022년 말 같은 돈 가뭄이 다시 한번 올 수도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처럼 파산하는 금융기관이 또 나올 거란 우려도 나온다. 채권 금리가 오른다는 말은 채권 가격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채권을 갖고 있는 기관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쪼그라다.


주식시장도 날개 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미국 증시든 국내 증시든 종목토론방(종토방)에선 곡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친구 중 하나는 "제롬 파월 미 연비제도 의장 좀 어떻게 할 수 없느냐"며 헛소리를 해댔다.


이런 무모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내 친구뿐만이 아니다. 실행에 옮기는 사람도 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는 폴 볼커 미 연준 전 의장(1979~1987 재임)이 본인의 저서 '달러의 부활(원제 Changing Fortunes)'에서 꺼내놓은 일화를 보자.

Microsoft Bing AI가 그려준 '미 연준 에클스 빌딩 앞에 각목이 쌓인 모습, 디지털아트'
"수시로 연방준비제도 본부 주변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내 집무실 주변에는 각목 무더기가 쌓이기도 한다."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미국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처치하기 위해 볼커 의장은 전무후무한 통화 긴축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금리는 20%대까지 치솟았다. 오죽하면 다른 나라 정상들로부터 "그리스도 탄생 이후 가장 높은 실질금리"라는 원망을 들었다고 한다.


고금리 탓에 부동산 경기가 죽을 쑤자, 화가 난 건설업자들이 미 연준 에클스 빌딩 앞에 각목을 쌓아 시위를 벌였다. 생명을 앗아가겠다는 협박도 부지기수여서, 볼커 의장은 권총을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82년이 돼서야 통화정책을 완화(피벗)하기 시작했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때까지 고금리가 이어진 것이다. 비판이 쏟아졌다. 경기침체 때문에 죽을 맛인데, 몇 달만이라도 피벗을 빨리 해줄 수 없었냐는 불만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우리가 긴축정책을 충분히 끌고 가지 않아 대중들의 근본 행태를 바꾸지 못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주저앉히지 않았더라면 더 큰 실책이 됐을 것이다."


말인즉슨, 정신개조가 될 정도로 고금리를 충분히 끌고 가야 한다는 말이렸다.

폴 볼커 「달러의 부활」 어바웃어북 / 직접촬영

그런데, 연준 의장들은 왜 이렇게 인플레이션에 경기를 일으킬까?


볼커 의장은 자신이 고강도 긴축 통화정책에 진심이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면 경제는 합리적인 물가안정 환경 속에서 더 효율적으로 보다 공정하게 더 잘 작동해, 더 나은 미래에 더 많은 저축을 하는 날이 올 것이란 단순한 확신이 있었다"


물가가 치솟으면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물가상승률을 연 2% 수준으로 맞추려고 한다.


여기서 궁금증. 왜 굳이 2%인가? 그보다 적거나 높으면 왜 안 되는 걸까?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가 상승률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고용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있다. 물가와 경제성장은 서로 얽혀있다. 예컨대 어떤 상품이 지금 100만원에 팔리는데, 이후로도 값이 동일하다고 예측되면 소비자들은 굳이 현재 소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한 달 뒤 가격이 오를 걸로 예측되면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은 구매를 서두른다. 늦게 사면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니까. 이렇듯 물가 상승은 소비를 현재로 앞당겨 경제를 성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과도한 물가 상승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지출이 늘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든다. 김밥 한 줄에 3000~4000원인 시대다. 그에 비해 우리 소득은 얼마나 올랐을까? 물가 상승은 특히 서민과 취약계층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긴다.


결국 소비를 적정하게 촉진하면서도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는 정도가 현재로선 연 2%라는 계산이다(최근엔 목표치를 3% 정도로 올려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으나 논외로 한다).


그럼 이번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일까? 2022년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연 9.1%, 우리나라는 6.30%까지 치솟았다. 각각 목표치의 4.5배, 3.15배다. 중앙은행들이 난리 난 이유가 있긴 있다. 2023년 9월 현재는 미국 3.70%, 한국은 3.40%으로 좀 진정되긴 했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국제유가가 아직 불안하다. 유가가 오르면 재화 생산 비용이 증가하면서 물가가 오른다. 그리고 미국의 고용시장도 아직 뜨겁다. 노동력이 필요한 기업은 많은데 노동자는 적으면, 기업은 일꾼을 모셔가기 위해 월급을 올리며 경쟁한다. 그런데 높은 임금 상승률은 인플레이션을 촉진한다. 심지어 임금은 한 번 오르면 내려가지도 않는다. 파월 의장의 표정이 매번 어두운 이유다.

Microsoft Bing AI가 그려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고금리는 언제까지 갈까?


"물가상승률이 2% 수준으로 수렴해 간다는 확신이 있기 전엔 금리 인하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


파월 의장이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든 모든 중앙은행 수장들이 주기도문처럼 외우는 말이다. 지금은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제약적인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 수장들은 이런 교훈을 과거로부터 얻었다. 흔히 아서 번즈 연준 의장(1970~1978 재임)을 인플레이션 통제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반면교사로 삼는다. 친구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통화정책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커 의장은 저서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970년 초부터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자 새 의장 아서 번즈가 이끄는 연준의 통화 정책이 완화됐다.""
"닉슨 대통령의 연임이 막 시작되던 때 물가 및 임금 통제를 일거에 해제하는 다소 급작스럽고 무모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미국인들 중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나중에 내가 번즈의 자리를 맡게 됐을 때 그 인플레이션은 나의 최대 도전과제가 됐다."


매번 매파(긴축 지향) 발언을 쏟아내는 파월 의장도 한때 아서 번즈 같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가가 올라오는데도 "일시적"이라고 치부하는 바람에 조기 해결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정신을 다잡고 초유의 4 연속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아서 번즈보다는 폴 볼커로 역사에 남고픈 거다.


중앙은행 수장들이 일부러 강한 어조를 선택하는 이유엔 대중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떨어트리기 위함도 있다. 향후 물가가 크게 오를 것 같다고 생각될 때 대중은 소비를 현재로 앞당기고, 이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를 막으려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거란 확신을 줘야 한다.


또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에 증시가 오르는 것도 문제다.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들의 자산이 불어나면서 소비가 늘고, 이는 물가 상방 요인으로 작용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결국 언젠가 금리는 떨어지겠지만, 그 시기를 섣불리 점치기는 어려운 이유다. 여기서 글 서두에 소개한 볼커 의장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해야겠다.


"우리가 긴축정책을 충분히 끌고 가지 않아 대중들의 근본 행태를 바꾸지 못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주저앉히지 않았더라면 더 큰 실책이 됐을 것이다"


결국 지금은 '존버'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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