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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Apr 25. 2023

몸무게처럼 출렁이는 환율


/픽사베이(pixabay)


"주식이고 부동산이고 가격이 쭉쭉 빠지네"

"모든 것이 다 빠지는데 내 뱃살만 안 빠지네"


고금리 장기화가 초래한 자산 가격의 급락을 한탄하는 대한민국의 두 중년의 웃기면서도 아픈 대화다. 지난해 가파른 금리 인상 이후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바닥 모르고 심연으로 떨어졌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사람의 몸무게는 보통 일정 범위 내에서 등락을 거듭한다. 내 경우엔 72kg에서 ±2kg 정도 오가는 편이다. 내 키와 나이에 아무리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도 50kg 대가 되긴 힘들 것이고, 90kg까지 찌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마 열심히 체중을 줄이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가나 부동산 가격을 몸무게에 비유하는 건 횡보장이 아닌 이상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환율에는 들어맞는 것 같다. 환율이란 두 통화 간 교환비율이다. 현시점 기준으로 우리는 미화 1달러로 1300원 초중반에서 원화를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원달러 환율은 언제는 1000원대 까지도 내려가고 1400원대로 치솟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외환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환율이 변하는 변동환율제를 따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몸무게는 음식을 많이 먹거나 운동을 덜 하면 늘고 반대로 하면 빠진다. 체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환율은 어떤 요인에 영향을 받아 이렇게 출렁이는 걸까? 얼핏 환율이 그 나라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에 따라 달라진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지 않은가? 이번 글을 통해 살펴보자.


■변동환율제 하에서 환율엔 다양한 변인이 있다

/픽사베이(pixabay)


1.각국의 물가 수준


화폐의 가치는 물가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과자 한 봉지 가격이 15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랐다면 원화의 구매력은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똑같은 물건을 사는 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 나라마다 물가상승속도는 같지 않다. 만약 미국의 물가 수준이 낮다면 달러의 구매력이 크다는 의미이므로 달러화 수요는 커질 것이다. 한편 한국의 물가 수준이 높다면 원화 수요는 감소한다. 미 달러화의 가치는 절상하고 원화의 가치는 하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상승한다.


[물가▲→통화 수요▽→통화 가치▽]  


2.생산성


한국과 미국 중 한국의 생산성이 더 빨리 향상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한국의 생산 비용이 줄면서 더 싼 가격에 재화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통화의 구매력이 올라가면서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다. 즉 원화가 절상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은 하락한다.


[생산성▲→재화 가격▽→통화 가치▲]


인천신항의 한 컨테이너 터미널 / 직접촬영


3.대외거래


국제수지가 흑자를 보이면 국내 달러 공급이 늘어나므로 환율이 하락한다. 흑자란 뜻은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 지출한 돈 보다 많다는 뜻이다. 즉 달러 공급이 많아지면서 달러의 가치는 절하된다. 


[국제수지 흑자→국내 외환 공급▲→외환 가치▽]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상황은 정반대다.


경상수지는 세 달 연속 적자 가능성이 커졌다. 무역수지는 정보통신(IT) 혹한기에 따른 '효자 품목' 반도체 수출 감소, 최대 교역국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재개) 효과 부진으로 13개월째 적자 행진이다. 서비스수지는 코로나19 이후 봇물 터진 내국인의 해외 관광으로 큰 적자가 나고 있다. 즉 해외에 나가서 달러를 펑펑 쓰고 있다는 말.


이렇게 국내 외화가 밖으로 빠져나가면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외화 가치가 오른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이유다. 한국은행이 34개국 통화 환율을 비교한 결과 지난 2월 원화 절하율은 7.4%로 전 세계 주요 34개 통화 중 1위, 즉 가장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원화가 가장 빌빌거리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 미 연준 홈페이지


4. 거시경제정책


중앙은행이 긴축 통화정책을 운용해 시중 통화량을 줄이면 화폐 가치가 올라 환율도 영향받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려 긴축 고삐를 죌 때마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달러 가치 절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 통화량▽→미 달러 가치▲→원달러 환율▲]


한미 기준금리 역전 현상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5.00%(상단)고 우리나라가 3.50%다. 현재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은 1.50% 포인트(p)다. 22년 만에 최대 폭이다. 


금리는 '돈의 가격표'다 같은 돈을 맡겼을 때 더 많은 이자를 쳐준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국제자본은 기준금리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릴 때마다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물론 그때마다 한국은행은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양하다며 대수롭지 않은 척하지만.


/픽사베이(pixabay)


5. 기대심리


대부분의 시장참가자가 환율 상승을 예상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너도나도 환율이 오르기 전에 외환을 매입하려고 할 것이다. 환율 상승 기대는 외환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실제 환율을 끌어올린다. 


이게 바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건가?


2. 주변국의 환율 변동


교역 상대국의 통화 가치가 낮아지면, 자국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거란 기대가 형성된다. 말이 어려운가? 내가 수출업자라 A라 가정하고 다시 생각해 보자.


'A는 B에게 물건을 수출해서 팔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B가 지닌 돈의 가치가 낮아져서 A의 물건을 사주는 데 부담이 커졌다. A의 물건이 안 팔리면(=수출 부진) 벌어들이는 외화가 감소할 것이다. 그러면 A에 대한 외화 공급이 줄면서 환율이 오른다. 그리고 A의 수출 경쟁력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생기면서 A 통화 매력도도 절하될 것이다.'


이 때문에 원화는 중국 위안화와 함께 오르내리는 동조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한-중 경제가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3. 각종 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이 발발하거나 미국과 중국 간 갈등 등 지정학적 위험이 부각되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미 달러화 가치가 오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미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야!'라는 생각으로 미국 현찰을 쥐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뤄진다.


4. 은행 외환 포지션 변동


각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매도하거나 매수할 때 외환시장 수급이 달라지면서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픽사베이(pixabay)


■환율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고 큰 폭으로 출렁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해외여행 경비로 1000달러를 마련한다고 생각해 보자.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일 때엔 13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환율이 1100원일 땐 110만원이면 충분하다. 20만원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해외 유학생들은 어떨까. 환율 변동 폭에 따라 1년 학비가 많게는 1000만원까지도 차이 난다. 부자라면 몰라도 1000만원은 서민에겐 너무 큰돈이다.


수출입에도 영향이 미친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똑같은 물건을 수입하는 데 그전보다 많은 원화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부담이 커진다. 이는 국내 수입품 가격을 오르게 만들고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 시장 안정화 조치


그렇다면 지금처럼 환율이 출렁이는 시국에서 한국은행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일단 '1달러 당 원화 얼마' 식으로 특정 환율을 정해놓고 미세조정을 하진 않는다. 말했듯이 우리는 고정환율제가 아니고, 환율은 시장원리에 따라 정해지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아무리 변동환율제라 하더라도 환율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서 큰 폭으로 출렁이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상기한 것처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원화를 대가로 달러를 사거나 팔면서 원달러 환율을 조정한다.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이라고 부른다.


통화스와프를 할 수도 있다. 이는 양국이 미리 약속한 환율에 따라 통화를 맞교환하는 외환거래다. 위기 상황에서 달러 공급을 원활히 하는 효과가 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가?


한국은행은 원화를 발권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래서 시장에 돈 가뭄이 심각하게 발생하면 한국은행이 '궁극적 대여자(lender of last resort 또는 최종 대부자)'로서 통화를 공급한다. 


하지만 외환이 모자라다면? 한은은 달러를 찍어낼 권한이 없다. 원화 발권은 한은만 할 수 있듯이 달러 발권 권한은 미 연준에게 있다. 그래서 외환에 대해선 궁극적 대부자 역할을 한은 대신 연준이 하도록 하는 것이 통화스와프다.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 외환 공급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면서 시장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다.


구두개입도 있다. 외환당국에서 "환율 쏠림 현상을 경계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내놓으면 '환율 관리에 들어가겠구나'는 시장의 기대가 생기면서 환율이 다소 진정된다.


24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기자실 방문 / 직접촬영


■ 지금 환율 연고점 뚫는다는데…한은은 어쩌고 있나?


24일 원달러 환율이 1334.8원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뚫었다. 


그래서 이날 기자들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게 물었다. 현재 환율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이 총재는 "환율을 유심히 보고 있다"면서도 "우리나라는 채권국"이라고 별 일 아니라는 듯 선을 그었다. 구두개입으로 비칠 수 있는 뉘앙스를 주지 않기 위해 단호하게 말한 것 같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한미 스와프 체결 계획을 물었고, 이에 대해 이 총재는 현재로서 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답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한국은행 유튜브 갈무리


위 표를 보자. 각국의 글로벌 금융안전망은 4가지로 분류된다. 제1선은 외환보유액이다. 외환 부족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외환보유액에서 벌충하게 된다. 통화스와프는 그다음이다. 이걸로도 해결이 안 되면 지역금융협정(한중일 + 아세안)에서 해결하고, 그것도 안 되면 국제통화기금 IMF의 원조를 받게 된다.


이제 이 총재의 말을 다시 읽어보자. 그의 자신감은 제1선 외환보유액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260억7000만달러 정도다. 통화 스와프까지 갈 것 없이 이것만으로 웬만한 국제수지 적자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 외환시장 튼튼한 것은 잘 알겠다. 그런데 우리는 외환위기 같은 극단적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활동하는데 달러가 너무 비싸졌다는 말을 한 건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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