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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Dec 29. 2022

안녕하세요. 손님은 아니고요…

"어서 오세요."


사상 최초로 자영업자 대출 규모가 1000조 원을 돌파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1000조 원. 숫자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대번에 감은 안 오지만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심각한 수준이란 건 알 수 있다. 설상가상 대출 부실 위험이 커지자 '서민 급전 창구'인 카드사들이 카드론 한도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위 주제로 리포트 두 편을 만들어야 했다. 전형적인 리포트다. 빈 테이블을 닦는 자영업자의 모습이 나오고 자영업자의 한숨 섞인 인터뷰가 이어진다. 그리고 자영업자 대출이 얼마나 올랐는지 통계가 컴퓨터그래픽(CG)으로 펼쳐진다. 머릿속에서 얼개가 착착 그려진다.


하지만 인터뷰 해줄 자영업자를 섭외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형편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전 국민 앞에서 방송으로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익명 인터뷰를 하자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주제는 맨땅에 헤딩, 식당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섭외를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거리로 나갔다. 코로나19로 내수가 침체되면서 많은 식당이 폐업했다. 상가 곳곳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영업하는 식당들도 분위기는 한산했다. 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영업자가 반긴다. 머쓱해진 나는 손님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기자 신분을 밝히고 목적을 말한다. 그때부터 자영업자의 눈빛이 변한다.


"다름 아니라 경기도 안 좋은데 대출이자까지 눈덩이로 불어나면서 자영업자들이 힘드시다고 해서요. 혹시 이 내용으로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말하면서도 민망하다. 결국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말 좀 해달라'는 부탁이다.


"힘들죠. 요새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네요."


나는 더 조르지 않고 고개를 조아리며 가게를 빠져나온다. 이런 상황이 수십 번쯤 반복된다. 어떤 사장님은 인터뷰를 거절하면서도 내가 안쓰러웠는지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주기도 했다. 나는 잠시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김이 나는 커피를 홀짝거렸다. 날이 매섭게 추웠다. 포기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한 허름한 고깃집에 들어갔다. 홀에 손님은 한 명뿐이었다. 인기척 나자 주방에서 나이든 남성 사장님이 웃는 얼굴로 걸어 나왔다. 기자라고 밝혔는데도 그의 웃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성격 좋은 분 같아 보였다. 왠지 인터뷰를 승낙해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대출 때문에 힘드시지 않느냐고.


그는 받은 대출이 없어서 금리가 어떤지 몰라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나는 속으로 '현금 부자구나' 싶었지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정반대였다.


그는 원래 잘 나가는 자영업자였다. 목 좋은 상가 세 개층이 모두 그의 식당이었다. 그런데 불의의 화재로 식당이 타버렸다. 그는 수억 원을 들여 가게를 수리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개월 뒤 코로나19가 창궐했다.


손님이 급감하면서 2층과 3층 식당 문을 닫아야 했다. 수입이 끊 임대료도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건물주는 그에게 퇴거를 통보했다. 사정이 좋아지면 갚겠다고 통사정해봐도 소용 없었다. 결국 법원에서 강제철거명령까지 나왔다. 그는 빈손으로 쫓겨다.


지금의 허름한 식당은 그의 딸이 얻어준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행여나 부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서다. 그는 은행 통장도 없고 카드도 사용하지 않는다. 재산이 전부 압류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금리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파산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주저스럽다.


"파산하려고 해도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들어간다더라고. 그 돈마저 없어서 파산 신고도 못하고 있어. 죽은 목숨이나 똑같지. 아무튼 그래서 대출 금리에 대해선 해줄 말이 없네."


그는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인생을 달관했거나 포기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꾸벅 절을 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나는 이날 자영업자 인터뷰 없이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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