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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Sep 30. 2023

이대 만두집에서 튀김만두를 팔지 않기로 한 이유

이화여대 상권 취재기

건물 전체가 텅 빈 신촌·이대 상권 / 직접촬영


연세대 정문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이화여대 정문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 촌기차역 아래 굴다리에 다다르자 전체가 텅텅 빈 건물이 나타났다. 대학 시절 가끔씩 들렀던 카페가 있던 자리다.


이날 이대를 둘러보기로 한 이유는 최근 신촌·이대 지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9.0%를 기록했다는 통계가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 평균 공실률 5.8% 보다 꽤 높은데, 역시 수치론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 두 눈으로 직접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일렀다.


이대 상권 초입에 들어서는데 사방 일대가 모두 공실이었다. 단골 스무디 가게가 있 건물도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방치돼 있었다. 하필 비가 오는 탓에 더 을씨년스러웠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더 심각했다. 아예 구역 전체가 초토화됐다. 가게 유리엔 '임대' 글자와 공인중개사 핸드폰 번호가 적힌 현수막만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이렇게 공실이 많은데 홍보가 무슨 의미일까 싶다.

철거를 앞둔 이대 상권 / 직접촬영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청소를 하던 사장님은 내가 손님인 줄 알았는지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기자임을 밝히자 이내 표정이 어두워지고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뭇사람들에게 기자란 경계해야 할 존재니까.


그러면서도 사장님은 차분히 이것저것 말씀해 주셨다. 이대 상권이 거대한 공실이 된 이유는 아무래도 코로나19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원인은 이대 상권의 특수성에 있다. 내가 학생일 때만 해도 이대는 쇼핑의 메카 중 한 곳이었다. 골목골목이 전부 로드숍이었다. 마음에 드는 보세옷이나 장신구가 나올 때까지 발품을 팔았던 기억이 난다. 화장품 가게도 즐비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이 보편화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매력을 상실했다. 그나마 이대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기 때문에 얼마간 살아남았지만, 팬데믹에 따른 여행금지가 결정타를 날렸다.


공실들 사이에 덩그러니 남은 한 옷가게에 들어가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그는 "보시는 대로예요. 있는 그대로 기사 쓰세요"라고 무표정으로 답했다. 문답무용이고,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는 거다.


게다가 최근엔 고물가, 고금리까지 자영업자들을 괴롭힌다.


한 만두가게에 들어갔다. 올해 예순 살이 되셨다는 사장님은 사람 좋은 표정으로 무엇이든 물어보라 하셨다. 어디든지 힘든 상황에서도 넉넉함을 잃지 않는 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라고 했다. 당시엔 재난지원금이 이것저것 나왔기에 배달 음식에 만큼은 돈을 잘 썼는데, 지금 들어오는 주문은 거진 최소 금액이라고 한다.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경기가 가라앉은 만큼 소비심리가 약해진 탓이다. '무지출 챌린지'의 시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만두에 자긍심이 있었다. 팔고 있는 만두 종류만 25가지, 고기를 쓰지 않은 비건 만두도 있었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무슬림 학생들을 위해 개발한 것이다. 그는 "한 손님이 만두를 처음 먹고는 맛있어하더니 얼마 뒤 무슬림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왔었다"며 회상했다.


반면 사라진 메뉴도 있다. 튀김만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지고 나서 식용유 가격이 어느샌가 4만원에서 7만원으로 뛰었다. 만두를 튀기는 비용이 급증했다. 팔아서 남는 건 없고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들 불만이 걱정이었다. 별 수 없이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취재용으로 쪄낸 만두를 값을 치르고 먹었다.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갈비만두가 흰색 포장용기에 먹기 좋게 담겼다. 감자로 만든 만두피는 매끄럽고 투명했다. 고기와 야채로 꽉꽉 찬 만두소가 훤히 비칠 정도다. 식감도 쫄깃하고 간장을 찍지 않아도 간간하니 맛이 좋았다.


하지만 평일 점심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손님이나 전화 주문은 한 건도 없었다. 가게를 찾은 사람이라곤 전기료 통지서를 전해주러 온 우체부뿐이었다. 앞으로 경제가 회복된다면, 사람을 헤쳐가야 할 정도로 북적이던 이대 상권의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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