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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Mar 24. 2023

주식 하락엔 "아악!" 집값 하락엔 "에이 뭐…"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


'오늘 사는 집이 제일 싸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양상이 뒤바뀌었다. 요즘엔 오늘 사는 집이 가장 비싸다. 아니, 이 말도 사실 틀렸다. 요즘엔 집을 안 산다. 사는 사람이 없으니 가격만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이미 삽을 떠버린 아파트들은 미분양을 걱정하는 시대다. 계획 단계에 있던 사업들은 여럿 엎어지고 있다. 전망이 불투명하니 시작하기 전에 손절하는 분위기다.


고금리 때문이다.


현금 부자라면 모르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은행 대출 없이 집을 사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유주택자들은 지금껏 만져보지도 못한 억 소리 나는 돈이 빚이 족쇄 달려았다. 하지만 채무자가 되기로 결정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아파트값이 무한정 우상향 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에 매달 따박따박 바치는 이자보다 집값 상승률이 더 가파를 거란 희망이다. 사실 광기에 가까웠지만.


그런데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긴축 통화정책으로 금리가 단기간에 가파르게 치솟았다. 금리는 달리 표현하면 남의 돈을 빌려 쓰는 대가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초저금리를 펼쳤다. 안 그래도 낮은 금리에 물가상승률을 빼면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였다. 즉 현금을 그냥 갖고 있으면 오히려 손해인 세상이었다. '이지머니(easy money)'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이지머니를 지렛대(레버리지) 삼아 부를 창출했다. 신용매매로 주식을 거래하고, 담보대출을 받아 십수억 원짜리 혹은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를 턱턱 샀다. 무일푼인 사람들도 신용대출을 통해 갭투자에 뛰어들었다. 갭투자는 매매가에서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금을 뺀 돈을 지불하고 집을 거래한 뒤, 이후 집값이 오르면 되팔아 차액을 챙기는, 집값이 가파르게 치솟는 시기에만 가능한 투자방식이다.


그렇다. 돌이켜보면 2021년까지 자본시장의 광기는 무서울 정도였다! 코스피는 사상 최초 3300포인트를 돌파하고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8000만 원이 넘었다. 부동산은 말하면 입만 아프다. '마용성'이니 '노도강'이니 집값 과열 지역을 줄여 부르는 신조어가 매일같이 새로 나왔다.

출처/픽사베이(pixabay)

주식에서 손실이 날 때와 집값이 떨어질 때의 차이


그 자산들은 지금 너 나 할 것 없이 곤두박질쳤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 사실 애초에 날 수 없는 자산이 자본시장의 광기에 힘입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주식이 떨어질 때와 집값이 떨어질 때 투자자들이 보이는 반응엔 좀 차이가 있다. 빚을 내 주식을 투자한 사람들은 주가가 가파르게 떨어지면 주식을 매도해 채무를 줄인다. 그 편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자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에이 언젠가 다시 오르겠지" "어차피 살 집인데 뭐"라고. 손해 규모 비교가 안 되는데도 말이다. 근데 또 얼핏 맞는 말 같다. 주택담보대출은 주식 신용매매처럼 단기 대출이 아니라 수십 년 만기 장기대출인 데다, 실물 자산이 있는 만큼 이 하락장 고비만 넘기면 언젠가 회복기가 올 수도 있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언제 회복되느냐이다. 상기했듯 부동산 시장은 빙하기를 겪고 있다. 가격 하락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이런 와중에도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지속되고 있다. 대출에 부과되는 세금과 이자는 쉼 없이 계속되고, 변동금리인 경우엔 시간이 지날수록 몸집이 불어난다.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만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금융불안까지 엄습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부동산 시장 침체와 가계대출이 우리 경제의 '뇌관'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집을 담보로 실행된 대출에서 부실이 일어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무너지면서 금융 연쇄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가파른 집값 하락세가 무섭다. 물론 그전까지 집값은 비정상적으로 비쌌던 게 맞다. 하지만 어쩌나, 상황이 이렇게 흘러와버렸는걸. 집값떨어질 땐 떨어지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하니까. '카드로 쌓아 올린 집(house of card)'은 천천히 해체하지 않으면 폭삭 주저앉고 만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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