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준영 Sep 15. 2023

50년 주담대는 왜 사라졌나

9월 13일부터 진정한 의미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사라졌다. 금융위원회가 50년 만기 주담대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만기'를 40년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그럼 만기가 50년이라는 건가 40년이란 건가?


돈은 원래대로 50년에 걸쳐서 갚되, 내가 번 돈에서 매년 얼마씩을 갚아야 하는지(DSR)를 계산할 땐 만기를 40년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현행 DSR은 40%다. 즉 1년에 갚아야 할 원리금이 내 연 소득의 40%를 넘어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만기가 늘어나면 왜 DSR을 우회한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30년에 걸쳐 갚아야 할 을 50년 동안 갚으니, 연간 원리금은 줄어다. 즉 DSR 40%에 안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여유분 만큼 대출한도가 커질 수 있다. 50년 주담대 때문에 가계부채가 늘어난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그런데 가계부채는 왜 지금 문제인가?


현재 가계부채는 11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달에만 6조원 넘게 급증했다. 가계가 빚에 허덕이면 당연히 소비가 줄어들며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 대출 부실이 확산하며 금융위기가 올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으로 50년 주담대를 꼽았다. 50년 주담대의 취지는 좋다. 고금리로 부동산 시장이 추락하는 걸 막기 위해, 어느 정도 대출을 완화해 준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들뜨진 않게 하면서 시장이 아예 얼어붙지 않을 정도의 절묘한 유동성을 공급해 주자!


그런데 힘조절이 안 됐다.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올해 들어 8조3000억원 증가했는데, 7~8월에만 6조7000억원 급증했다. 그리고 대출자 연령별 비중을 계산해 보니 40∼50대가 57.1%로 가장 높았다. 60대 이상도 12.9%나 됐다. 20~30대는 29.9%에 불과했다. 50대는 50년 뒤 100대(표현도 어색하네)가 되는데, 과연 빚을 갚을 능력이 있을까?


또 유주택자 비율이 52.0%로 절반을 넘었다.


예상된 결과였다. 집 사는 사람들에게 '30년 주담대와 50년 주담대 중 뭘 선택할래' 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50년짜리를 선택할 것이다. 다달이 갚아야 할 원리금은 작아지고 대신 대출한도는 커진다. 즉 더 센 레버리지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누가 대출을 만기 꽉 채워서 갚는가? 지금 저점일 때 사서 몇년 뒤 비싸지고 팔면 되는데.


그럼 대출 한도는 DSR 만기 변경 전후로 얼마나 줄어들까.


연 소득 6000만원인 사람이 연 4.4%로 돈을 빌릴 경우를 가정해 보자. DSR 만기를 50년으로 하면 4억8400만원, 40년으로 하면 4억51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한도가 수천만원 감소한다.


원한다면 DSR 만기를 50년으로 적용받을 수 있다. 다만 기대여명이나 은퇴시점, 연금이나 자산소득 등을 따져 빚을 갚을 능력을 명백히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예외를 적용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은행들이 50년 주담대 팔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DSR 50년 적용 판단을 은행 자율 맡겼는데, 정해진 기준이 없다 보니 은행들은 '이걸 당장 어떻게 하느냐'며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뒷일도 두렵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진짜로 50년 내줬다가 나중에 또 부채 증가 주범이라고 찍히는 것 아니냐"며 "그럴 바에 50년짜리 대출을 안 파는 게 낫다"라고 하더라. 결국 은행들 50년 적용을 보수적으로 할 분위기다.


어쨌거나, 이번 대책이 가계대출 규모를 줄일 수 있을까?


일단 DSR 만기가 50년에서 40년으로 짧아지면서 대출한도가 수천만원 줄어드니, 그만큼은 효과가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집단대출·다주택자·생활안정자금 등 가계부채 확대위험이 높은 부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DSR 산정 시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스트레스 DSR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쉽게 말하면 대출 한도를 도출할 땐, 실제 대출금리보다 더 높은 금리를 넣고 계산하는 것이다. 갚아야 할 원리금 규모가 커지다 보니 DSR 40% 기준에 따라 대출한도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건 착시효과일 수 있다. 만기를 50년으로 하다가 40년으로 줄이니 가계부채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주담대 일반적인 만기는 30년이었다. 그걸 40년으로 연장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부채를 늘리는 꼴이다. 미국에선 통상 만기가 30년을 넘어가면 위험 대출로 분류한다. 20대여도 40년 뒤엔 60대가 된다.


무엇보다, 가계부채의 본질은 미친 집값이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이 26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집이 비싸다는 뜻이다. 가계대출을 줄이고 싶다? 그러면 대출을 덜 받아도 되도록 집값이 낮아져야 한다.


대출 규제를 조이는 것은 코가 막히고 기침 나고 열이 난다고 감기약을 먹는 것과 같다. 감기약은 감기 자체를 치료해주지 못한다. 증상을 완화해 주는 대증요법일 뿐이다. 빨리 건강해지고 싶다면 미친 집값이라는 바이러스를 잡아야 한다.

이전 07화 저금리와 무량판(순살아파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