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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Oct 14. 2023

이혼도 불사하게 한 중국 부동산 사랑에 종언을 고하다

전당포나 돈놀이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망한다. 오래도록 믿을 수 있는 것은 땅과 집뿐이다.


청나라의 명재상 장영이 저서 '항산쇄언(恒産瑣言)'에서 한 말이다. 자잘한 돈놀음보다는 역시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가르침이다. 부동산에 대한 인류의 집착은 꽤나 오래됐고, 중국의 후손들은 선현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삼았나 보다.


1970년대 중국은 덩 사오핑의 개혁 이후 국가 주도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분야는 주로 사회간접자본(SOC)과 건설 산업이었다.


중국은 경기를 부흥시키기 위해 예금 금리를 중국 경제성장률보다, 심지어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책정했다. 소비하거나 투자하지 않고 묵혀두는 돈은 가치가 점점 줄어들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국영기업에겐 시장 금리보다 낮은 이자로 대출해 줬다. 저축한 서민들은 눈 뜨고 돈을 잃었고, 투자자들만 배를 불렸다.


미국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M. 폴슨 주니어가 2000년대 초 골드만삭스에 있던 당시 중국은행들에게 했던 평가가 정확하다.


중국은행들이 여전히 정부의 지시에 따라 대출을 진행하는 이른바 정책 금융이라는 유해한 과거 유산에 시달리고 있었고, 특히나 그 지원 대상이 적자에 허덕이고 성장 가능성도 없는 국유기업들인 경우가 많았다.
(헨리 M. 폴슨 주니어 「중국과 협상하기」 238쪽)
Microsoft Bing AI가 그려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모습, 디지털 아트'

그러던 중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원인은 부실한 주택담보대출과 이를 묶어 만든 파생상품의 거품이 모래성 무너지듯 꺼졌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줄도산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미국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헬리콥터에 올라타 돈을 뿌리는 양적완화(QE)로 대응했다.


중국도 그해 11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2009년 한 해 동안 빚 규모는 GDP의 30% 이상 올라갔다.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저렴한 신용이 공급되면서 중국의 불균형은 더욱 커졌다. 블룸버그의 톰 올리크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적자가 난 대차대조표를 들고 미분양 부동산으로 가득한 유령도시를 건설했다"라고 했다.


그 결과 중국은 가치 기준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부동산 시장이 됐다.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2011년 계산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0년간 총면적 160억 제곱미터에 달하는 주거용 주택을 지었는데, 이는 이탈리아 로마를 14일마다 한 번씩 처음부터 다시 짓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 발췌

하지만 새 주택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집주인 대부분이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유자들의 관리비를 절약해 주기 위해 아파트는 전기 배선이나 배관 등 설비 없이 콘크리트가 노출된 형태로 팔렸다고 한다. 당시 도시 주택 물량의 5분의 1이 비어 있었다는데, 여기에 캐나다 전체 인구가 들어가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유령도시다.


2016년쯤 되자 중국 정부에 눈에 부동산 문제가 하나둘 띄기 시작했다. 당국은 가구당 하나의 부동산만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가했다. 그러자 이혼율이 급증했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가진 집을 팔기보다는 배우자와 헤어지면서 집을 각각 한 채씩 나눠갖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Microsoft Bing AI가 그려준 '이혼하면서 아파트를 각자 나눠 갖는 부부. 디지털 아트'

중국은 왜 부동산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일까? '부동산 불패론'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 '중국 부동산시장 전망 및 리스크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주택수요는 2017년 정점에 도달했다. 자가주택보유율은 90%에 달한다. 10명 중 9명이 내 집마련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60%대인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다주택자 비율도 20% 이상으로 주요 선진국들을 크게 웃돌고 있다. 주택수요가 더 이상 늘기 힘든 조건이다. 반면 앞으로는 고령화, 정체된 도시화율 등으로 연간 3%씩 감소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미 부동산 시장은 중국 경제의 뇌관이 되어 있었다. 금융위기의 요건 중 두 가지가 바로 부채와 부동산 거품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중국의 GDP 대비 총부채비율은 사상 최고치인 279.7%를 기록했다.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로고

중국 GDP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빙하기를 맞다 보니, 일감이 없어진 부동산 관련 업체들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은 2023년 10월 10일 "부채를 갚지 못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지방정부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는 자금 조달 특수법인인 '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s)'를 통해 공식 기록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금융'을 통해 부동산 시장에 돈을 대 온 터였다.


돈이 안 돌자 국가 경제 활력이 떨어졌다. 중국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오죽하면 7월 중국 물가는 0.3% 떨어졌다. 8월 물가는 0.1% 상승했지만 9월 0.0%로 다시 내려섰다. 다른 나라들은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디플레이션이라니. 지난 6월 중국 청년실업률은 21.3%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이래 최고치였다.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7월엔 실업률을 아예 발표하지 않았다.

2023년 9월 기준 주요 국가 수출현황/관세청 보도자료

그런데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나와 무슨 상관인가? 국내 금융기관이 중국 부동산에 직접 투자한 규모도 미미하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것은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기 때문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 → 중국 내수 부진 → 한국의 대중 수출 감소 → 기업 실적 악화, 원화약세(환율상승), 외국인 자본 철수 등 → 한국 경제성장률 저하
/출처 한국은행 2023년 9월 금융안정보고서

대중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따라서 중국 경제가 안 좋아지면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 수출이 줄게 된다. 일례로 중국인들의 스마트폰 소비가 줄자 국내 반도체 수출 기업들이 맥을 못 추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대중 수출은 올해 9월까지 16개월째 감소했다. 10월 들어 대중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 부족하다. 전체 수출은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수출 반등에 실패하면 원화 가치도 낮아진다. 통화 가치는 그 국가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따라 변동한다. 수출은 펀더멘털을 가늠하는 중요한 데이터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더더욱. 과거에 비해 요즘 원달러 환율이 유난히 오른 이유다.

중국 경제성장률 / 출처: 국제통화기금(IMF)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수출이 줄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한국에 돈을 쓰고 싶을 리 없다. 외국인 자본이 떠나가면 주식시장도 약세를 면할 수 없다.


문제는, 중국이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향후 경제성장률은 과거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5.2%로 예측했다. 다만 그 이후부터 계속 낮아지면서 4%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분절화됐다. 쉽게 말하면, 미국이 중국을 따돌리면서 예전처럼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다. 중국도 이제는 신산업이든 새로운 판로든 개척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것이 단기간에 가능할 리 없다. 그래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예전 같을 수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큰일이란 얘기다. 근본적으로 대중 수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그러려면 동남아든 남미든 새로운 수출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


*일부 내용은 에드워드 챈슬러 「금리의 역습」 책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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