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준영 May 12. 2023

주식과 욕망(feat. SG증권발 폭락사태)

무한정 찍어낸 화폐로 끌어올린 미시시피 주가


루이 14세가 서거한 1715년 즈음의 프랑스 재정은 그간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파탄 직전이었다. 이때 '존 로'라는 인물이 섭정공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에게 접근한다.


로로 말할 것 같으면 수학적 머리가 뛰어났으나 그 능력을 도박에 낭비했고, 치정 문제로 살인을 저지른 뒤 수감됐다가 탈옥해 프랑스로 도망쳐온 인물이다.


로는 섭정공에게 "영국 중앙은행을 모델로 프랑스에도 국립은행을 설립하자"고 제안하며 "프랑스를 유럽 최고의 국가로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그는 지폐를 찍어내 금리를 낮춤으로써 부채 부담을 줄이고,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섭정공은 설득됐다. 1715년 섭정위원회는 로에게 개인은행 허가를 내줬고, 1716년 5월 로는 제너럴 뱅크를 설립했다. 로가 당초 바랐던 중앙은행 아니었지만, 제너럴 뱅크에서 발행되는 지폐가 법정화폐로 지정됐다.


1년 뒤 로는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했다.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지역 독점 거래권과 토지 권리를 가진 회사다.


1718년 12월 제너럴 뱅크는 국유화되어 왕립은행으로 이름을 바꿨고, 1719년 로는 미시시피 회사가 프랑스의 국가 부채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채권자들에게 채권을 미시시피 회사 주식과 교환하게 했다.


미시시피 회사 주식은 처음 주당 500 리브르에 발행됐다. 그런데 한동안 주가가 오르지 않자 로는 통화량을 풀었다. 왕립은행은 종이가 모자라 못 찍어낼 정도로 많은 양의 화폐를 발행했다.


그러자 미시시피 주가가 급상승했다. 1719년 한 해 동안에만 주당 1만 리브르로 약 20배 상승했다. 채권을 주식으로 바꿨던 사람들은 40배 이상 돈을 벌었다. 이 행운아들을 묘사하기 위해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로의 왕립은행과 미시시피 회사의 인기가 폭발했고, 로에게 아첨하려는 사람들이 그의 집 굴뚝을 통해 서재로 떨어졌다.


프랑스에 투기 열풍이 불었다. 주인을 대신해 거래하러 온 하인들마저 자기 계좌를 만들어 주식을 샀다. 부자가 된 하인들은 자신들의 의복에 벨벳 소매, 실크 셔츠, 커다란 은 단추, 황금색 천을 달며 부를 주체하지 못했다.


주가가 내려가면 회사가 주식을 되사들이면서 가격을 방어했다. 1720년 초부터 로는 아예 왕립은행과 미시시피 회사를 합병시켜 스스로 돈을 찍어내고 회사 주식을 매입토록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시중에 통화량이 넘치자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물가지수가 두 배 가량 올랐다. 1719년 말부터 광란의 인플레이션 시작됐다. 


재무장관이었던 로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무릅쓰고 돈을 찍어낼 것인가, 아니면 물가를 잡기 위해 초과 발행된 지폐를 회수할 것인가?


결국 로는 디플레이션을 선택했다. 거품이 꺼지자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은 90% 폭락해 1718년에 거래되던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자 폭동이 일어났다. 왕립은행이 습격당했고 폭도들은 로의 마차를 산산조각 냈다. 결국 로는 재무장관에서 해임됐다. 


이것이 그 유명한 1720년 프랑스의 '미시시피 거품' 사건이다.


세기의 천재도 욕망 앞에선 한낱 개미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이웃나라 영국에서도 비슷한 거품 사건이 터졌다. 일단 1720년 봄 아이작 뉴턴이 남긴 말부터 들어보자.


"나는 천체 운동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 뉴턴이 여기서 왜 갑자기 등장하는지 의문인가? 뉴턴은 영국 화폐 발행 기관인 왕립조폐국 장관을 역임할 정도로 금융의 대가이기도 했다.


뉴턴도 여느 인간처럼 투자로 자산을 불리고 싶어 했고, 그의 선택은 남해회사 주식이었다. 남해회사는 영국 국채를 4분의 1로 싼값에 사들였는데, 이를 통해 300%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남해회사 주식은 인기였다. 뉴턴은 주가가 두 배 이상 올랐을 때 주식을 팔아 '100% 수익률'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이후 더 많은 주식을 사들였다.


그런데 남해회사는 폰지사기 집단이었다. 실제로 버는 돈 없이 투자자들 돈으로 돌려 막는 금융사기 조직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거품은 결국 꺼졌고, 뉴턴은 지금 가치로 4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잃었다. 이 사건은 후대에 '남해회사 거품 사건'으로 일컬어진다. 


최고의 지성 뉴턴도 자본시장 광기에 눈먼 한 명의 개미 투자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욕망에 눈이 멀어 보지 못한 불법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4월 24일 주식시장에서 8개 종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엔 하한가 제도가 있어서 하루에 30% 넘게 못 빠지는데, 일부 종목은 하한가가 며칠째 이어졌다. 


그 배경엔 주가조작 의심 세력이 있었다. 이들은 발행 물량이 적고, 증여·상속 이슈가 있어 저평가된(오너가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종목을 노렸다. 


일당은 투자자들로부터 신분증과 개인정보, 별도 개통한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8개 종목을 꾸준히 매입하는 '통정매매' 수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레버리지, 즉 '빚투'를 했다. 차액결제거래(CFD)라는 수단이다. CFD는 실제 주식을 소유하지 않고도 주가 변동에 따른 차액만 현금으로 정산하는 투자 방식이다.


예컨대 10만원짜리 주식에 투자하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현금 10만원이 있어야 하지만, CFD 방식을 이용하면 4만원(증거금률이 40%인 경우)만 내 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6만원은 증권사에 빌려 투자할 수 있다.


즉 CFD를 이용하면 같은 시드머니로도 2.5배 많이 투자(레버리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어떤 종목은 3년 새 주가가 1700%나 치솟기도 했다. 일당과 투자자들은 아마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당은 5억원 짜리 롤스로이스를 타고 여기저기 부동산을 사들이고 심지어 회사도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이번 사건을 직접 취재해 본 결과 투자자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이 판을 주도해서 계획한 H투자자문업체 L 대표가 직간접적으로 섭외한 큰손들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인물들로는 L 전 A 그룹 회장과 J 전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본인들이 직접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돈 많은 인사들을 적극 섭외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그룹은 중간책의 꾐에 넘어온 일반 투자자들이다. 중간책의 일부는 동네 중소형 병원의 병원장들로 밝혀졌다. 이들은 자신의 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


큰손이든 작은손이든 이들을 불법 투자로 이끈 동인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다. 다들 처음엔 방법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지만, 주변에서 실제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을 보고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도, 어엿한 그룹을 일궈낸 기업 회장도, 평생 공직에 몸담아온 이도, 평범한 사람도 안분지족의 삶을 살긴 쉽지 않은가 보다. 


*이 글은 애드워드 챈슬러의 「금리의 역습」을 참고해 썼습니다.

이전 10화 한은 총재의 경고 "빚내서 집 사지 마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