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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Mar 14. 2023

고금리인데 왜 은행이 위기라고?

화이트데이를 블랙튜스데이로 만든 SVB, 뭣이 중헌지 알아보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가 만만찮다는 뉴스가 도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체감은 된다. 왜? 일단 내 주식이 다 급락했으니까. 2023년의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가 아닌 검은화요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이날 코스피는 2.56%, 코스닥 지수는 3.91%나 추락하면서 둘 다 올해 들어 가장 크게 떨어졌다. 자산이 눈 녹듯 사라지는 걸 보자니 부아가 치밀지만, 공부해야 다음 위기에 대비할 수 있다. 비싼 수업료를 냈으니 최소한 이슈의 핵심을 이해해 보자.

2023년 3월 14일 국내 증시 마감 상황 / 한국거래소에서 직접 촬영

고금리면 은행은 땅 짚고 이자장사 한다는데 왜 무너지지?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은행들이 '이자장사'로 떼돈 벌었다는 뉴스를 읽어본 적 있을 것이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은행의 가계대출이나 기업대출 이자도 상승한다. 빌린 돈 원금은 똑같은데 돈을 빌린 대가인 이자는 급격히 불어난다. 은행은 딱히 노력하지 않았지만 더 큰 이자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은행의 고객이 돈을 제때 값을 수 있는 상황을 전제한다.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면? 대출의 부실은 은행의 손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고금리 시기엔 대출 부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고금리에 허덕이는 차주들이 망해서 빌려준 돈을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 → 이자 못 갚는 차주 발생(대출 부실화) → 은행 손실


SVB 은행의 주 고객은 스타트업…금리가 오르면 먼저 타격 입는 기업들


SVB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스타트업이 주요 고객이다. 흔히 스타트업을 상상의 동물 유니콘에 비유하는데, 여기엔 여러 의미가 있다. 기존 산업에 비해 혁신성이 두드러지지만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나 수익성을 담보하긴 어렵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사업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선 보다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바로 대출 금리다. 신용이 낮을수록 대출 금리는 올라간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니까.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가 침체되자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또 금리를 내렸다. 스타트업들은 초저금리에 힘입어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이른바 '이지머니(easy money)'다. 막대한 유동성이 풀렸다. 하지만 결국 욕조가 넘치고 말았다. 유동성이 폭발하면서 지출이 늘고 여기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지면서 글로벌 공급망까지 막혀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이때 '인플레이션 파이터'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등장해 '파티의 끝'을 고했다(물론 너무 머뭇거렸다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돈의 가치를 올려 재화에 대한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물가를 낮추려는 것이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마구잡이로 올려 시중의 유동성을 회수했다. 금리가 오르자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시장에 투자됐던 돈이 은행 예·적금으로 몰려갔다.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기업들은 이지머니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 경기침체 우려에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자본은 모습을 감췄다. 현금 흐름이 좋지 못한 스타트업으로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은행에 예치해 놓은 돈을 꺼내기 시작했다. SVB 위기의 시작이다!


금리가 오르면 장기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채권을 보유한 은행이 큰 손실을 본 이유


예금 인출이 단기간에 몰리자 SVB는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은행이라고 해서 현금이 무한대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 그래서 SVB는 자산을 팔아 현금화하기로 했다. 그런데 자산의 55%가 미국 장기 국채였다. 이것이 SVB의 파산을 불러온 핵심이다.


예를 들어 10년 만기, 연 1%짜리 채권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예금 금리가 3%로 뛰었다. 이 상황에서 내 1%짜리 채권이 팔릴 수 있을까? 은행에만 넣어도 2% 포인트만큼 더 큰 이자를 받을 수 있는데? 그래서 금리 상승기에는 채권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번엔 10년 만기, 연 4%짜리 채권을 갖고 있다고 치자. 인플레이션이 끝나면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은행 예금은 다시 연 1%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내 채권을 갖고 있으면 10년간 연 4%만큼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시장에서 인기 만점이지 않을까? 금리 하락기에 채권 가격이 오르는 이유다.


SVB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채권을 팔자니 시기가 안 좋았다. 가파르게 치솟은 금리 때문에 채권을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고, 결국 SVB는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부실 위기에 처했다.


다른 은행도 파산 가능성 있을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연준, 대형은행, 월가 큰손 등이 나서서 SVB 살리기에 나섰지만 그렇다고 이 사태가 끝나는 건 아니다. SVB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사 시가총액은 수백조원 규모로 증발했다. 투자자들이 은행 주식을 내다 팔고 있는 것이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도 위기다.


다른 은행에서도 얼마든지 부실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SVB의 자산 중 채권 비중이 특히 크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은행들은 미 국채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금리 상승기가 끝나지 않는 한 채권 가격으로 인한 은행의 건전성 우려가 불식되긴 어려운 이유다.


오히려 고금리에 따른 스트레스는 누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가계나 기업들의 대출이 부실화하면서 더 큰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안전한가?…부동산 시장이 가장 큰 약점!


일단 우리 금융당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엔 아직까지 우려할 만한 징조는 없다. 자산·부채 구조가 실리콘밸리 은행과 상이하고 유동성이 양호하여 일시적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기초체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아직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 불확실성은 언제든 커질 수 있다. 향후 기준금리가 추가로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으로 꼽힌다. 부동산 PF란 금융회사가 부동산 개발사업이 미래에 가져올 수익에 베팅해 투자하는 걸 말한다. 재작년까진 금리가 낮았다 보니 증권사, 보험사, 저축은행 같은 비은행권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미분양이 넘쳐나면서 부동산 PF 수익성이 악화됐다. 미분양이 증가하면 건설사의 건축비 충당이 어려워지고, PF 이자도 못 낼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건설사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손절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현재 비은행권 부동산 PF 위험 노출액은 약 200조원.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1년 새 2배 올랐다. 부동산 PF 사업장에서 위기가 터지면 불안해진 저축은행 고객들의 예금 대량 인출, '뱅크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 대책을 내놓고 금융당국이 부실 우려 사업장을 점검하는 이유는 이 약한 고리가 끊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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