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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Mar 16. 2023

은행 붕괴는 반복된다

feat. 실리콘밸리은행과 스마트폰 뱅크런

실리콘밸리은행 기시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근본적인 원인은 급격한 금리 상승과 SVB의 아쉬운 투자 방식에 있었다.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경기침체로 사업성이 떨어져 돈줄이 마른 스타트업 고객들이 은행 예금을 찾기 시작했고, SVB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채권을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SVB 자산의 55%가 장기채권이었다). 그런데 손실이 너무 컸다. 그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채권 가격이 크게 떨어졌던 것이다(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대로 간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불안해진 고객들의 예금 인출 요청이 몰렸다. '뱅크런(대량 인출)'이다. 9일(현지시간) 하루에만 55조원 이상의 예금이 빠졌다. 미국 보험 스타트업 '커버리지 캣'의 설립자 맥스 조는 9일(현지시간) 한 창업자 행사를 가기 위해 셔틀버스에 탔더니 동료 창업자들이 스마트폰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순식간에 은행 부채가 자산 규모를 넘어서면서 부실이 발생했다.


미국 16위 은행이 몰락하는 데엔 불과 36시간이 걸렸다. 이런 초고속 파산 배경엔 '디지털 금융'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마트폰 뱅크런'이라 명명했다. 뱅크런이란 단어는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은행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본떠 만들어다. 디지털 금융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예금 인출에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에, 은행은 그 사이 자산을 매각하는 등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 결국 파산하더라도 수일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나 24시간 스마트폰으로 터치 한 번만 하면 돈을 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파산도 초고속으로 이뤄진다. 가히 디지털 첨단의 역설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비로소 최근에서야 발생한 일일까?


경제학자 찰스 P. 킨들버거는 그의 저서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급격한 금리 상승이 금융중개기능을 저하시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금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기존 은행과 저축기관을 이탈하는 한편, 이들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장기 유가증권의(주식, 채권 등) 가격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 혁신도 시스템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과정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놀라운 것은 이 책의 초판이 1978년에 쓰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위기는 비슷한 과정으로 반복되는 게 아닐까.


스마트폰 뱅크런, 남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은 디지털 금융 강국이다. 한국은행의 '2022년 중 국내은행 인터넷뱅킹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뱅킹을 통한 입출금·자금이체 서비스 이용비중은 77.7%로 압도적이다. 그밖에 창구 5.5%, CD/ATM 14.2%, 텔레뱅킹 2.6%로 집계됐다.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하루 평균 자금이체 규모는 75조원이 넘는다.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자산은 평균 480조원 정도고 인터넷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의 평균 자산 규모는 30조원 수준이다. 하루에만 인터넷뱅킹으로 시중은행 자산의 6분의 1, 인터넷은행 자산의 두 배가 넘는 돈이 오간다니!


국내 금융사는 유가증권 자산 비중이 낮고 현금 흐름도 양호하다지만,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에서 모든 금융사 자금을 터치 한 번으로 옮길 수 있는 만큼 요즘처럼 금리가 시시각각 변하는 시기엔 대량 인출 사태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


'궁극적 대여자' 각 재는 정부…'도덕적 해이'는 논란


그래서 금융당국은 국내 뱅크런 발생 시 예금 전액 보호 조치가 가능한지 비상계획 점검에 나섰다. 패닉 확산을 막기 위해 '궁극적 대여자'로 등판할 수 있는지 각을 재보겠다는 뜻이다. 앞서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예금자 보호한도(계좌당 25만달러)를 넘는 예금에 대해서도 전액 지급 보증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기엔 '도덕적 해이' 논란이 뒤따른다. 붕괴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관대한 구제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면, 시장 참여자들의 조심성이 줄어들면서 결과적으로 붕괴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킨들버거는 경고한다.


그래서 킨들버거는 궁극적 대여자 등판 여부를 불확실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필요한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선 구제는 필요하지만, 지원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야 투기자나 은행 등이 신중함을 잃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금융당국도 비상대책을 준비하는 건 좋지만, 신중하게 물밑에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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