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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Oct 03. 2023

가상자산, 이카루스의 날개

초고금리 시대 가상자산의 현재와 미래

우리는 왜 가상자산에 열광했나


그간 가상자산거래소 애플리케이션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약세장이 지속되면서 돈이 좀 물려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상자산에 반신반의했기에 목돈을 투자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손해 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 돈으로 그간 눈독 들인 신형 이어폰과 멋진 옥스퍼드 셔츠를 사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은 든다. 사람은 돈을 잃으면 '차라리 펑펑 써버릴 걸' 후회하는 습성이 있다. 막상 돈이 있을 땐 자린고비가 되면서.


2021년 상반기쯤 한 대학 선배와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어색함을 깨기 위해 시시한 인사치레가 오갔다. 그러던 중 그가 "투자 좀 하니?"라고 물었고, 나는 월급통장에 돈을 쌓아두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악의적인 자산관리사에게 속아 망하기 직전 동양그룹의 회사채를 산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와 공모전 상금으로 모은 돈을 다 날린 나는 피눈물을 쏟았고, 이후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엔 손도 대지 않았다.


"형은 투자 좀 하세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생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짐짓 멋쩍은 표정을 지은 뒤 입을 열었다.


코인으로 6억원 쯤 벌었지. 새 아파트도 샀어

입이 떡 벌어졌다. 아마 그는 내 근황이 궁금하기보단 자신의 성공담을 뽐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Microsoft Bing AI가 그려준 '반 고흐 풍의 돈다발에 짓눌리는 직장인'

그런데 당시 이런 투자 성공담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업계 모 선배도 사둔 코인이 가격이 치솟아 7억 원 넘게 재미를 봤다고 했다. 수백, 수천만 원 번 경우는 더 흔했다.


주식이든 코인이든 부동산이든 뭐든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겼다. 주식창은 날마다 붉은색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고, 비트코인 가격은 곧 1억 원까지 치솟을 거란 전망이 가득했다. 주변에선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가만히 있던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서점에는 '주식 무한매수법'이니 '얼마 만에 몇억을 모으는 방법'이니 마치 책 한 권으로 단기간에 부자가 될 수 있단 환상을 심어주는 투자서들로 가득했다. 그중에 유명해 보이는 책 몇 권을 사서 밑줄을 쳐가며 공부했다.


하지만 머리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월 스트리트 예측도 틀리는 마당에 한낱 개인이 얼마나 분석적인 투자를 할 수 있겠나. 결국 감으로 주식 몇 종목을 바구니에 담았다. 초반 수익률은 나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만 원씩 잔고가 불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내내 주식창만 들여다보면 하루 밥값, 잘하면 술값까지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리 번다 한들 서울 신축 아파트를 살 수는 없어 보였다.

2021년 하반기 개당 8000만원대까지 치솟은 비트코인 가격은 2023년 10월 현재 3700만원 안팎에서 횡보 중이다. / 업비트 화면 갈무리

비트코인, 한때 1억원 넘봤지만…3000만원대 '추락'


결국 코인 투자도 어느정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코인은 변동폭이 컸다. 주식보다 훨씬 적은 종잣돈으로도 하루에 치킨값의 몇 배를 벌 수 있었다. 당시는 7000만 원대였던 비트코인 가격이 5000만 원 대까지 내려왔던 시기다. 연말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1억 원을 뚫는다는 장밋빛 전망이 실현된다면, 불과 몇 개월 만에 두 배 이상을 먹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피땀 흘려 번 현금을 야금야금 가상자산으로 바꿔갔다.


그런데 가상자산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2021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올린 영향이 시장에 반영되기 시작한 거다. 비트코인 가격은 4000만 원 대에서 횡보했다. 겨우겨우 계좌가 양전하자 갖고 있던 코인을 바로 팔아버렸다. 그리곤 "두 번 다신 코인 안 해"라고 분연히 외치며 거래소 앱도 지워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잘 잊고 살았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비트코인 가격이 더 하락했단 뉴스를 본 순간부터 '저점 매수'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었다. 나는 코인에 다시 손을 대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저점 매수는 오판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 포인트 인상)을 내딛을 때마다 가상자산은 추락했다. 사상 초유'4 연속 자이언트 스텝'에 비트코인 가격은 현재 2000만 원 대까지 떨어졌고, 2023년 10월 현재 겨우 3700만원 안팎까지 올라왔다.

Microsoft Bing AI가 그려준 '비트코인을 안고 추락하는 이카루스'

가상자산, 초저금리가 만들어낸 '거품'일까


이젠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자. 1억원을 바라보던 비트코인이 이렇게까지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코인 가격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애초에 거품이 낀 가격인 것은 아닐까?


내 답은 이렇다. 단기간에 전고점 가격을 회복하긴 힘들 것이다.


지난 10년은 초저금리 시대였다. 이런 시기엔 자산 가격이 상승한다. 처음엔 주식이나 부동산 등 전통적인 자산이 몰렸고, 그래도 넘치는 돈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갔다. 가상자산이나 메타버스, NFT(대체불가토큰), 스타트업 같은 검증이 필요한 '미지의 영역'에도 돈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앉은자리에서 자신의 자산이 쑥쑥 불어나는 것을 보며 부자가 된 기분에 빠져들었다. 실제 소비가 증가했다. 재화 수요가 늘어나니 물가가 올랐다. 게다가 코로나19 상황까지 맞물려 터졌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겠다고 정부에서 돈을 풀었더니, 그 돈이 오히려 자본시장으로 쏟아졌다. 돈잔치 결과는 '초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됐다. 인플레이션 소방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등판해 '파티의 끝'을 고하게 된 배경이다.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렸다. 금리는 말하자면 '돈의 가격'이다. 고금리란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더 쳐주겠다는 의미고, 반대로 남의 돈을 빌려 쓸 땐 더 높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축은 증가하고 대출은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는 줄어든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형성되는 만큼, 수요가 줄면서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게 된다.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점점 사람들은 자산을 팔아 현금화해 은행으로 몰아넣었다.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수익률이 예금보다 나을 게 없는데 굳이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빚을 내서 투자한다? 그건 거의 자해행위였다. 예를 들어 지금 영끌해서 아파트를 산다고 생각해 보자. 가격은 몇 년 뒤에나 오를 텐데 당장 매달 수백만 원을 이자로 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수요가 급감하면서 집값이 떨어진다. 주식도 신용매매(빚투)가 줄어든다. 이렇게 자산 시장에 낀 거품은 급속도로 꺼지기 시작했다.

Microsoft Bing AI가 그려준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추락하는 이카루스

길어지는 고금리…가격 회복 쉽지 않을 것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해 볼 수 있겠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잡히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다시 내릴 거고, 그럼 가상자산 가격이 언젠가는 회복되지 않을까?"라고.


물론 그런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금세 오진 않을 것이다. 우선 연준은 내년 말까지는 기준금리를 5%대에서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상자산 시장에 특별한 호재가 없는 한 가격은 횡보하거나 약간 상승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무엇보다 과거와 같은 초저금리는 다시 오기 힘들다. 구체적인 이유는 파월 할아버지도 모르지만, '중립금리'는 예전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게 통설이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무엇도 촉발하지 않는 금리 수준을 말한다. 즉 연준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비트코인 가격이 전고점을 회복할 거란 장담은 못한다.


'예전에 1억원을 넘봤으니 지금 사면 저점에서 매수하는 게 되겠지?'라는 전략이라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말이다. 가격이 어느 정도는 오르겠지만 꽤 오랜 기간 기다려야 할 것이고, 그 상승폭도 예상보단 높지 않을 수 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 출처 연준 유튜브 화면 갈무리

시장 신뢰 담보할 적절한 규제도 필요


그리고 '제도 미비'에서 오는 리스크가 상존한다. 2022년 11월 세계 3대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 여파가 전 세계 가상시장을 흔들었다. 자본시장은 심리에 움직인다. 그렇잖아도 경제가 안 좋은데 테라-루나, FTX 파산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거둬들였다. 이때 국내 5대 거래소의 거래량이 5분의 1로 급감했다고 한다.


이렇게 가상자산 시장에 대형 악재가 잦은 이유는 업권법 등 제도가 미비한 때문이 크다. 그동안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가상자산에 대해 조심스러워한 측면이 있다.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면 전통적인 화폐 위상과 충돌할까 봐서다. 그동안은 기존 법으로 임기응변해 왔지만 적절한 시장 관리 감독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개념 이해가 어려운 이유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특정금융정보법이 있고, 2023년 6월엔 첫 가상자산 업권법인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법안은 불공정거래 행위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년 7월 시행이다. 가상자산 발행 기업 관련 규제, 가상자산 종류별 규율 체계 등 내용을 포함한 사업자 업권법은 아직이다.


그런데 국내 제도만 탄탄해진다 하여 마냥 안심할 순 없다. 가산자산엔 국경이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사고가 나면 그 여파를 온전히 맞는다. 처음엔 규제를 만들면 시장이 위축될 거란 우려가 컸지만, FTX 사태를 겪으면서 최근엔 오히려 적절한 규제를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단 주장이 힘이 세졌다.


그동안 가상자산은 초저금리라는 상승기류를 타고 이카루스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여기에, 적게 투자해서 크게 벌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날갯짓을 부추겼다. 규제라는 장애물도 없었다. 하지만 몰랐다. 하늘 높은 곳에 "금리는 더 높게, 더 오래간다"라고 외치며 매파 열정을 불태우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얼굴이 떠 있을지는.


과연 이카루스는 심해 바닥까지 가라앉기 전에 건져 올려질 수 있을까? 그러려면 미국의 금리 인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각 나라가 미비한 가상자산에 관한 규제가 우선 정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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