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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Aug 04. 2023

저금리와 무량판(순살아파트)

이지머니가 과열시킨 부동산 시장과 철근 빠진 아파트들

1760년대 중반 영국엔 건설붐이 일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돈을 빌리기 쉬워지면서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맞았다. 건설업계는 건물을 최대한 빨리 짓기 위해 난리였다. 만들어낸 벽돌이 식기도 전에 운반하려다가 트럭에 불이 났다고도 한다.


이 일화를 듣고 '순살 무량판'이 떠올랐다.


무량판은 말 그대로 천장을 대들보(량) 없이 기둥으로만 떠받치는 구조물이다. 구조가 간소하다 보니 공간을 넓게 쓸 수 있고 시공 시간과 비용도 절감된다. 다만 전제가 있다. 안전하게 잘 만들어져야 한다. 무량판은 대들보나 벽처럼 하중을 분산하는 구조물이 없는 만큼 기둥과 천장, 바닥을 연결하는 부위에 철근이 튼실히 들어가야 한다.

무량판 구조 / 직접 그림

최근 무너진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은 조사 결과 일부 기둥에 철근이 없었다. 공사 전 과정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결과다. 아파트는 크게 구조계산→설계도면 작성→시공→감리 순서로 진행된다. 그런데 구조계산과 설계도면 작성 중 철근이 누락됐다. 현장 인력들도 무량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엄한 곳에 철근을 갖다 넣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감리들도 제 역할을 못했다. 문제는 이런 부실 무량판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곳뿐만 아니라 민간 아파트 293곳 중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원인 중 하나로 '이권 카르텔'이 꼽힌다. 원청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실력 없는 구조기술사와 전문성 없는 현장 근로자들을 고용한다. 절감한 돈은 전관을 이용한 영업에 들어간다. 영업 상대방에게 돈이 가야 하고, 전관들도 주머니에 제 몫을 채워야 한다. 감리가 적당히 넘어가주는 것은 물론이다.


이권 카르텔은 당연히 돈이 몰리는 곳에 생긴다. 전 국민이 알다시피 우니라라 부동산 시장은 엄청나게 과열됐다. 아파트는 어느 순간 삶의 터전이 아닌 부의 축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내집마련도 대단한 일인데 세입자를 여럿 거느린 다주택자가 차고 넘쳤다. 주말에 물건 쇼핑하듯 아파트를 임장하러 다녔다. 건설업계는 상품 납기일을 맞추느라 열심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품성도 좋고 비용도 절약되는 무량판을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부동산 시장에 돈이 몰리게 만든 원흉은 이지머니, 즉 저금리라고 본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도 저금리와 무분별한 대출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금리라는 것은 돈의 가격표다. 금리가 낮으면 남의 돈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줄어든다.


초저금리 상황에선 예·적금에 돈을 묻어두면 손해다. 물가상승률을 빼면 실제 금리는 마이너스니까. 그래서 돈은 보다 자극적인 곳으로 몰린다. 주식시장이 활황을 맞고 부동산 시장은 "오늘 사는 아파트가 가장 싸다"는 말이 현실로 이뤄진다. 그 결과가 우리나라의 지난 2021년이다. 증시와 아파트 가격은 끊임없이 우상향했. 특히 이때는 코로나19를 이유로 각종 정부 지원금 등 유동성도 넘쳤다.


거품은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넘쳐흐른 유동성, 전쟁이 만들어낸 인플레이션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강도 통화 긴축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었다. 과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남발했던 금융회사들은 제때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순살 무량판도 거품의 일면이다. 부동산 PF 부실이 금융회사의 욕심 때문이었다면, 무량판 기둥에 철근을 누락시킨 건 부동산 업계의 탐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이지머니, 바로 저금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초저금리가 미덕인 줄 안다. 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침체된다는데, 그걸 굳이 왜 올리느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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