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만을 바라보다_우물 안 개구리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둘째는 5살이 되었다. 이 말인즉슨, 아이들이 많이 커서 엄마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오산이었다. 선배맘들의 말처럼 초등 1학년은 유치원생보다 훨씬 더 손 갈게 많았고 엄마의 시간은 오히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가 자유로웠다.
나이는 들어가고 더 이상 매년 학교에 원서를 넣으러 다니고 면접을 보는 것은 못하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시험을 치는 것을 반대했다.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었겠지. 아이 둘을 키우면서 살림을 하면서 그것도 몇 년 만에 다시 임용 준비를 하겠다 하니 하지 말라는 거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매년 말과 초에 다음 내년을 고민하며 학교를 찾고 원서를 넣고 면접을 다니기 싫었다. 자존심도 상했다. 정말 더 나이가 들면 시험 준비도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드었고 합의하에 1년만 해보기로 했다.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거의 8년 만이었다. 한 번도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지 않았었다. 강의 비용이 정말 비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는 고시공부이지 아닌가, 그래서 적지 않은 돈을 강의와 책값으로 썼다. 다행인 것은 미니멀 라이프를 접하고 물욕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카드값은 정리되었고 가정의 재무상태가 점점 나아질 때였기 때문에 가게에 큰 부담은 없었다. 그렇게 돈을 써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역시 돈이 좋다. 강의는 나의 시간을 훨씬 줄여 주었고 효율성은 극대화되었다.
평안한 가정 분위기는 고시공부에 큰 힘이 되었다. 남편이 참 잘 도와주었다. 매일 저녁 설거지는 남편 담당이었고 아이들과도 참 잘 놀아주었다. 친정엄마는 매 주말마다 두 아이를 봐주셨다. 덕분에 주중에 힘을 쏟은 우리 부부는 주말 동안 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아이를 키우는데 동네가 필요하듯 나의 고시공부를 위해 온 가족이 다 고생을 했다. 나는 꼭 붙어야만 했다. 강의비와 책값 그리고 온 식구들의 수고와 헌신이 너무 고마웠고 꼭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과외를 하자니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가야 하고, 학원도 마찬가지 밤에 수업이 많은 관계로 하지 못했다. 이렇게 저렇게 핑계 만대며 오로지 바라보던 것은 임용시험. 늘 아쉽게 떨어졌었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임용고시란 나에게 ‘희망고문’ 같은 것이었다. 나의 꿈은 합격해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었다. 자리 잡고 쉬고 싶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8년간 자리 잡지 못한 채 전업주부로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서 끊어버리지 못하고 고시공부를 동경하고 결국은 또 도전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시공부를 마약 같다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될 것 같은.. 정말로 될지도 모르는..
어찌 되었든 1년간 하기로 했으니 나는 죽을 둥 살 똥(죽을 둥 살 둥의 사투리)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집안의 불필요한 모든 살림살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는 것이 일이었는데 물건을 버리기 시작하니 정리할 일도 줄어들었다. 나의 집안일의 8할은 정리에 있었기 때문에 저절로 마음 편 히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저녁 설거지는 남편이 담당해주었다. 공부는 반대했었지만 하기로 한 아내를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설거지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로 가기 전 집안을 싹 치워 놓고 등원과 등교를 시키면 바로 책상에 앉았다. 나는 도서관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동선을 최대한 줄이는 것. 집에서 하는 것보다 더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은 없다! 그렇게 일 년을 집에서 공부를 했다.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고 집에서 동영상 강의를 듣고 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공부가 안된다고 하던데 아줌마가 되고 시간이 가장 귀해지다 보니 집보다 공부하기 좋은 장소는 없었다. 다만 집안일이 방해가 되니 빨래도 오후로 미루었고 청소는 아침 일찍 완료해버린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을 채워주니 아이들이 하원 하기까지 시간이 확보되어서 매일 5시간 정도는 공부할 수 있었다.
이때의 일이 까막 득하게 느껴지지만 겨우 작년의 나의 삶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나의 집안일을 최소로 하지만 대신 주부로서 만족할 만큼의 기준은 맞추었고, 확보한 시간에는 공부밖에 하지 않았다. 사람 만나는 것도 최소화했다. 오롯이 나의 일 년은 공부에 집중되었고 남은 시간들은 집안일과 육아에 쏟았다. 공부하는 시간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집중력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 ‘타이머’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30분 단위로 타이머를 맞추어 공부했는데 30분이 울릴 때까지 초집중해서 지금 보는 내용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이머가 울리면 다른 공부를 하든지 남은 공부를 또 30분을 맞추고 이어나갔다. 타이머를 활용하는 이유는 시계 보는 시간도 줄이기 위한 나의 방법이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를 확인하는 시간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작하는 시간에 타이머를 맞추고 울릴 때까지 공부하면 나는 30분간 집중을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타이머 활용이 좋은 것은 30분이라는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집중도가 훨씬 올라간다.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분량을 보고자 하기 때문에 평소와 다른 집중력을 확 복 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에만 목표를 두면 부족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범위를 나누어 하루에 해내야 할 분량을 정했다. 그리고 그 목표량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9시에 잠이 들면 또 한두 시간 공부할 수 있는 의지가 있었다. 이렇게 나는 최선을 다해 시간을 사용하는데 집중했다. 가정이 평안한 것도 크게 한 몫했다. 부부관계로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으니 공부하는데 방해 요소가 아닌 오히려 남편이 내게 위로가 되었고 너무나 큰 힘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1년간 인간 식세기로의 삶을 살아주고 늘 내게 위로의 말과 따뜻한 허그로 감싸준 것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