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의 육아 도피처는 '살림'

한 곳만을 바라보다_우물 안 개구리

나의 육아 도피처는 살림이었다. 결혼 전에 밥 한번 설거지 한번 하지 않고 공주처럼 살았다 결혼 후 챙김을 받는 삶에서 이제 내가 살림을 운영해야 하니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밥하는 것도 물론 반찬과 국 한 가지 하는 것도 한 시간 이상씩 잡아먹었다. 나의 첫 신혼집은 양가 부모님과 다 멀리 떨어진 곳.. 거기다 남편은 4시 반에 퇴근하는 중학교 교사였다. 늦게 와도 5시면 퇴근. 그러니 매일같이 꼬박꼬박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마음에 드는 요리가 아니면 ‘배가 부르다’며 수저를 놓고 조금 있다 라면을 끓인다. 절대로 ‘맛없어’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나는 자연스레 남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하는데 애썼다. 덕분에 나는 요리실력이 향상되었다. 매일매일 요리를 해야만 했고 남편의 입맛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요리를 잘한다기보다 후딱후딱 해치우는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보면 된다. 


나는 완벽하게 잘하는 것보다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힘들다고 하루는 밥을 하고 3일은 시켜먹는 생활을 했다면 아직까지도 요리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할 일은 열심히 했고 꾸준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주부 10년 차인 나는 요리에 대한 시간을 줄 일 수 있다.      


요리든 살림이든 뭐든지 처음은 어렵다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잘하지 못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 시간을 채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꾸준함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하찮게 느껴지는 일이라도 그 일을 꾸준하게 쌓아나가면 그 하찮은 일에는 시간 할애를 별로 하지 않아도 일이 굴러간다. 나는 주부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관리적인 일에 시간을 줄이고 남는 시간에 자신을 돕는 생산적인 일들로 시간을 채웠으면 좋겠다. 늘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한다고 되는 일은 없다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역할은 잘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부에게는 살림과 요리가 되겠지. 


육아는 남편과 아내에게 공동의 의미가 크다고 본다. 아빠와 함께 하는 육아는 너무나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도 아내에게도 아빠의 역할은 단비 같다. 육아도 살림도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지만 전업주부인 나는 육아는 공동살림은 내 몫이라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아보다 살림이 훨씬 수월했다. 퇴근이 빠른 남편 덕에 아이들은 남편과 함께 잘 놀면 나는 요리와 집안일들로 바삐 움직였다. 손에 익은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처음에 운전을 배울 때는 많은 신경이 운전하는 것에 쏠려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화가 되어, 운전을 하더라도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 나에겐 살림이란 육아의 도피처 이기도 했지만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확실한 아웃풋이 있도록 연습을 할 수 있는 귀한 나만의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육아를 마냥 소홀하게 했다는 뜻은 아니고 육아와 살림 비중을 따지자면 살림이 오롯이 내 몫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육아보다 내게 더 쉽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았다 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아이들 위주로 살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것 같고 부족한 엄마인 것 같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모두가 잘하는 분야가 다르다. 우리는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가정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것임은 분명하다. 내가 내 모습이 아닌 불편한 가면을 쓰고 분에 넘치게 애를 쓰며 산다면 분명히 그 모습은 금방 무너질 것이고 일관성이 없는 엄마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불안을 줄 뿐이다.      


육아가 힘든 엄마가 있는가? 나처럼 살림을 도피처로 삼는 엄마가 있는가? 괜찮다. 

엄마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잘 따르는 우리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일관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들의 어떠함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엄마라서 좋은 것이다. 내 모습을 내가 사랑하고 인정하자.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더욱 힘을 쓰고 또 내가 부족한 부분은 조금씩 채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는 살지 말자우리 아이들이 우리 모습을 보면서 자라고 있으니까

이전 05화 육아 못하는 육아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