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만을 바라보다_우물 안 개구리
전업주부로 아이를 전적으로 양육하는 육아맘이었지만 내게는 고시공부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육아였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는지 잘 모르겠고 아이와 둘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엄마였다. 초보 엄마들은 다 그런가 싶지만 초보가 아닌 육아 9년 차인 지금도 나는 그렇다. 첫째가 벌써 초등학생이다. 첫째에게는 많은 것이 미안하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실수투성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예쁘게 잘 커주고 있으니 감사할 다름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 말이 딱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아파트에서 단절되어 살아간다. 급한 일이 있어도 갑자기 아이 맡길 곳이 없다. 우리는 잠시 아이를 맡길 때도 비용을 들여 모르는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시대를 살 고 있다. 부부가 다 감당해야 하는 육아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요즘이 더 육아 우울증이 많을 수밖에.. 부모님들은 가까이 계시지 않고 맞벌이로 일은 하러 나가야 하고 그러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멘붕이 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싫어서 우리 부부는 외벌이를 선택했다. 그런데 일하는 것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물론 일하다고 육아를 안 할 수 없으니 워킹맘의 고충은 더 하겠지.
잠시였지만 몇 달간 했던 출근은 내게 숨 쉴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아이와 떨어지는 시간이 있었고 혼자 커피를 마실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내게 주어졌다. 육아는 한다고 해서 바로 보이는 성과가 없다. 그러나 직장의 업무는 바로바로 성과가 보이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 일들이 나는 좋았고 나와 잘 맞다고 생각했다. 양가로 다 멀리 계셨고 아이를 기관에 오랜 시간 보낼 수가 없어서 또 전업맘을 선택한 우리 부부지만, 항상 육아가 일보다 어렵다는 생각은 바뀌지가 않는다.
이 또한 엄마들마다 다른 것 같다. 육아를 즐겁고 재미나게 하는 엄마들도 많았다. 그 엄마들에게는 아이의 기쁨이 엄마의 기쁨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즐거워한다고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나를 돕는 일이 필요했다. 외벌이라 넉넉하지 않아서 돈 드는 취미생활도 어려웠고 아이와 함께 무엇을 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엄마의 희생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야 깨닫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를 돕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돈이 많이 들지 않는 방법도 많다는 것. 아이를 키워놓고 해야지!라고 미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