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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게 해 주세요! 네?!

우물 안 개구리_한 곳만을 바라보다

첫째가 돌이 되도록 집에서 열심히 육아와 살림을 했더니 나에게 남은 것은 '낮아진 자존감'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아쉽게 떨어졌지만) 공부도 나름 성과 있게 할 수 있었고 '임용이 안되면 기간제라도 일하면 되지!' 하던 패기는 어딜 가고. '나 수업은 할 수 있을까?', '면접은 볼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과 땅속까지 꺼져 들어가는 자존감과 자신감은 나를 괴롭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일찍 교사가 되었고 덕분에 나의 가장 불편러가 되었었다. 함께 공부를 하다가 친구가 먼저 합격을 하게 되거나 혹은 친구는 떨어졌는데 내가 먼저 합격을 하게 되면 이상하게 불편해진다. 붙은 쪽도 눈치를 보고 떨어진 쪽도 눈치를 본다. 불편감이 감도니 특별히 애를 쓰지 않는 한 서로의 마음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멀어졌어야 했던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되어버렸으니 좋게 말하면 남편은 나의 동경 대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나의 아픈 손가락과 같았다. 


1학년 담임을 맡으면 학생들과 수련회를 가고 2학년 담임이 되면 수학여행을 간다. 교사는 몇 박 며칠 되는 출장이 잘 없는데 공식적으로 수련회와 수학여행을 가면 며칠씩 집을 비우게 된다. 아이는 어렸고 도와줄 어른은 없었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남편밖에 없었는데, 남편이  며칠씩 집을 비우게 되는 날이 오면 불편해진다. 일이니 당연한 건데도 내 마음은 불편하다. 사실 육아는 핑계였고 '나도 일하러 가고 싶다!!' '나도 수. 학. 여. 행 가고 싶다고!!!'라는 마음속의 외침이었다.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했다. 자존심 상하니까. 


어느 날 남편 옆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 모집 공고가 났다. 딸이 돌 때쯤이었고 일하러 가면 주중에는 친정에 맡기고 주말에만 딸을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무 일하고 싶었다. 아니, 육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다시 세상에 나가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수업을 하고 싶었고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다. 남편에게 나도 할 수 있다! 보여주고 싶었다. 고민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될 것 같으니,  일단 원서는 내고 생각하자! '다 합격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질러버렸다. 


학기 중이어서 그랬을까, 그냥 한번 내본 원서였는데 면접에 합격했으니 출근을 하란다. 그렇게 결혼 후 나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얼마만의 학교인가.. 교문에만 들어서도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수업시간에는 신이 났다. 학생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쉬는 시간에 커피 마실 시간이 있었다!! 돌아보니 육아하는 내내 편하게 혼자 커피를 마신 기억이 없다. 서툴러서 그랬었다. 둘째는 낳고는 애 둘을 보면서도 커피 마실 짬 정도는 있었다. 애가 울어도 이 한잔은 마셔야 살 것 같아서 커피를 마저 마시고 아이를 안아준 적도 있다. 나는 엄마가 행복해야 육아도 가정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들의 성향 따라 다르지만 나는 내가 먼저다. 아이 위주로 살지 못해서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 위주인 삶이라고 욕할 것도 없고 아이 위주인 삶이라고 안쓰럽게 볼 것도 없다. 그 마저도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선택한 자신의 삶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렇게 육아 방식마저도 엄마의 선택인 것이다. 세상에 옳은 한 가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원리는 존재하겠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것. 


그렇게 신이 나서 일을 한 지 2달 사이에 아이는 입원을 두 번 하게 된다. 한 번도 하지 않던 입원을..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나 보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2학기부터 1년간 재계약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두고 고민을 한다. 남편과 나의 결정은.. 아이를 우리 손으로 키우는 것. 아이가 두 번 입원한 사건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있으니, 똑같이 출퇴근을 하고 와서도 식사 담당은 나요. 똑같이 맞벌이를 하는데도 주말에 데려온 아이를 보는 것은 나였다는 점. 손해 보기 싫어했던 나의 미성숙함이 다시금 육아맘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때 '우리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맞벌이를 선택할 수도 있었으려나?' 의미 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결국 두 아이를 우리 부부의 힘으로 키워내고 나는 전업주부로서 살아낸 시간들로 주부로서 내공이 쌓였음은 분명하다. 


몇 달간의 짧은 계약기간은 나를 찾고 여유를 찾은 시간이었다.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격하게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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