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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애를 키우다

우물 안 개구리_한 곳만을 바라보다

할머니들이 잘하시는 말씀이 있다. "아이고, 애가 애를 키우네".  젊은 엄마들을 보면서 하는 말씀이다. 엄마가 그만큼 어려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설프다'라는 것이겠지.


신혼 생활을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시작했다. 친정도 시댁도 멀리 있어 남편과 둘만 있었다. 따뜻한 봄날, 꽃피는 좋은 날에 첫아이를 품에 안았다. 얼마나 고생하며 출산을 했는지 손가락 발가락이 구부러 지지 않았고 온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출산보다 더 힘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육아'였다.


애를 처음 키워보는데(당연하지) 양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남편도 나도 어렸다. 정말 '애가 애를 키우는 상황'이었다. 육아는 '스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여유와 평안과 웃음과 사랑? 둘째를 낳고 보니 여유가 생겼고 웃음과 사랑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은 다 어렵지 않은가.. 첫째를 키울 그때는 실수 투성이었다.


제일 큰 어려움은 남편과의 관계. 나는 나대로 아이와 하루 종일 있으면서 불안과 초초함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남편은 퇴근 후 쉬지 못하고 찌든 아내의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육아를 돕는다. 어차피 하면 좀 즐기면서 하지! '꾸역꾸역'해내는 남편을 보면서 속이 터진다. 그런데 나 또한 육아를 꾸역꾸역 하고 있었다. 내 모습이 상대에게서 보일 때 그때가 참 불편한 상황이다. 나의 불편한 모습이 상대에게서 보일 때 그게 그렇게 화가 난다. 사소한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부부관계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애가 애를 키우는 것'. 어쩌면 어른들의 그 말은 생물학적 나이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될 만한 내면의 성숙을 얘기한 것은 아닐까. 우리 부부는 스물일곱, 스물여덜의 나이로 요즘 치고는 빠른 결혼이긴 하나 그렇게 어리지도 않은 나이였다. 내면이 어린 신랑과 내면이 어린 신부가 결혼한 것이 문제였다. 혼자서도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성인'이 되어야 하고 또 다른 '성숙한 성인'을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하는데, 미성숙한 채로 (혹은 현실의 도피처로 때로는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결혼이라는 수단을 이용? 하기도 한다. 나부터 결혼 생활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 없이 결혼을 했다. 


나는 남편에게 많은 것을 바라기만 했고 남편 또한 아내와 아이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완벽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질문하고 답을 내리는 시간은 꼭 필요한 것 같다. 가능하다면 결혼 예비학교라도 다녀서 청년들이 제대로 결혼생활에 대한 공부와 마인드를 배우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산교육이 있지 않은가. 일단 부딪히는 것. 물론 피 터지는 시행착오는 겪어야 했지만. 


우리 부부는 모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혼생활과 육아에 대해 알아갔다. 결혼 10년 차쯤 되니 안정기에 접어든 느낌이다. 4 식구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평안하다. 코로나로 인해 너무 붙어있어서 힘든 때도 있지만 감정싸움 기싸움 같은 에너지 낭비는 없다. 우리는 서로를 더 위할 줄 알고, 서로를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고, 눈만 마주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의 짬이 되었다. 남편은 출근하면서 꼭 뽀뽀를 한다. 실상은 글처럼 달콤하지 않다.  '의리 뽀보'이다. 의리를 지킨다는 것도 참 감사하고 소박한 행복이다. 나에겐 소박하지 않은 원대한 꿈이 하나 있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 부부를 보며 '엄마 아빠 같이 살고 싶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자녀에게 인정받는 부모라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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